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을 꽤 좋아하지만 요리는 썩 즐겨하지 않는다. 내 요리를 남이 먹게 되면서부터는 더더욱 흥미가 떨어졌다. 모든 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영유아기의 내 아이들은 엄청난 미식가였다.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입을 꾹 다물고 숟가락이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며 식판을 뒤엎어버렸다. 만드는 것도 귀찮은데 즉각적인 평가까지 받아야 한다니. 이렇게 부당한 일이 어디 있나.
이유식을 만들면서 다양한 식재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얀색 브로콜리같이 생긴 콜리플라워, 단맛 뺀 바나나 같은 식감의 아보카도, 다양한 색깔의 파프리카까지. 이유식 레시피가 가득 담긴 책을 보면 알록달록한 색깔의 이유식들이 정갈하고 맛있어 보였다.
‘그래! 나도 만들 수 있어.’
제대로 각을 잡고 만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내 숟가락을 꿀떡꿀떡 받아먹으며 방싯방싯 웃는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고기를 끓이고 다지고 콜리플라워를 삶고 갈고 아보카도를 으깨고 섞고 드디어 푸르딩딩하면서도 연회색 빛이 도는 이유식이 완성됐다.
만드는 내내 묘한 질문이 피어올랐다.
‘음,,, 이거 맛있는 거 맞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만큼 아이가 맛있게 먹어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심지어 요리책에 나온 메뉴인데 당연히 우리 아이도 잘 먹겠지. 아이는 손가락을 쭙쭙 빨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아, 이거 먹어보자, 아아-.”
“아구 맛있네, 아이 맛있다아.”
주문을 외우듯 맛있네 맛있어를 연발하였지만 아이는 고개를 이리 홱, 저리 홱 돌렸다. 그나마 들어간 첫 숟갈마저도 침을 부글부글 끓어가며 뱉어내고 있었다. ‘맛있네, 맛있어.’가 ‘먹어야지, 쓰읍, 혼난다. 아- 해!’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결국 아이를 ‘김’ 선생께 보낼 수밖에 없었고 아이는 이런 게 음식이라는 듯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외면당한 채 쓸쓸히 식어가는 푸르딩딩한 이유식에 눈길이 갔다. 들어간 재료값을 생각하니 그냥 버릴 수가 없었다.
‘나라도 먹자.’
한 입 먹어보니 재료값이고 뭐고 도저히 먹을 수 있는 맛이 아니었다. 이걸 맛있게 먹는 아이가 있다면, 맛도 이상하지만 그 아이의 미각도 이상한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도 넣어보고 참기름도 둘러보았지만 회생불가. 완벽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
그때의 아이를 먹여 살린 건 70퍼센트는 김이요, 20퍼센트는 계란이요, 10퍼센트는 두부였다. ‘김’ ‘닭’ ‘콩’ 선생은 가격도 합리적이면서 여러 가지 음식에 매끄럽게 어우러지는 능력이 있었다. 재료 자체의 맛은 밍숭맹숭한데 다른 음식과의 콜라보가 뛰어난 식자재랄까. 바삭하게 구운 김에 소금을 뿌리면 쌀밥의 맛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고, 김치찌개 속의 두부는 양념이 쏙 배어 뭉근한 맛을 뽐냈다. 라면 속의 계란은 말해 무엇하나.
사실 김, 계란, 두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어릴 적 아빠는 매 끼니마다 김을 싸 먹는 나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김을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김 집 딸인가 보다. 요 앞 시장에 김 가게 알지? 거기 가서 진짜 엄마냐고 물어볼까?”
나는 당황하여 김을 싸던 손을 멈추고 변명을 했다.
“아냐. 김 안 좋아해.”
“김 집 가서 진짜 엄마 찾으면 김을 엄청 많이 먹을 수 있는데? 빨리 가 보자.”
엄마는 가만히나 있지,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맞네 맞아. 김 집 딸이네, 빨리 가부러라.”
하며 까륵까륵 웃어댔다.
내 머릿속에서는 엄마 아빠가 김을 좋아했던가에 대한 물음표가 생겼고 밥 먹을 때마다 내 앞에만 한가득 쌓여 있던 김 통이 떠올랐다. 나는 왜 이렇게 김을 좋아하나, 엄마 아빠는 김을 싫어하는데 나만 좋아하는 거면 진짜 내 엄마는 김 집 아주머니인가, 지금 일어나서 집을 떠나야 하는 건가, 등의 온갖 생각을 하느라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어른들의 장난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시시각각으로 얼굴색이 변해갔는데 그 모습을 보던 엄마 아빠는 귀엽다며 깔깔댔다.
이런 나의 식성을 쏙 빼닮았는지 아이들은 김, 계란, 두부를 그렇게도 잘 먹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김 속에 당근을 넣어 싸 먹이고, 계란말이 속에 각종 야채를 다져 넣었으며 두부에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볶아댔다. 맛있는 거 더하기 맛있는 거는 더 맛있는 것이 되어 아이들 입 속에 쏙쏙 들어갔다. 김, 닭, 콩 선생의 보호 아래 무럭무럭 커나간 아이들은 이제 새로운 맛을 찾아 짬뽕이나 마라탕까지 섭렵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할 수 있는 건 익숙함 덕분이지 않을까. 익숙함이 만들어낸 여유는 다른 것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내게 가장 익숙한 맛을 제공하는 김과 계란과 두부처럼 말이다. 심지어 다른 재료들과 완벽하게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부드럽게 감싸 전달하기에도 좋다. 아플 때면 다른 자극적인 맛들은 제쳐두고 익숙한 맛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처럼 익숙한 것은 나의 가장 밑바닥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친정집에 갔다. 내게 가장 익숙했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아닌 곳, 그때의 익숙함 덕분에 나는 그곳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딸, 김 줄까?”
“응, 근데 왜 엄마 집에는 항상 김이 있어? 포항 이모가 선물 보내주시는 거야?”
“선물은 무슨, 사는 거지. 네 아빠가 김 좋아하잖아.”
내 앞으로 슬쩍 밀어진 김 통에서 아빠가 한 장 한 장 김을 빼드신다.
김 집 딸은 무슨, 아빠 딸이고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