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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Jan 04. 2024

달리기를 하며 우울증 테스트를 한다

달리면 절대 숨기지 못한다

한결 편해진 얼굴

남편을 사랑하려고 지난 5년을 노력하며 살았다.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이 아니라 지치고, 날카롭고 무기력한 사람. 그를 부양하기 위해 지난 5년을 꽤 발버둥 치며 살았다. 그 와중에 나에게 늘어난 것은


‘괜찮아! 그래도 재밌게 살자!’


하는 정신승리력이다. 우울감과 무기력을 당장 닥친 일들을 헤쳐나가는 부산함으로 덮어가며 살았다. 나는 나에게 우울함이 있는지도 몰랐다.

방전된 상태

직장에서는 그늘진 곳이 하나도 없는 일 잘하는 매력적인 여성이지만 집에 오면 두 배로 지쳤다. 집에 와서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꽉 조인 벨트를 풀어놓는 기분이 들었다. 지나치게 먹었고, 집은 너저분했으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즉흥적인 쾌락에 몰두했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서는 다시 출근해서 밝고 활기찬 여성으로 살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두 얼굴로 사는지도 몰랐다.

남들은 돈내고 보러오는 금문교

달리기를 시작하고 제일 먼저 깨달은 것은 ‘내가 정말 오랫동안 지쳤었구나…’라는 사실이다. 집을 나와 바닷가를 보면 갑자기 눈물이 북받치는 일이 흔했고 갑자기 전에 있던 어떤 상황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미친 듯이 미웠던 누군가의 행동이 ‘아 그 사람이 그래서 그랬구나’ 너그럽게 생각하게도 되었다.


달리기 사부 알프레도를 만나서 이런 스스로에 대한 발견은 더 섬세하게 변했다. 어느 날 알프레도를 따라 죽을 듯이 뛰고 있는데 그가 ‘자, 사진 한 방 찍고 갑시다~’ 해서 정신을 차려보니 바닷가였다. 느긋하고 조용한 부두의 해변이 아니라 파도를 막아주는 둑이 하나도 없어 몰아치는 날것의 해변이었다. 철썩-사납게 치는 파도와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는 중인 나무 그루터기, 흐린 날의 해변은 너무도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집에서 뛰어서 40분 남짓, 차로는 25분. 이렇게 가까운 곳의 해변을 나는 지난 5년이 넘게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살아서 철썩이는 이 해변을 느끼지도 않고 그저 작은 집에 처박혀 매일 같은 곳을 도깨비장난에 놀아나듯 살았던 것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너무 슬프고, 너무 기쁘고, 너무 설레었다.

내 감정을 마주하고 가벼워진 내 얼굴

그 감정변화를 들키기 싫어 잠시 뒤돌아 호흡을 골랐다. 알프레도는 내가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좀 쉬었다 갈까?

달리다가 너무 쉬는 건 좋지 않기는 하지만

힘들면 호흡 좀 가다듬어.’


라고 말했다. 나는 ‘아니야, 가자!’ 라며 활짝 웃었다.


그날 내가 마주친 감정은 너무 솔직하고, 선명하고 또 아팠다. 나의 뭉크러진 마음을 너무 자세하게 본 기분이었다. 그다음부터는 나는 다시는 아프게 살지 말자, 나를 위해 살자 결심하고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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