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돌이와 집순이가 만나 집집집돌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연애할 때 최고의 데이트는 벚꽃길 산책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다른 커플들은 해외여행도 가고 주말엔 서울 외곽으로 여행도 가는데 우리는 동네에서도 충분히 데이트를 즐겼다. 당시 내 자취방은 신촌에 있었는데 방송국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녹초가 되어 주말에 밀린 잠을 자는 내 옆에서 남편은 책을 읽었다. 오전에 만나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낮잠이 한번 들면 여섯 시간을 내리 자는 나였다. 일어나면 저녁시간이라 저녁을 먹고 학교 캠퍼스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데이트였다. 그렇게 우리는 주로 산책을 하며 대화를 했고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데이트였다.
집에만 있던 우리가 아이를 낳고 달라졌다. 매일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주말 중 하루는 외출을 하곤 했다. 주로 공원에 있는 놀이터를 자주 데리고 다녔다. 키즈카페도 많이 다녔고 어린이 박물관도 열심히 다녔다. 육지에 살 때는 '아이와 가볼 만한 곳'이라고 검색해 찾으면 비슷한 종류의 프로그램이나 시설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아이는 차를 오래 타는 걸 싫어해 서울근교나 편도 한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곳만 갔다. 강남이나 잠실을 가려면 큰 마음을 먹고서 가야 했다. 아이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동네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 다니는 것을 선호했다. 육지에 살 때는 아파트 옆에 큰 호수공원이 있어서 항상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보다 버스나 지하철 이용을 더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제주에 와서는 외출이 쉽지 않게 됐다. 제주에서는 시내가 아닌 시골에 있는 집이라 주변에 자전거를 탈 거리도 마땅치 않고 모든 외출은 차를 타고만 가능하다. 아이는 그것이 불만이 되어 어느 순간부터 외출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주장은 이러했다.
"평일에 학교에서 열심히 살아서 주말 동안은 집에서 쉬고 싶어요. 차는 너무 지루해요."
그런데 집에만 있으면 아빠에게 계속 놀아달라고 보채거나 그렇지 않으면 미디어 하는 시간인데 부모로서 그 시간들을 보고 있기가 참 힘들다. 자연으로 많이 데리고 다니고 싶은 우리의 마음을 아이는 알려나 모르겠다. 제주에 온 지도 9개월이 지났다. 우리는 서쪽에 사는데 동쪽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성산일출봉이나 우도는 꿈도 못 꾸고 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 본다.
사실 아이가 외출을 싫어하는 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닮았다고 남편은 고백했다. 교사 이셨던 어머니는 남편과 시누형님을 주말마다 유적지나 박물관을 데려가셨다고 한다. 남편은 그 외출이 싫어서 매번 투덜거렸다고 한다. 너무 투덜거리면 혼자 집에 있기도 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마치 우리 아이와 닮았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역시 피는 못 속여. 외출하기 싫어하는 아이를 설득할 때 남편은 평상시 아이를 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워한다. 당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은 알았으려나. 아이를 낳는 이유는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라는데 어머니와 우리 부부는 외출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 덕분에 그 사실을 배웠다고 한다.
오늘은 바다에 데려가고 싶은데 어떻게 꼬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