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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무석 Dec 24. 2021

세무사의 공부법

궤도 이론

공부를 하면서 나는 크게 기복이 있는 편이 아니었다. 그저 남들이 공부를 시작할 때 나도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고 남들이 집에 갈 때 나도 짐을 싸서 집에 돌아갔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공부가 잘 되거나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잘 되던 날은 그날 배운 이론이 귀에 쏙쏙 들어와 문제도 쉽게 풀렸다. 안 되던 날은 책을 보고 있어도 머릿속에 딴생각이 가득해 도무지 책 한 장 넘기기가 힘들었다. 잘되면 잘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걱정이 늘어만 갔다. 


중요한 것은 내가 달력에 공부시간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매일의 공부시간을 기록하고 매주 정산을 하면서 한 주를 돌아보곤 했는데, 공부가 잘 안 되던 주는 7일 동안 매번 달력을 볼 때마다 고통을 받았다. 만약 월요일에 공부시간이 적었다면 나는 일요일까지 아쉬워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부시간이 많은 주는 기뻐만 했느냐? 체력이 떨어져서 다음 주에 그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야 했다.


그렇게 몇 년을 스스로 고통을 주면서 공부를 했다. 합격하고 나서 짐을 정리하던 중에 달력이 쌓여있는 걸 발견했다. 매해 시간을 기록했으므로 달력엔 숫자로 가득했다. 할 일도 없던 차에 시간을 더해보았다.


첫 해  71915분. 

‘많이 했네.’ 


두 번째 달력, 66740분. 

‘좀 줄었네, 이때는 수업을 많이 들었었지.’ 


세 번째 달력, 66565분. 

‘정말 열심히 한 해였는데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네 번째 달력, 61845분.

 ‘허리 아파서 많이 못 앉아있던 해였는데, 세 번째 달력이랑 비슷하네.’ 


다섯 번째 달력, 65250분. 

‘어라 매해 비슷하네!’


그날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공부를 하느라 1년 내내 규칙적으로 하진 못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나는 매해 유사한 시간을 공부하는 데에 보냈었고, 나는 언제나 궤도에 올라가 있었다. 하루하루가 매번 보통의 수험생 궤도에서 이탈한 것 마냥 불안하기 일쑤였는데, 나는 제대로 가고 있었던 셈이다. 


달리는 지하철은 곧장 앞을 향해 가는 것 같지만 뒤를 돌아보면 구불구불 굽어진 길을 달리고 있다. 반면에 수험생활은 굽이굽이 굽어진 길을 가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바른 길을 걸어가고 있었던 셈이다. 


수험생들이 대게 그러하다. 크게 어긋난 수험생들이 아니라면 누구나 저마다의 길을 곧게 걷고 있다. 가는 길은 길어 보이고 지나온 길은 짧아 보인다. 수험생들은 그 길이 더욱 길어 보인다. 

불안한 심리 상황이 사실을 왜곡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다. 내가 걸어온 길이 그러하듯 합격한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언제나 바른 길을 걷고 있었다. 


원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수험생활을 시작했다면 합격하는 날까지 무식하게 자신을 믿는 방법뿐이다. 합격을 위해서 길을 나선 이상 목적지로 가는 길은 하나뿐이다. 그러니 우리는 합격할 때까지 길에서 이탈할 수 없다. 우리는 궤도에서 이탈한 적이 없는 셈이다. 


불안한 마음은 자신을 갉아먹고, 수험생활을 길게 늘어뜨릴 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자신을 믿자. 자신을 못 믿겠으면 자신을 믿어줄 사람을 생각해보자. 


결국에 시련을 이겨낼 힘을 주는 것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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