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사랑하는 일
<히든 _꼴까닥 섬의 비밀> 이재문
이재문 작가의 신작 <히든>에서는 세상에 숨겨진 비밀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희지라는 친구가 등장합니다. 우연히 희지의 모험에 휩쓸리게 된 재우는 자신의 실수로 인해 일이 꼬이게 되자 진심을 감추고 변명하기에 바쁘죠.
“난 잘못 없어.”
재우가 내뱉은 이 말에는 잘못을 인정하면 스스로가 완전히 무너질 것 같은 두려움이 숨어있습니다. 재우는 무너진 자기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끊임없이 희지 탓을 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다 내 잘못이야.”
재우는 변명하지 않는 희지의 태도에 당황하며 자신이 밉지 않냐고 묻습니다.
“뭐, 솔직히 말하면 널 탓하고 싶어.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속으로 널 원망하고 있었고. 그런데 이제 그만하려고. 우리 할아버지가 그랬거든. 남을 탓하는 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나 하는 거라고.”
희지와 재우의 대화를 읽으며 최근 저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상하게 꼬이는 날이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괜히 거슬리는 그런 날 있잖아요. 바쁜 와중에 소집된 회의에서는 실없는 농담이 오가고, 부랴부랴 교실로 돌아왔더니 아이들은 고새 다투었는지 상담을 요청하고, 오늘까지 신청하기로 한 계획서는 제출도 하지 않은 채, 다른 분야의 신청서를 들이미는 빌런의 등장으로 신경이 곤두서는 그런 날이요. ‘선생님 얼른 회의 내용을 결정하면 좋겠어요.’ ‘이미 계획한 신청서를 먼저 제출해 주시고 이야기 나누시죠.’ 같은 해야 할 말들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꿀꺽 삼키느라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습니다.
인정해야겠어요. 저는 겉으로는 매우 어른스러운 ‘척’ 착한 ‘척’ 행동하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합니다. 마음속에는 시기, 질투, 비난, 자만, 교만함이 들끓고 있죠. 애써 그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예쁘게 포장하며 숨기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와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둘째의 돌봄 선생님이었어요.
“돌멩이 어머님, 오늘 과학 시간에 활동이 조금 어려웠거든요. 돌멩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는지 화가 엄청 많이 났어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데 달래지지 않네요.”
“선생님 죄송해요. 돌멩이가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당황스러우셨죠. 제가 집에서 지도를 잘하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또 다른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어요. 스쿨버스 도우미 선생님이었죠.
“어머님, 돌멩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버스에서 계속 울면서 왔는데,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도 집에 안 가겠다고 계속 울고 소리를 지르네요.”
저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돌봄 선생님, 돌봄 교실 친구들, 버스 기사님, 도우미님, 버스에 타고 있는 학생들이 일제히 저를 비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저는 끊임없이 화풀이 대상을 찾고 있었어요. 별의별 게 다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어느 정도였냐면 인쇄 속도가 매우 느린 우리 반 프린터에도 열이 받았고, 실물화상기도 없는데 미러링 마저 안 되는 티브이에 열이 받았고, 동글을 설치해보다가 선이 짧아서 실패한 것까지도 열이 받았죠. 사실 이건 이미 지난주에 다 겪었던 일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가장 비참했던 건 운전을 할 때였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엔 학교가 많거든요. 중학생 아이들은 차를 보지도 않고 마구마구 도로를 지나갑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그러려니 했을 텐데,,, 학생 한 명이 갑자기 차도로 한 발 내려오더라구요. 고개를 돌려 저를 힐긋 보더니 움직이고 있는 제 차 앞으로 그대로 들어왔어요. 깜짝 놀라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해서 빵빵빵! 경적을 세 번 울리고 창문을 내렸어요. 화풀이 상대를 잘 만난 거죠. “야! 초딩도 아니고! 차가 오고 있는데 인도랑 차도도 구분 못하냐?”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어떤 아저씨가 뒤쪽에서 황급히 달려오더니 “제 아들이에요. 미안합니다.” 이러는 거예요.
저는 제가 너무 부끄러웠어요. 착하지도 않은 게 착한 척하는 것도 부끄럽고, 내 탓이 싫어서 남 탓으로 돌리기 위해 애를 쓴 것도 부끄럽고, 내 화를 풀기 위해 화풀이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도 부끄러웠죠.
<히든>에서 희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자기가 못난 바보처럼 보이는 걸 견딜 수 없는 거야. 그래서 자기 대신 잘못을 덮어쓸 희생양을 찾는 거지. 근데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야. 잘하든 못하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진짜 사랑이지.”
저는 스스로를 완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완벽한 나’라는 이상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못 미치는 ‘부족한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 바빴죠. 그것을 인정하면 진짜 못난 내가 되어버릴까 봐 끊임없이 탓할 상대를 찾았습니다. <히든>에서 희지 탓을 하던 재우처럼 말이죠.
부족한 나, 후회하는 나, 서툴고 흔들리는 미완의 나를 사랑해야겠습니다. 어쩌면 나를 가장 많이 흔들고 지치게 만드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모른 채 지나치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히든>의 희지와 재우 덕분에 그 비밀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