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졸업시키고 나면 누가 가장 생각날 것 같아요?”
“우리 반 전부.”
“에이, 한 명만요.”
“진짜야. 선생님은 아마 졸업식날 너희들 보내는 게 아쉬워서 펑펑 울 것 같은데?”
라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 아이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떠오른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하온이였다.
하온이는 소금 같은 아이다. 심심한 교실에 간을 적절히 입혀 분위기를 살릴 줄 아는 감각 있는 아이였다. 나는 자주 그 아이에게 눈길이 갔다.
하온이는 책을 연극배우처럼 실감 나게 읽을 줄 알았다. 덕분에 아이들은 자주 내게 찾아와 물어보곤 했다. “선생님 언제 책 읽어요?” “혼자 읽으면 재미없는데 같이 읽으니까 재밌어요.” 나 역시 책 읽기 시간을 기대했고 기다렸다. 하온이는 매 수업시간마다 발표를 해서 진도가 나가는데 도움을 주었고 재밌는 질문을 던져서 주제가 확장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하온이는 3월의 첫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하온이는 매 순간순간 진심을 담아 나를 칭찬했다.
“선생님, 제가 어제 선생님 예쁘다고 말했었나요?”
“응 했어. 부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말해.”
“선생님, 오늘도 예쁘시네요. 내일도 예쁘실 테니 미리 말할게요. 내일도 예쁘시네요.”
남편도, 심지어 그 남편이 남자친구였을 때도, 이렇게까지 예쁘다고 말해주진 않았던 것 같다. 하온이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묘하게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또, 하온이 덕분에 칭찬도 계속 들으면 의미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 하온이가 유독 날을 세우는 아이가 있었는데 원호였다. 원호는 착하지만 많이 엉뚱한 아이였다. 손가락을 넣으면 넣을수록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코딱지를 끄집어내기 위해 자주 코피가 났다. 문제는 그 공간이 교실이었고 “선생님 코피 나요!”라고 외치며 피 묻은 검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 보이는 아이였다. 교실에서 소리 나지 않게 방귀를 뀌었으면 그만인데, 굳이 “얘들아 미안! 나 방귀 뀌었어.”라고 말하는 아이였다.
그런 원호와 하온이는 4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고 했다. 이름의 시작 글자가 비슷해서 두 아이는 나란히 번호를 부여받았다. 거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한 시기였다. 방역수칙이 강화되어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를 파악하기 위해 지정 좌석제가 실시되었다. 결국 두 아이는 일 년 내내 서로의 옆자리에 앉았다고 했다. 교실에서도 급식실에서도 하루종일 옆에서 원호를 지켜보아야 했던 하온이는 원호를 미워할 수밖에 없었다. 원호도 자기를 미워하는 하온이를 싫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두 아이가 6학년이 되어 다시 만났다. 여전히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었고 두 아이 모두 잘못한 것이 없으니 화해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런 두 아이를 더 깊은 갈등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우리의 수학여행 장소는 놀이동산이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함께 다닐 친구를 모으기 시작했다. 원호는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이대로라면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외톨이가 될 것이 뻔했다. 원호는 현재라는 친구와 팀이 되고 싶어 했고 현재는 하온이와 팀이 되고 싶어 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원호, 현재, 하온이를 한 팀으로 묶고 거기에 내가 들어가서 원호를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상황 봐서 원호를 데리고 팀에서 살짝 빠져나와야겠다. 하온이도 이해해 주겠지.’
이렇게 현명한 생각을 하다니, 솔로몬이라도 된 것 마냥 우쭐해졌다.
다음날 수학여행 팀을 발표했다. 아이들은 지금 당장 놀이동산에 도착하기라도 한 것처럼 설렘에 잔뜩 부풀었다.
“쾅!!!”
설렘이 터져버린 소리가 났다. 하온이가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다.
“하온아 잠깐 이야기 좀 할까?”
하온이를 데리고 복도로 나왔다.
“하온아, 4학년 때 일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미움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
“선생님은 하온이랑 같은 팀이어서 너무 좋은데. 같이 놀이기구도 타고 그러자. 응?”
하온이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더니 자신의 두 손을 서로 맞잡으며 평소의 활기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녀 선생님과 함께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과장된 몸짓과 밝은 목소리, 그것과는 어울리지 않게 하온이는 유리알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대답했다. 그 아이의 굵은 눈물이 바닥을 얼룩지게 만드는 순간, 나는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하온아, 미안해. 선생님이 너무 큰 욕심을 부렸어. 정말 미안해.”
하온이와 나는 다른 마음이었다. 남의 지나간 상처를 너무 단순하게 바라본 내 잘못이었다. 어른도 하기 힘든 이해를 열세 살 어린이에게 바랐던 건 너무 지나친 욕심이었다. 하지만 하온이는 그 순간에도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렸고 애써 평소를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어렵고도 힘든 일을 해냈다는 걸 하온이가 알고 있으면 좋겠다.
*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