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기록, 성찰의 시작

내 목소리를 듣는 용기

by 차미레
조금 더 나은 교사로 이끄는 소소한 습관이 시작되었다.


언젠가부터 수업을 하면서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말을 다시 듣고, 한 문장 한 문장 되짚어보았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녹음 속 내 목소리는 낯설었고,

그 안에는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말투,

어색한 웃음, 서둘러 던진 질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렇게 말했구나.’

‘이런 표정을 지었구나.’

내가 가르치는 장면 속에는 생각보다 많은 나의 습관과 무의식이 숨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

정작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다음 문장으로 서둘러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의도치 않게 내 기준의 답으로 유도하는 순간도 있었다.


부끄러움이 지나가야 비로소 배움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시 들어보면, 내가 아이들에게 건넨 말의 의도와 결과가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이 있다.

그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말은 정말 학생에게 닿았을까?”

“이 질문은 아이를 열어주었을까, 아니면 닫아버렸을까?”


처음엔 내 발화 중심으로 들리던 녹음이,

이제는 점점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과 웃음, 잠시의 정적, 서로를 바라보는 기류 속에서

‘수업의 결’이 보였다.

수업은 결국 교사의 말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호흡의 결과라는 걸 조금씩 깨닫고 있다.


수업을 녹음해 다시 듣는 일은 단순한 점검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언어와 관계를 해석하는 과정이자,

내가 교사로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아이의 대답 뒤에 따라붙은 나의 반응,

한 아이가 말을 멈췄을 때 이어진 정적,

그리고 그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 모든 장면이 교사로서의 나를 비춰준다.


한 번 들을 때는 나의 의도,

두 번째 들을 때는 보완할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 번째 들을 때는 나아갈 방향이 그려진다.

그렇게 한 차례의 수업이 여러 겹의 배움으로 확장된다.

같은 장면이라도 다시 들으면 전혀 다르게 들리고,

그 차이를 발견하는 순간, 수업은 다시 살아난다.


돌이켜보면, 나는 완벽한 수업을 위해 녹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어떤 교사로 아이들 앞에 서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날의 목소리 속에서 ‘가르침’보다 더 큰 ‘배움’을 발견했다.

수업은 완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날마다 수정되고 다듬어지는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게 수업 녹음은 부끄러움의 기록이 아니라,

성찰의 도구, 그리고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그 불완전함을 직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오늘도 나는 내 목소리를 듣는다.

그 속에서 다시, 배움의 가능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렇게—

넘어지고,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며

오늘도 ‘조금 더 나은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배우며 자라간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4화세상에 공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