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민들레 처럼』이 건넨 텅 빈 충만감
몸이 비어간다고 느낄수록
마음속에는 오히려 무언가가 채워지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시간,
씨앗으로 머무는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는 교실을 다시 바라본다.
몸이 텅 비어간다는 느낌이 들면 들수록
한편으로는 마음속 창고에
무엇인가가 가득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텅 빈 충만감, 바로 그것이었다.
이 문장에서 나는 오래 멈췄다.
교사로서의 시간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더 말을 아끼게 되었고,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늘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어간다고 느끼는 그 시간들이
나를 완전히 공허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씨앗이란 우리가 이 세상에 왔다 갔다 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 찍어두는 점 같은 거야.”
이 문장을 읽으며
교육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떤 꽃이 될지에 대해
너무 빨리 말하려 들고,
너무 자주 결과를 묻는다.
하지만 씨앗의 시간은
증명보다 존재에 가깝다.
지금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
버텼다는 흔적 하나면
그것으로 충분한 시간.
어린 왕자는 꽃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씨앗의 마음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씨앗의 입장에서는 참 서운한 일이다.
그는 씨앗 속에 꽃이 들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
이 대목에서
나는 교실의 아이들이 떠올랐다.
이미 피어난 아이들,
성과로 설명할 수 있는 아이들,
말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아이들.
우리는 그 아이들의 마음에는
비교적 오래 머문다.
하지만 아직 씨앗으로 남아 있는 아이들,
조용히 시간을 견디고 있는 아이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가 없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얼마나 자주 머물러 주었을까.
교사로서의 나는
꽃을 기다리는 사람이라기보다
씨앗의 시간을 지키는 사람에 가깝고 싶다.
아직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급해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하지 않은 사람.
텅 비어간다고 느끼는 날들이 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남긴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은 날들.
그럴 때마다 이 문장들을 다시 떠올린다.
비어 있음은 사라짐이 아니라는 것,
씨앗은 조용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교사의 일은
꽃을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씨앗의 마음을
끝내 외면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