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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Dec 26. 2023

평균 나이 70세 젊은 언니들 20명과 여행

캄보디아로 출발!

무척이나 설레는 표정의 엄마


엄마의 옆에서 몇 년 동안이나 지켜주시던 그분이 (난 얼굴도 한 번 못 본 분이라 호칭을 정하지 못했다) 갑자기 폐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그분의 그 빈자리를 메꾸려 노력했다. 엄마에게 웃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어서 아침마다 보냈고 한국시간으로 일어날 시간에 전화를 해 혼자라는 생각을 덜하도록 노력했다. 점심시간이면 꼭 집으로 돌아왔던 그분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 왔어.”


하며 거실에 앉을 것 같아 문을 한참이나 쳐다봤다는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그 분과 가려고 예약했던 캄보디아-베트남 여행엔 대신에 내가 빈자리를 채우게 됐다. 내가 없어 엄마가 혼자서 와야 했다면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도 하기 싫다.


여행의 준비는 일주일 전부터 차근차근해놓아 특별히 할 게 없음에도 엄마는 무척이나 설레는 표정으로 여행가방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이걸 가져갈까? 저걸 가져갈까?’ 고심을 한다. 나는 물가가 싼 지역으로 여행을 가기 때문에 필요한 게 생기면 현지에서 산다는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다.

나이 지긋하신 일행분들. 오른쪽 메인 캐릭터 말덕여사님

그날이 다가와 아침 6시에 금촌로터리에서 떠나려고 지정장소에서 모인 분들을 보니 조금 기가 막혔다. 할머니, 할아버지 연세의 분들이 태반이고 42세인 내가 제일 어렸다. 공항에 도착해 동행가이드와 함께 수속을 하는데 난리도 아니다. 걷는 속도가 제각각인 노인들과 가이드의 통솔을 귀담아듣지 않는 일행들 때문에 모임주최자 환희미용실 원장님은 목이 터져라 사람들을 모으고 또 모은다.


“아니 말떡언니는 어디 가셨어? 지금 빨리 가야 하는데. 화장실을 또 가셨어? 아니 그놈의 오줌은 뭐 돌아서면 생겨? (이 분 본명이 ‘말덕’인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니, 담배는 출국하는데 왜 지금 사! 아휴 이 양반들 진짜 속 썩이네…”


20명 전원이 공항검색대를 통과하고 출국게이트로 향하는 통로로 조금 여유롭게 걷기 시작했을 즈음엔 원장님과 동행가이드는 이미 표정이 썩어있었다. 환희미용실 원장님은 계속 걸으면서


“내가 다시는 이거 안 해. 너무너무 지쳐… 진이 빠져 진짜…”


터덜거리며 걷는 원장님을 보며 엄마와 재복이 이모는 ‘아무리 콩고물이 떨어져도 사람들 인솔하는 게 할 짓은 못된다’ 며 수군거렸다.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재복이 이모는 내가 엄마에게 Christian Dior 립스틱을 발라주며 사진을 찍어주는걸 무척이나 부럽게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술에 얇게 립스틱을 바르는 엄마가 답답해 구박을 하게 된다.


“엄마, 할리우드 스타들 입술 빵빵하게 한 거 못 봤어? 좀 팍팍 발라! 이거 뭐 대단하다고 그렇게 짜게 굴어? 아이 참…”


“아휴 눈이 안 보여서 삐뚤게 나갈까 봐 그래. 아휴 이렇게 안 보이니 원…”


늙은 엄마가 마음이 아프다. 괜히 구박했다. 내가 립스틱을 들어 입술선까지 꽉 채워 꼼꼼하게 발랐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포즈를 이것저것 시킨다.

크리스찬 다올 립스틱 바르고 기분 좋은 엄마

인천공항에서 우리는 베트남 하노이로, 또 하노이에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두 번의 비행을 했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직행도 있건만 베트남 하노이까지 4시간 30분의 이동을 하고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 캄보디아 공항으로 1시간 45분을 이동하려니 젊은 나도 무척이나 고되게 느껴졌다. 아마 여행사에서 중간에 이익을 남기려고 경유 티켓을 끊은 거 같은데 평균 나이 70세의 노인들을 데리고 이렇게 땡칠이처럼 굴리니 속에서 열불이 난다. 하지만 환희원장님이 물어다 나른 딜이라 우리 중 누구도 불평을 하지 못했다.

사진찍기 좋아하는 재복이 이모
캄보디아 미라지 호텔
집에서 나와 15시간 만에 도착한 캄보디아 호텔, 얼굴이 헬쓱하다

호텔이 생각보다 좋아 울화가 치미건 것이 쑥 내려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로비와 웰컴티, 크리스마스 장식도 맘에 든다. 미국에서 오래 살기만 한 나도 처음 와 본 나라에 도착하니 진짜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다음 날부터는 빡빡한 일정으로 움직여야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씻는데 너무 피곤해서 정신이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다. 내일은 앙코르와트를 둘어본다 하니 쉬자. 눈이 스르륵 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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