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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디작은 몸으로 버팀목이 되어주는 너에게

아이를 키운다는 건 아이에게 기대어 내가 자란다는 것

by 원지윤

아이는 우리 부부에게 온 이후부터 우리의 버팀목이 되어왔다. 너무 어린아이에게 주어진 무거운 책임이 아닌가 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이만 보고 있으면 모든 걱정이 쉬이 잊히고, 힘든 세상살이가, 알 수 없는 내일이, 쉴 새 없이 일렁이는 바다에 띄운 조각배처럼 불안정한 지금이, 버텨지는 것을. 우리 부부에게 아이는 그런 존재다. 수천번 수만 번을 밖에서 넘어지고 깨지고 털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환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해 주는 아이가 있기에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우리는 그 환한 웃음에 기대어 10년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아이를 임신했을 당시 우리는 사회초년생과 대학휴학생이 만나 결혼을 했기에 작은 월세 집에 살았고 차는 당연히 없었고 있어야 할 직장도 없었다.(물론 우리는 직장에서 일하면서 만났다. 나는 이직할 타이밍에 아이가 찾아왔고 남편은 휴학 중에 직장에 취직을 했다가 복학을 하기 위해 그만둔 상태였다.) 정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갈 것들만 수두룩했던 때에 갑작스럽게 찾아와 준 아이였다. 수많은 것들을 갖춰가야 하는 현실에서 사정없이 흔들려 견디다 못해 결국 각자의 길로 가자는 결론에 이르러 헤어질지도 모르는 우리 둘 사이를 단단히 묶어줄 생각으로 와준지도 모른다.


이직준비생 엄마와 대학생 아빠에게 와준 아이는 누구보다 강했다. 우리 셋 중에 제일 강했다. 2.6kg으로 작게 태어났지만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젖을 먹었고 낮과 밤이 다르게 쑥쑥 자라났다. 모유가 차고 넘쳐 옆집아이 젖동냥까지 해줄 정도였으니, 어른들은 아이를 보고 복을 타고났다고 그랬다. 없는 형편에 모유까지 나오지 않았다면 분유를 샀어야 했을 텐데 다행히 넘치는 모유덕에 큰 걱정은 덜고 키웠다.


오늘 아침 아이가 싸준 점심 도시락을 보고 있자니 그때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우리에게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남편은 말한다. 그때 본인 세상의 전부는 아이와 아내였다고. 두 사람 때문에 폭풍 같았던 그 시절 잘 지나왔노라고.


맞다. 안정적으로 직장과 집, 차 모두 갖추고 해야 하는 것이 결혼이 당연한 때, 우리는 무모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무모했다. 서로의 인생을 두고 베팅을 했고 아이가 없었다면 각자의 길로 돌아섰을 순간들이 머릿속에 남아있다. 우리는 그렇게 엄마라는 이름, 아빠라는 이름으로 여기까지 성장했다. 작디작은 너에게 기대어.


태어나줘서 고마워.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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