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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해 May 11. 2024

시작하는 마음

2024. 6학년

  2024년 2월의 마지막 날에 평양냉면을 먹었다. 2월 29일이었고 4년에 한번씩 돌아오는 366일 중의 하루였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365.25일 이라고 한다. 우리의 달력은 365일이어서 이를 보정하기 위해, 4년에 한번씩 하루의 시간이 더 추가되는 셈이다. 하지만 100년에 한 번은 2월 29일이 없는 채 지나간다고 한다.


  2월 29일에 태어나는 사람은 4년에 한번씩 생일을 맞이하는 건가. 그나마 4년에 한번씩 돌아오던 날이 100년째에는 없는 날이라니, 그 날을 기다리는 마음은 속상하려나, 서글프려나, 후련하려나, 같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지구의 시계와 우리의 시계를 일치 시키기 위해 세밀한 계산과 자잘한 규칙이 만들어지는 것이 신기하다. 한 번쯤 무시하고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그 시간의 틈이 쌓이고 쌓여 먼 미래에 겨울이 봄이 되고, 봄이 여름이 되는 날들이 만들어질까. 그런 날들이 찾아오기도 전에 지구 온난화로 계절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평양냉면을 먹고 싶었다. 누군가는 행주를 빤 물에 빠진 메밀면이라고 혹평하고, 누군가는 평양냉면 투어를 다닐만큼 매력적이라고 했다. 심지어 가격도 비싸다. 4년에 한번 주어진 2월 29일이라면 음식에 관해 한번쯤 실패를 해도 한번쯤 성공을 해도 아무 상관없지 않을까.


  11시가 안되어 식당 문을 밀고 들어섰다.

  “평양냉면은 많이 드셔보셨어요?”

  “아니요. 저 오늘 처음이에요.”

  “잘 찾아오셨어요. 그럼 먹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면을 풀지 말고 육수부터 먼저 드셔보세요.”

  “그릇채 들고요?”

  “네”


  사장님의 말씀대로 육수를 마셨다. 꿀꺽, 시원하고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지나갔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고소한 뒷 여운이 남는 맛이었다. 맛있냐고 물어보는 사장님께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호로록 거렸다. 맛있고 개운하고 시원했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거리들이 잔잔하게 쌓여있었는데, 먼지같은 걱정들이 조금은 정리되는 맛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걱정은 실제로 큰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들을 통제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불안이 만들어진다. 결국 상황이 어렵다기보다, 내가 만든 불안이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흘려보낼 것은 흘려보내고 나아갈 건 나아가야지.

  평양냉면은 술 마시고 난 다음날, 해장하기 딱이겠다. 4년에 한번씩 먹는 건 좀 길고, 1년에 한번씩 먹고 싶은 맛이라고 하겠다.


  지난 1월에 6학년 아이들을 졸업을 시키고 한동안 울적했다. 엘리즈 그라벨의 <우리는 모두!> 그림책에서처럼 함께 쌓아올린 우리의 탑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랄까. 중학교라는 더 큰 무대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시 처음부터 쌓아올려야겠지만, 그 무너짐과 헤어짐이 아쉬워서 그렇게도 울적했나보다. 다시 쌓아올릴 때는 더 쉬워지겠지. 다시 무너뜨릴 때도 더 쉬워지겠지.


  2월 29일의 오후에는 첫 날 아이들과 함께할 자료를 만들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계획을 세울 때가 가장 설레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교실 속에서 혼자 설렜다.



#2월29일

#평양냉면

#전주옥면

#새학기준비

#우리는모두!

#엘리즈그라벨

#좋아해서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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