02. 간식과 운동. 그리고 지속
지난 화에 이어 당뇨전단계와 만성신부전 1단계에 맞서 싸우는 일기를 이어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책상 앞에 앉아, 티라미수를 한 그릇 퍼 먹으며..
간식과 충동>
매일 빵 냄새를 맡고, 빵을 만지고, 그러다 먹는(?) 일상을 보내다 보니, 내가 얼마나 간식을 자주 먹는지에 무던해졌었다. 당뇨 전단계 진단을 받고 난 뒤 왜 걸렸을까 되짚어보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간식'이었다. 아침-점심-저녁 중에 점심 끼니만 제대로 챙겨 먹던 예전의 나는 아침과 저녁은 대부분 간식의 개념으로 해결하는 식이었다. 내 몸은 제 때, 제대로 들어오는 식사의 개념을 잃고 음식이 들어오는 족족 어딘가에 잘못 끌어다 쓰기 바빴을 것이다. 몸이 제대로 음식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고, 저장하는 시간을 줬어야 했는데 늘 잔업만 계속해서 던지고 떠나는 악덕 사장처럼 다뤘다. 이 식습관의 결과는 뻔했다. 인슐린 저항성의 증가와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 증가, 그리고 높은 혈당이었다.
습관에서 나오는 충동을 의식했다. 아침에 일하며 지치고 배고파서 무심코 빵으로 뻗던 손을 멈췄고, 저녁에 냉동실에 쟁여뒀던 핫도그, 호빵, 치킨너겟 같은 걸로 때우는 날들을 줄여갔다. 물론 집에 간식이 없는 건 매우 슬픈 일이니, 늘 쿠키나 칩 같은 게 상비되어 있긴 하다. 가끔 냉동케이크도 있고, 오늘처럼 티라미수도 있다. 다만 작지만 큰 차이는 바로 이것들을 의식하고 먹냐 안 먹냐의 차이다. 먹은 만큼 더 빡세게(?) 운동할 테다.
운동>
나는 평생 정상 체중보다 15kg 넘게 덜 나가는 마른 체형이었다. 다들 마르면 좋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마른 사람들의 고민은 살찐 사람들의 고민과 다를 바 없다. 외형적인 문제부터도 그렇고, 질병에 대한 노출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시로, 마른 당뇨 환자의 말기신부전 위험은 정상체중을 유지한 사람의 2배 높다.
당뇨와 신증이 복합적으로 찾아온 내겐 식단이 매우 까다로워진다. 근육을 키우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유지하려면 단백질 섭취와 부족하지 않은 열량 섭취가 중요한데, 열량을 채우려 많이 먹게 되면 혈당이 발목을 잡고, 영양소 비중을 단백질에 두면 신장에 무리가 생긴다. 처음 혈당과 혈압에 집중한다고 무작정 먹는 걸 바꿨을 땐 가뜩이나 말랐던 몸이 더 말라가기도 했었다. 이래저래 고민하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하긴 해야 하니까. 운동을 정말 안 하긴 하니까. 까다롭다는 둥 뭐라는 둥 할 처지가 못된다.
꾸리꾸리한 겨울과 꽃가루 범벅 봄, 무자비한 자외선과 그늘과 에어컨이 적은 여름, 또다시 꽃가루 파티 가을. 독일에서 야외 활동이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잘만 러닝 하는데 난 무작정 나가 뛰는 게 쉽진 않았다. 태생적 성격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외국인들의 '시선'이 싫어서 헬스장도 가기 싫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운동과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던 어느 날, 아이쇼핑 중이던 나는 링피트를 질러버렸다.
이제 앞서 말한 모든 변명들이 통하지 않는다. 집에서 전원만 연결시키고 운동하면 된다. 이게 근육을 제대로 키워주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뭐든 시작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어제까지 링피트 한 날이 20일을 달성했다. 나는 <정열의 마운틴 클라이머>다.
아침 챙겨 먹기부터 운동, 그리고 저염, 저단백, 저칼륨, 저인(?), 저간식(??)까지. 꽤 이른 나이에 진단받은 당뇨전단계와 신증에 내가 맞서 싸우는 방법들이다. 사실 맞서 싸운다는 게 별 건 아니다. 그러니까, 불굴의 의지로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철저하게 식단을 지켜가며 살고 있진 않다는 거다. 원체 단 걸 좋아하고 또 원체 게을러서, 중간중간 간식도 먹고 외식도 한다. 그렇지만 목표달성표를 만들어서 저염식 하는 날을 늘려보고, 운동도 링피트를 통해 조금씩 친해지는 중이고, 단백질이나 칼륨, 인의 섭취는 계속 익숙해져 가는 중이다. 평생 빵과 같이 살아야 하는 직업이라(대의적 명분으론 내가 만드는 빵의 퀄리티 체크와 테스트로서, 개인적 명분으론 그냥 맛있고 좋아하니까) 빵은 계속 먹게 되겠지만 이런 걸 조절하는 방법도 의식적으로 배워나가는 중이다.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다. 망가지는 건 너무나 쉽다는 걸, 다시 쌓는 건 너무나 어렵다는 걸 잘 안다.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다른 직업도 아닌 빵쟁이로써 이 병과 싸우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망만 하고 있다간 소중한 사람 곁에 오랫동안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직은 당뇨도 신증도 초기단계다. 날 위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이 싸움을 이겨내 볼 테다. 건강한 제빵왕이 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