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가 인생의 힘듦의 최고점을 찍은 주 이유 중에는 졸업 준비에 겪은 난항 이외에도 한 가지 요인이 더 있었다. 유학 준비였다.
나는 물 건너서 박사학위를 따고 싶었다. 대학을 들어왔을 때부터 생각했던 바였다. 처음 유학을 생각했을 때에는,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강한 동기 중 하나가 허영심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겠다. 어쨌거나 유학을 했다는 사실은 나를 유리한 위치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뼛속까지 한국적인 사고가 기저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석사 과정 연구실을 선택할 때에도 연구 분야 외에 얼마나 내가 논문을 작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계산을 하고 들어갔다.
유학을 가고 싶었던 구체적인 동기는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새롭게 만들어졌다. 크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내가 더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와 석사과정 지도교수님의 연구분야 사이에 괴리가 있었다. 학부생 때부터 하고 싶었던 분야로 연구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러나 교수님께서 추구하시는 연구의 방향성과 분야가 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졸업한 이후에는 더 이상 교수님께서 이 분야 연구를 진행하지 않으실 것 같았다.
둘째, 연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더해갈수록 더 좋은 연구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정말 좋은 논문(흔히 NCS 저널이라고 하는)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고 싶었다. 좋은 연구는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논의를 거쳐서 탄생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고 이 정도 수준의 논문을 꼭 작성하고 박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면 아주 좋은 저널에 논문을 낸 경험이 있는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교수님은 국내에서도 잘 없을뿐더러, 설령 있다 해도 NCS 수준의 논문을 출판하신 분은 무척 드물다는 게 그 당시 나의 판단이었다.
나는 이미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소서도 첨삭하고, 면접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졸업과 유학을 동시에 준비하는 사람은 적어도 우리 팀에서는 나뿐이었다. 매일매일 정신이 어지러울 정도로 바빴다. 내가 체크해야 하는 일정이 한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캘린더에 모든 것을 적어놓고 하루에도 여러 번 들여다봤다.
나는 미국으로 박사과정을 진학하고 싶었기 때문에 내가 필수적으로 봐야 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았다. 영어 성적, 자기소개서 (Statement of purpose; SoP), CV, 추천서. 경우에 따라 Personal statement나 writing sample이 필요하기도 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고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 내가 졸업을 제때 했으면 좋았겠지만, 졸업이 한 학기 미루어져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그나마 디펜스와 동시에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었으면 뒤돌아보니 준비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졸업 준비와 유학을 동시에 준비한 사람을 여럿 만났지만 다들 죽을 뻔했다고들 했다. 디펜스와 연구 계획서를 동시에 준비하다니. 육체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힘든 일이 많은 과정이었다. 그러나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 준비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욕심껏 온 힘을 다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것에 있어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책할지언정 멈추어서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