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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의 재팬타운 서점 나들이

기노쿠니야 서점

by 샌프란 곽여사

샌프란시스코의 재팬타운 플라자에는 정말 많은 상점이 있는데 그중에 난 이 서점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가보면 책도 꽤 볼만한 게 많고 1층에 만화책 코너는 그야말로 심쿵이다. 이 책 저 책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꽤 볼만한데 살까?’라는 생각이 솔솔 든다. 이 정도면 큐레이션이 상급 아닌가.


집어 든 책 중 몇 개는 일본어로 쓰여있다. 일본어로 쓰인 책 제목을 보니 내가 외국에 사는구나, 실감이 난다.


서점이 으레 그렇듯 이곳도 한산한데 그게 더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들어보며 마음에 들거나 신기한 책의 사진을 찍어도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커피 책.

일본 사람도 한국인만큼이나 커피를 좋아한다. 한국보다 서양문물을 먼저 받아들였으니 커피의 역사도 우리보다 오래됐을 것이다. 넷플릭스에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초능력자 사이키’를 보면 주인공 사이키가 커피 젤리를 매우 좋아하고 일본어 초급을 펼쳐봐도 ‘커피를 좋아하십니까?’라는 식의 커피라는 단어를 쓴 예문이 꼭 나온다. 이 책은 완벽하게 영어로 쓰인 책인데 탐 났으나 무거워서 일단 내려놨다.


내부가 꽤 넓다. 좋다 사람없는데 넓어서.
정리 좀 하고 살아

음성지원이 될 듯한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얼마나 말이 찰진지 읽는 내내 킥킥 웃음이 나왔다. 아, 이건 냄비받침 안 되겠구나 기대가 돼 일단 옆구리에 껴놨다. 집에 책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 몇 권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자꾸 냄비받침이 되고 있어 작가에게 참 면구스럽고 나의 게으름이 미워진다. 부디 나를 싫어지게 만드는 그 슬픈 그룹(?)에 끼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익숙한 만화도 많이 보인다.
일본 망가 만세

1층에 내려가니 온통 검은 옷을 휘감고 검은 군인 부츠를 입고 귀에 징을 박은 젊은 이들과 분홍 레이스가 달린 분홍 가발을 쓰고 안짱다리로 걷는 귀여운 아가씨들이 많다. 역시 취향은 소중한 것이여!


망가층은 일반 서적을 판매하는 2층보다 훨씬 사람이 많고 꽤 시끌거렸다. 내가 혹시 사이키상 열쇠고리가 있나 계산대를 기웃거리며 보니 그 귀에 징을 박은 창백한 피부의 온통 검은 옷 칠갑의 청년이 무려 $160 어치의 서적과 기타 물품을 계산하는 것을 보았다. 취향은 소중한 것이여. (서점 주인한테). 내가 18권이 한 세트인 만화책을 1부와 2부 전부 소장했던 추억을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2층으로 다시 올라와 기웃거리다 보니 Brand. Balance라고 쓰인 B magazine이 보인다. 주제를 정해서 화질 좋고 감성 물씬 풍기는 사진이 많고 꽤 재밌는 주제로 발간이 되었다. 그중 나는 TikTok에 대한 매거진을 골랐는데 틱톡에서 메가 히트한 영상과 그 영상이 만들어진 동기, 최초 업로드한 사람의 이력 등이 잘 기재되어 있었다. 틱톡은 시시한 영상 (이를 테면 내 얼굴 영상 같은?) 도 많지만 정말 기발한 영상도 많기 때문에 그 창의력의 출처가 어딘지 궁금해졌다. 이 책도 사자.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재고가 없다.


나는 입구의 계산대로 갔다.

“Hi, i’m looking for this book. It says Brand Balance Magazine. It has big Letter B on the front page. Do you have new one? 하이! 이 책을 찾고 있어요. 앞에 브랜드 밸런슬 매거진이라고 쓰여있어요. B라고 큰 글자도 표지에 있고요. 새 책 있나요?”


덥수룩한 머리의 남자는 내 hi를 듣자마자 눈에 띄게 동요한다. 아… 일본인. 영어 못하지. 미국 사는데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당황하면서 쩔쩔매길래


“제가 그 책 샘플 집어올게요.” 하고 가서 책을 집어오는데… 도망간다. 와, 이건 무슨 경우지? 아무리 쩔쩔매도 그렇지. 손님이 책 찾으러 갔는데 그 사이 줄행랑 ㅠㅠ

도망가는 남자. 빨간 티.

그 사이 바통 터치를 한 주인 남자도 도움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원래 재고 확인은 정확하지 않고 이렇게 샘플만 있으면 없겠거니, 하고 옆구리에 끼고 있던 책을 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 잽싸게 계산을 해준다. 내가 뭘 또 문의할까 봐 조마조마했으리라 짐작한다. 괜히 그 사람들 하루를 진땀 빼게 했나, 싶다.

건물 다리 건너 다른 동으로 이동

책을 사서 가방에 넣고 마음이 뿌듯하다. B magazine은 아마존에서 검색해서 포인트로 결제했다. 이렇게 진작 할걸 당장 사고 싶은 마음에 괜한 짓을 했다. 다음에 다시 가서 하루 종일 있다 올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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