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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프란 곽여사 Apr 26. 2024

콩죽 한 그릇에 담긴 엄마의 사랑

엄마가 지금까지 열심히 산 이유.

엄마의 심란한 표정. 둘 다 생각이 많다

1.21.2024 수요일.

엄마가 아파서 갑자기 응급실에 가고 정확히 일주일 뒤에 이번엔 내가 수술을 하게 되었다. 큰 수술은 아니지만 무려 치질수술을 하게 되니 걱정이 만리장성처럼 쌓이고 초조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냥 눈 딱 감고 가면 될 것을 정보를 알아본답시고 유튜브부터 블로그 글까지 전부 찾아봤더니 오히려 어설프게 아는 것이 많아져 걱정이 열 배는 늘었다.


‘혹시 하반신 마취가 잘못되어 마비가 오면 어떡하지…?’

‘혹시 부작용이 생겨 평생 배변봉투를 달고 살게 되면 어떡하지…?’


혹시의 줄은 점점 길어져 밤 잠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수술날이 밝았다.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나는 이대로 방향을 틀어 어디론가 달아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너무 초조하고 불안해….”

“엄마도 지금 무척 심란해,,,”


으잉? 아니 무슨 엄마가 이래? 엄마의 얼굴을 돌아보니 엄마도 걱정으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근심으로 비가 쏟아지기 직전의 하늘처럼 어두운 엄마의 얼굴이 오히려 큰 위안이 되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1인 입원실에 들어가서 환복을 하고 의사 선생님께 수술방식을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 나도 몇 가지 질문을 했다. 빠르게 이어지는 면담자리에서 엄마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따라 들어왔다가 내가 일어서자 따라 일어선다. 그리고 곧 수술이 시작되었다. 치직거리며 살을 지지는 레이저 소리와 삣-삣-하며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기계의 소리를 들으며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엄마가 너무 고맙구나, 생각이 들었다.

마취약이 깨며 덜덜덜 떨어 엄마 코트를 덮어놨다

미국에서 수술을 결정했을 때는 혼자 들어가서 담담하게 수술을 받고 아침에 택시를 불러서 타고 오면 된다, 그 생각을 했었다. 그 과정을 그리는데 나는 무척 담담했고 어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내가 정말 수술을 하려고 혼자 왔더래도 분명 나는 담담했으리라. 하지만 나의 안전을 기원하며 입원실에서 누군가 내가 100 퍼센트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것은 정말 다른 차원의 느낌이었다. 천군만마를 가진다는 말이 아마 이런 느낌이구나, 싶었다. 누가 나를 기다린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심이 되고 마음이 편해졌다. 연인이나 친구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연인이나 친구라면 나는 애써 아프지 않은 티를 냈으리라. 그건 피곤한 일이다. 하지만 엄마라면 내가 안심하고 투정 부리고 약한 척을 맘껏 해도 된다. 엄마란 그런 존재니까.


생각보다 살만했습니다 ㅋ

수술이 끝나고 이동침대에 실려서 입원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엄마는 벌떡 일어나 근심이 가득한 얼굴로 정신없이 허둥댔다. 의사 선생님과 남자간호사 한 분은 솜씨 좋게 나를 하나, 둘 영차 하며 가뿐하게 침대 위에 올려두고 모두 사라졌다. 수술은 잘됐고 내 기분도 담담하고 괜찮았으나 엄마는 아니었나 보다. 수술 중에 비교적 간단한 수술인 치질수술을 한 딸을 무척 안타깝게 바라본다. 엄마는 몇 시간을 옆에서 자리를 지키며 내 발을 몇 번이나 쓰다듬고 기분이 어떤지 몇 번이나 물어봤다. 시간이 지나 밤 8시가 지나서 발에 감각이 돌아온 것을 보고 나서야 엄마는 병실을 나갔다.


다음 날 아침 8시가 조금 지나자마자 엄마는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밤새 걱정하다가 아침에 해가 뜨자마자 온 게 분명하다. 퇴원수속을 하면서 병원비로 따로 빼놓은 봉투를 주섬주섬 꺼내는데 엄마가 흰 봉투를 척 내민다.


“이걸로 계산해 주세요.’

“엄마, 나 돈 있어.”

“그냥 둬. 엄마가 내주고 싶어서 그래.”


웃으면서 병원비를 내는 엄마의 거친 손을 보고 눈물이 찔끔 난다. 저 손으로 매일 한결같이 일해서 번 돈인데… 집으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에서 엄마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병원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내 새끼 수술한다는데 엄마가 병원비도 척 내주고 너무 좋다. 엄마 이러려고 여태 열심히 살았어. 너무 좋다.”


눈물이 확 쏟아지려고 했는데 너무 신파가 될 것 같고 항문도 너무 묵직해서 울지 않았다. 하지만 살면서 엄마에게 이렇게 감사함을 느껴본 적이 처음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엎어지는 나를 보고 엄마는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큰 스텐 다라에 한가득 불려놓은 흰 콩을 믹서기에 넣고 곱게 간다. 곱게 간 뽀얀 콩을 끙차끙차 국물을 짜내고 찹쌀과 함께 한참을 저어가며 죽을 끓이는 모습을 침대에 누워서 보니 또 엄마에게 새삼 고마움이 뭉글뭉글 솟는다. 정성 들여 끓인 죽과 시원한 동치미 상을 받아보니 참 먹음직스럽다. 그 죽 한 그릇을 비우고 엄마가 따끈하게 데워놓은 침대에 기어들어가 이불을 푹 덮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묵직한 항문도 잠시 잊힐 정도로 좋다.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뜨끈한데 있으니 너무 좋다

엄마, 고맙습니다.

이 은혜 꼭 갚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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