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Oct 22. 2024

유경험자입니다.

   

너무나 좋아하는 빗방울을 KTX 안에서 마주하니 반가움이 몇 배로 더하기가 된다. 서울행이 아닌 집으로 향하는 부산행 열차다.   

   

KG에듀원으로부터 간호실무 이러닝 강좌 개발 의뢰를 받은 지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강의 촬영 두 번째 날이었다.


임상에 있는 간호사들이 법정 의무 교육으로 들어야 하는 강좌이기에 전문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임상에서 떠나온 지 어느덧 16년의 시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데 나의 간호지식도 그동안 많이 소모되고 고갈되고 변화되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또 다른 성장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 때문에 찾아온 기회를 거절할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함께 원고를 작성해 줄 간호사 동료가 있어 원고 마무리가 잘 되었다. 일상처럼 진행하는 강의 외에 추가적인 일을 해야 하기에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나를 찾아와 준 KG에듀원 담당자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원고 쓰느라 무척 힘드시죠? 원래 그렇습니다. 너무 깔끔하게 잘 진행해 주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 개발을 의뢰하며 적임자가 강사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흔쾌히 받아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정당한 돈을 받고 나의 성장을 위해 선택한 일이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과 태도로 곁에 있어 주냐에 따라 걷는 여정 길의 행복지수는 다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을 하며 함께 걸었던 동료이자 지원자 이자 의뢰자들은 나의 행복지수를 높여주는 분들이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인복이다.     


이런 행복지수와 함께 시작한 첫 촬영의 여정을 잠시 담아보려 한다.     


나의 원고가 웹 개발자에게 전송이 되면 전문가의 손길을 걸쳐 강의보드가 만들어진다. 보드에 적힌 차시별 내용을 읽어가는 강의이지만 나에게는 모두가 낯설다.   

  

아무런 반응 없이 나만 바라보고 있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촬영감독님의 신호가 익숙하지 않아 잠시의 기다림 없이 강의가 시작될 때도 있었다. 원고 녹음에 잡음이 들어가면 어김없이 NG가 나고 혀가 꼬여 발음이 어눌해질 때도 마찬가지로 NG는 찾아온다.     

나를 안심시키고자 전해주는 이야기 일수도 있지만 첫 촬영이라 하기엔 너무도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의라 스태프들이 깜짝 놀랐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앞으로 어디 가서 초보라는 말은 안 하셔도 될 것 같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만족은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내가 자연스럽지 않아 NG를 내기도 하고, 앞뒤가 맞지 않아 수정을 의뢰하기도 했다.     

언제나 촬영의 주도자는 강사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스태프의 메시지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강의의 베테랑이라고 해서 온라인 강의까지 베테랑이 되는 것은 아니고, 온라인 강의를 많이 해봤다고 해서 오프라인까지 섭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이다.   

  

스타트 신호와 함께 목소리 톤이 자연스럽게 바뀌어야 하며 시선 처리 역시 항상 카메라를 향해야 한다. 쉬는 시간과 촬영시간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틀의 촬영이었지만 많은 것을 경험했다. 앞으로 4일의 촬영이 더 남아있다. 첫 촬영은 아무것도 모른 체 걱정 반으로 시작을 했다면 두 번째 촬영은 걱정의 한 치를 줄이고 즐거움과 마주했다.     

이 즐거움은 자신감이다. 떨리지 않는 목소리, 안정적인 호흡, 정확한 발음, 온전한 시선 처리, 언제 컷이 들어와도 여유 있는 웃음으로 다음을 이어갈 수 있는 배려심이다.     


촬영을 해보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을 만한 경험이니 값지다는 말은 이럴 때 사용하려 한다.


 모든 실천은 시행착오를 거쳐간다. 때론 성공으로 때론 실패로 마주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어느 먼 훗날 지금 보다 조금은 성장해 있을 나의 미래를 위해 거침없이 쌓아 두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무의식적으로 경험은 반응해 줄 때가 있다.    

 

“이러닝 개발해 보셨을까요?”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이제는 “네. 그럼요. 유경험자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다.     


가장 상위버전의 의무 교육 이러닝 개발이라 촬영 후에는 문제 출제가 이어질 것이다. 이 또한 지금처럼 감사지점을 찾으며 걷다 보면 어느덧 종점에 향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종점을 기다리기보다 종점을 향해 걷는 그 순간을 기다리려 한다.

언제나 행복은 종착지가 아닌 여정길에 있기 때문이다.     


열차 안에서 글을 적고 있는 지금 이 시간도 나에겐 행복 여정길이다.

어느덧 어둠이 짙게 깔려 있는 창밖이 보인다. 하루가 지나감을 알려주는 어둠이지만 오늘은 이 어둠마저도 따스하게 다가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마음을 셈하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