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선에 설 수 있는 용기

이솝우화 『토끼와 거북이』가 건넨 참여의 의미

by 차미레
토끼와 거북이의 이야기는 속도와 승부의 우화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조금 더 다정한 질문이 숨어 있다.
비록 이길 수 없을 것 같아도,
그래도 한 번은 나서보겠다는 마음.
우화는 그 시작의 용기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토끼는 방심했고, 거북이는 성실했다.”


하지만 교사의 눈으로 보면 이 우화는

‘승리’보다 ‘태도’의 이야기에 가깝다.

누구나 서로 다른 속도로 성장하는 교실처럼,

우화 속 경주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속도를 시험하는 장면이었다.


교실에는 늘 빠른 아이들이 있다.

금방 이해하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앞서 나가는 아이들.

그리고 조금 느린 아이들도 있다.

시간이 더 필요하고, 자주 멈춰 서고,

자칫 뒤처진 듯 보이는 아이들.


하지만 느림은 결함이 아니다.

그저 다른 리듬의 성장일 뿐이다.


교사의 역할은

빠른 아이에게 ‘멈춤’을,

느린 아이에게 ‘계속’을,

모든 아이에게 ‘자기 속도’를 가르치는 일이다.


거북이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토끼와의 경주에서 자신이 불리하다는 사실을.


그럼에도 경주에 참여했다.

이건 성실함이 아니라

비교 앞에서도 나만의 시작을 선택하는 용기다.


그 용기는 교실에서도 매일 피어난다.

틀릴까 봐 망설이던 아이가 손을 드는 순간,

그림이 자신 없다던 아이가 붓을 드는 순간,

달리기를 무서워하던 아이가 출발선에 서는 순간.


그 순간들은 모두

거북이의 첫걸음과 닮아 있다.

참여가 이미 성장의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거북이는 자신의 속도를 끝까지 유지했다.

그건 단순한 성실이 아니라

자기 속도에 대한 믿음이었다.


반면 토끼는 빠르다는 강점에 갇혀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우화가 말하는 건

속도가 아니라 태도,

그리고 속도를 다루는 자기 인식의 힘이다.


거북이가 이긴 이유는 느려서가 아니라

끝까지 걸어갔기 때문이다.

토끼가 진 이유는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날은 토끼이고,

어떤 날은 거북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가 아니라

내 속도로 출발선에 서는 용기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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