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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oPer Nov 22. 2021

입사 동기가 생겼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첫 출근날이다. 비록 9호선 갈아타는 곳을 헤매 한 바퀴를 빙 돌았다지만 하루를 망칠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진짜 망친 건 내 수면 패턴이었다. 긴 백수 생활로 인해 (어떻게든 1시까지 돌려놓긴 했지만.) 빙글 돌아버린 생활 패턴은 어김없이 늦은 시간… 7시 50분에 날 깨웠다. 집에서 나가야 하는 시간은 적어도, at least 8시인데. 전날까지 잠을 이루지 못해 3시까지 뜬 눈으로 새다 겨우 기절하듯 잠든 대가였다. 하… 저 먼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플랑크톤 한 마리가 더 부지런하겠다.


대중교통이 빙 둘러가는 경로였기 때문에 택시를 잡는다면 22분 안에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월급 전 취준생의 통장을 갖고 있었기에 그조차 아까웠다. 결국 화장을 제물로 바치고 지하철을 향해 부리나케 달리기로 했다. 우사인 볼트보단 못하겠지만 나는 정말… 중학교 2학년 시절 수행평가로 왕복 달리기를 했을 때보다 더 간절했다. (사실 그때도 반쯤 달리다 포기했다.) 첫 출근의 첫인상을 지각자로 내몰리긴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회사. 다행스럽게도 정시 4분 전 도착했다. 어젯밤 계획은 미리 15분 전에 도착해서 여유롭게 등장하는 거였는데. 그런데 마침 컴퓨터가 늦게 도착하여 아직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다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솔직히 늦을 뻔한 입장에선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좀 더 천천히 해주셔도 돼요. 말하고 싶은 것을 꾹꾹 내리눌렀다.


새 지부를 신설하고 팀을 엄청나게 확충하는 단계에서 입사한 터라 나와 같은 날에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다. 입사 동기라는 건 대기업에서나 볼 줄 알았는데, 신기했고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함께 들어온 분들은 MD 두 분과 패키지 디자이너 한 분. 그리고 사수 역할을 해주실 웹디자이너 한 분이셨다. 사수와 동시 입사라니 살짝 아이러니하다. 앞으로 잘 헤쳐나가면 되겠지. 개인적으로 남성에게 살갑지 못한 (남녀 분반 학교에 여대까지 나와서 너무 어색하다.) 성격이라 한 마디 꺼내기가 너무 어려웠다. 친해지고 싶은데 일단 나이부터 7살 정도 차이 나서… 공감대 형성이 어려운 것 같다.


오늘은 어떻게 업무가 돌아가는지 숙지만 해놓으라며 팀장님께서 신입의 부담을 덜어주셨다. 또한 같은 직무는 아니었지만 기존 디자이너 분께서도 신입이니 레퍼런스 먼저 보는 게 중요하다 하셔서 자사몰만 주야장천 뜯어봤다. 이렇게…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기까지 했지만 나중에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겠지. 너무 일이 많아도 스트레스지만 적당한 바쁨이 있어야 집중하는 타입이라 그냥 기획서 보고 진행할까 싶기도 했다. 4시쯤 되자 너무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슬슬 졸음이 몰려오길래(3~4시간 잔 사람.) 자사몰 제품을 노트에 옮겨 적으며 외웠다. 탕비실에서 레쓰비도 가져왔다. 암어 쌔비지… 네 커피 쌔벼줄게…. 소셜 마켓의 각기 다른 사이즈도 한 번에 볼 수 있도록 노트에 정리했다.


하루 종일 한 일이라곤 자사몰 클릭과 상세페이지란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는 것, 그뿐이었던 것 같다. 음음. 항상 UI, 포스터, 카드 뉴스 같은 것만 해왔던 터라 상세페이지는 처음이다. 눈으로만 보던 직무지만 잘할 수 있을 거란 느낌이 온다. 세세한 부분은 부족할지 몰라도 평균은 할 수 있겠지. 나도 디자인과 4년제니까! 기업 리뷰 사이트에서 '군대식 문화'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해서 불안함을 품에 안고 입사했는데, 생각보다 잘 대해 주시고 프리한 분위기라 놀랐다.


앞으로의 목적은 2년 동안 돈을 모으면서 땡! 끝나는 순간 이직하는 것.

그 순간을 위해 틈틈이 준비하고 기회를 잡는 것.


내게 어떤 기회가 올지 모르나 돈이 없어 할 수 없었던 모든 것들을 해볼 요량이다. 하고 싶은 걸 하면서. 크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하다 보면 뭔가 하나는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모두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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