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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18. 2023

아픈 자식, 늙은 부모

앉지도, 눕지도, 굽히지도 못해요.

11/19 Berkeley Half 마라톤을 뛰고 메달 샷


미치겠다. 아침이 되면 괜찮겠지, 애써 다독이고 잠들었건만 날이 밝아도 내 허리는 커다란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둔하고 날카로운 통증들의 범벅으로 뒤척이기도 진땀이 난다.


내 허리가 왜 야프냐고?

(테이프 감는 효과음 켜주십셔)


느긋하게 엄마와 모닝커피를 마시고 아파트 단지 앞으로 곧게 난 농로를 지나 하천둘레길 걷기를 나갔다. 봄 같이 화사한 날씨에 너무 도취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3km 지점이 지났다. (며칠 뛰어봐서 마일스톤 지점 이미 파악) 엄마에게 마라톤을 뛰고 온 단단하고 건강한 몸을 보여주려고 100미터 달리기를 히는 등 한참 재롱을 떨다 보니 금방 3km가 되었다.

너무 따스한 하루

“엄마, 여기가 3km 지점이야. 어떡할까? “


“벌써 3km나 뛰었어??? 아이고… 엄마 괜찮아. 좀 더 걸을까?”


“그래! 그럼 저기 앞 금능역에서 빠져나가자.”


그렇게 조금 더 걷다 보니 5km를 걸어 이 날 목표지점엔 찜질방에 도착했다. 가뜩이나 더운데 또 더운 곳에 들어가니 열이 펄펄 난다. 허리쯤 깊이의 냉탕에 들어가 으드드드 허, 허, 허, 냉기에 몸을 적응시키고 있자니 어떤 할머니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척척척 걸어 들어와 냉수대포를 킨다. 그리고는 거세게 대포알처럼 쏘아내는 냉수를 허리에 태연하게 맞았다. 나 마라톤 뛴 여자야!!!! 첫 마라톤을 뛰고 온갖 자부심으로 범벅이 된 나는 괜한 가오를 잡으며 냉수대포를 앞 뒤로 다 맞았다. 쎈 척하며 물에서 나와보니 허벅지와 발이 모두 퍼렇게 얼어있어 얼른 온탕에 들어갔다.

골드스파. 약간 서늘한 기운이 돌아 좀 추웠다

몇 시간 뒤찜질을 마치고 나오면서 가방을 집는데 뻑! 하며 뭔가 허리에서 뭔가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이 허리를 꿰뚫었다. 약간 느슨해지는 듯한 통증은 집에 올 때쯤엔 점점 거세져 거실바닥에 있는 리모컨을 집을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를 걱정시키기 싫어 일찍 잔다고 하고 누웠다.


누워서 좀 쉬면 곧 괜찮아지겠지, 했지만 허리의 통증은 점점 커져 곧 조금도 뒤척이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정도가 되었다. 혼자 있었으면 119를 불렀을지도 모를 고통이건만 거실에서 자고 있는 엄마를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허리통증’, ‘허리디스크’, ‘디스크증상’ 등등 검색어를 찾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하반신 감각이 없으면 어쩌지?’

‘이 고통이 영영 없어지지 않으면 어쩌지?’

‘수술을 해야 하면 질환이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허리의 고통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이 고통이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지난 8개월의 달리기 사진을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


‘내가 이렇게 젊고 생기가 넘쳤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이렇게 될 수가 있어!


일단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자. 금촌시내 잘한다는 허리전문의원을 검색해서 위치를 확인하고 애써 눈을 감았다. 아침엔 통증이 좀 가라앉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아침에 새벽같이 눈을 떴건만, 내 허리 고통은 극심해 일어나려 상체를 뒤척이지도 못할 정도였다. 일어나는데 이렇게 많은 움직임이 필요한지 처음 알았다. 일어나려면 한쪽으로 상체를 틀어 팔꿈치로 바닥을 짚어 상체를 밀어 올리거나 중국영화 ‘강시’처럼 상체를 그냥 일으켜야 하는데 나는 상체를 1도도 움직이지 못했고 다리를 움직이기도 고통스러웠다. 주방에서 작은 소음이 나며 엄마가 기상한 기척을 느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엄마는 6:50분 아침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데 매일 정류장까지 바래다준 딸이 허리가 아파 꼼짝도 못 하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차라리 자는 척하며 누워있는 게 나았다. 고통을 견디며 조용히 있으니 곧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제야 ‘어어억-으어어 억-’ 소리를 내며 무릎에 손을 짚고 딱 무릎만큼 일어나고 다시 거기서 책상에 손을 짚어 지지대 삼아 허리를 폈다.


화장실을 가는 건 또 다른 도전이었다. 밤새 지옥을 오가며 힘들었는데 창자는 멀쩡했는지 변의가 느껴져 바닥과 책상을 차례로 짚으며 일어났는데 내 속옷을 끌어내리는 것도 힘겹다. 이러다 내가 정말 불구가 되어 엄마의 손발로 용변을 처리해야 하는 건 아닐까, 너무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가까스로 변기에 앉았는데, 하아, 용변을 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지 또 처음 알았다. 큰 일을 보려면 용변을 밀어내려 배에 힘을 주고 그 주변의 근육을 모두 써야 하는지 처음 알았다. 허리의 통증을 견딜만한 정도로 힘을 주니 다행히 그다음은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내장기능만세) 다 끝이냐? 닦는 문제가 남았다. 허리를 조금도 쓰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 뒤통수 아래 싱크대에 놓인 물티슈를 집는 것도 너무 큰 고통이었다.

근심에 휩쌓린 표정(좌),디스크가 아닌걸 알고 한결 밝은 표정(우)

아침에 9시가 되어 택시를 부르려고 했으나 카카오택시는 잡히지 않아 (파주시는 지역 특성상 카카오택시가 서비스 불가지역이라 함) 아픈 몸으로 버스를 타고 병원을 방문하니 엑스레이를 찍는데 엄마야, 꼬리뼈가 s자로 휘어있고 골반도 좌우 높이가 다르며 허리척추가 일직선이란다. 좌우 척추를 지탱하는 근육이 골반뼈 불균형으로 인해 낮은 쪽은 근육이 늘어난 상태고 한쪽은 밀려올라가 압축된 상태에서 오는 근육통이라고 했다. 허리 척추 사방둘레 근육 주사를 4번 맞았다.

허리 척추가 일직선이고 좌우 골반 불균형


병원 문을 나서는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일단은 디스크가 아니어서 가볍고, 수술비로 큰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돼서 가벼웠고, 엄마의 손발로 남은 생을 보내는 지옥을 보내지 않아도 돼서 가벼웠다. 내 몸이 아픈 것보다 엄마가 나 때문에 말년에 고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밤 새 더 고통스러웠다. 미국에 가서 산 14년의 세월 동안 단 한 푼도 손 벌리지 않고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크게 보탬은 안되더라도 손 벌리지 않고 살 자신이 있었기에 이번 허리통증은 내 가슴을 정말 뜨겁게 달군 무쇠솥뚜껑을 잡은 듯 그렇게 놀라게 만들었다.


띡, 띡, 띡, 띡


저녁에 엄마가 퇴근하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퇴근할 때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어어 집에 있었어?’


‘응! 엄마 나 오늘 병원 다녀왔어.’


‘어머, 왜?’


허리통증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자는 줄만 알았지 아파서 못 일어났는지 몰랐다며 무척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엄마. 난 엄마가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내 허리통증 일이 잘 해결되어 오히려 기뻐요.


건강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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