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들
학원에 다니지 않는 아이, 학습지나 문제지를 풀지 않는 아이가 바로 우리 아이다. 처음엔 학원도 보내고 문제지를 과목별로 돌려가며 풀렸다. 일단 양이 과했던 것이 문제였다. 하면 할수록 아이와 맞지 않고 좋지 않았다. 분명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과 아이와 긴 회의를 한 끝에 단순한 학습과 관련된 건 모두 그만두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피아노와 영어는 남기기로 했다. 정리하기까지 엄마로서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옆에 있는 또래 아이들이 보이기도 했고 누구는 그랬다더라 하는 건너 건너 사교육 이야기나 SNS에 흘러넘치는 교육정보들에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그렇다고 요즘 교육 트렌트나 아이의 교육에 아예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알고는 있되, 정보가 중심이 아닌, 우리 아이가 중심이 되는 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은 나도 가끔씩은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의 얼굴을 보면 확신이 생긴다. 여백이 있는 아이의 하루에 나도 덩달아 여유가 있는 오후시간을 보낸다. 오전에는 내 시간을 보내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이 학습에 온 신경이 몰두되어 있던 터라 예민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이와 쉴 생각, 놀 궁리만 하고 있다. 룰루랄라. 주로 놀이는 아이가 정해서 함께 하자고 권한다. 그렇지 않은 시간은 각자 자기 일에 집중한다.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그런 내 옆에서 아이는 열심히 색종이로 팽이를 접는다. 한참을 집중해서 접다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면 그림을 그린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담을 제법 그려온다. 그리고는 꼭 나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한다. 나는 "잘했다"는 칭찬보다는 감탄을 하려고 의식한다.
"오~ 멋진데!"
"와! 굉장해!"
"우와~"
"이야~그림이 아주 멋진걸."
"건담이 진짜로 곧 출동할 것 같아!"
나는 엄마에게 "잘했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고 자랐다. 엄마는 첫째인 오빠에게는 엄격해서 칭찬을 못해주고 키운 게 아쉬워 둘째인 나에게는 칭찬을 많이 하려고 애썼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칭찬을 많이 받았다기보다는 평기를 많이 받았다. "잘했다.", "잘했네.", "넌 모든지 잘해.", "역시 우리 딸은 최고야." 이런 말들만 듣고 자라다 보니 최고이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의 잘한다는 소리에 중독되었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하면 엄마를 실망시키고 있는 것이고 엄마 기준에 못 미친다면 나는 더 이상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 같다. 내 아이에게는 칭찬을 가장한 평가감옥을 지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 가있을 때는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아이에 대한 한 가지 생각은 꼭 한다. 새로운 감탄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이따 아이가 그려올 그림, 만들어 올 레고, 접어온 팽이, 아이가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에 어떻게 감탄할지를 말이다.
얼마 전부터 아이는 이런 말을 한다.
"나도 엄마처럼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주었더니 자기 할 일을 찾는 아이. 남편과 나는 예상치 못했던 아이의 말에 당황했다.
"그렇다면 즐거운 할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도록 하자."
남편은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에서 나오는 일본어들을 함께 배워보는 건 어떤지 고민 중에 있고 나는 나와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글을 써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생각 중에 있다. 물론 아이가 하고 싶을 때 함께 하기가 원칙이다. 강제성을 띠면 아이 마음에는 먹구름이 끼기 시작해서 천둥과 번개가 치기 때문이다. (ㅎㅎ)
또 시간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주게 되었던 것은 마음껏 실수할 기회였다. 아이가 스스로 놀이를 찾고 하는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치고 온 적이 있다. 하지 말라는 말이 혀끝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괜찮냐는 말과 함께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줄 뿐이었다. 내 역할은 거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실수하고 넘어져 오면 안아주고 약을 발라주고 돌봐주는 역할 말이다. 그다음에 위험을 감수하도고 또 할지, 말지는 아이가 결정할 문제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은 시간과 실수할 기회, 그리고 감탄이라는 것을.
이미지 출처: 그림책 <내 이름은 자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