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이 묻는 사랑의 자리
은유 작가가 내게 써준 한 구절이 있다.
“먼 이웃을 사랑할 시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은유 작가가 내 책에 남긴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신 오래 멈춰 섰다.
사랑이라는 말과 ‘먼’이라는 형용사가
쉽게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은
미등록 이주아동에 관한 르포다.
존재하지만 제도 안에서는 지워진 아이들,
국가의 경계와 서류의 틈에서
이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나는 오래전부터 르포에 관심이 있었다.
현실을 꾸미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차갑게 만들지 않는 글.
은유의 글은 바로 그런 자리에서
사람을 데려온다.
숫자가 아니라 얼굴로,
정책이 아니라 삶으로.
교사로서 이 책을 읽는 일은
편안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나는 그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낯설게만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 중에는
이름은 출석부에 적혀 있지만
모든 활동에 똑같이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었다.
서류 한 장이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한 번 더 확인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는 종종 기다리는 쪽이 되었다.
체험학습 안내를 전하며
“이 부분은 조금 더 확인해 보자”라고 말해야 했던 순간,
가정환경과 관련된 지원을 논의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말부터 고르게 되었던 시간들.
그 장면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겹쳐졌다.
그때마다 나는 담임으로서
아이를 먼저 생각하려 애썼지만,
교실 바깥의 문제까지 책임질 수는 없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지점—
교사의 선의와 제도의 한계 사이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질문을 미뤄두었는지를
조용히 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종종
“교실은 모두에게 공정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같은 규칙, 같은 기준.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다시 묻게 된다.
같음은 정말 공정이었을까.
아니면 이미 불리한 아이들을
더 조용히 밀어내는 방식은 아니었을까.
‘먼 이웃’이라는 말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오래 남았다.
먼 이웃이란,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해 왔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도와주기엔 너무 멀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선 하나를 그어버린 존재들.
이 책은
그 선을 지우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 선 앞에
잠시 멈춰 서 보자고 말한다.
사랑하지 못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고.
오늘도 교실 어딘가에는
있지만 없는 아이가 있을지 모른다.
이 책을 읽은 교사라면,
적어도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것이
은유가 말한
먼 이웃을 사랑할 시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