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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Jun 27. 2023

불안은 병인가요?

[인문] <불안> - 김석


바야흐로 불안의 시대다. 우리 가족도, 먼 친척도, 내 친구도, 옆집 강아지도 모두 불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새로운 불안이 생겼고,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에 의해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겨났다. 앞으로의 미래는커녕 당장의 오늘조차 불안감에 떠는 현대인들에게 불안은 어떠한 의미일까? 또, 불안은 치료할 수 있는 병이 맞을까?


정신분석 개념과 철학을 접목해 한국 사회의 집단 심리를 분석하며 현재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교수 "김석"은 은행나무에서 발간하는『배반인문학』시리즈에서 <불안>이라는 제목으로 불안에 대한 개념과 이로 인한 사회적 현상을 분석한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불안은 병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인간의 불안한 마음은 병이 아니라는 주장을 확고하게 밝힌다. 이에 더해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구분, 우울, 불안의 긍정성, 의학적 치료와 주체적 치료 등에 대해 설명하며 독자들에게 불안에 대한 넓은 이해를 돕는다.



불안장애와 불안은 다르다.


저자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불안장애와 불안의 차이점부터 명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인에게 불안은 굉장히 익숙한 개념이지만 사실 불안이라는 개념은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개념이다. 19세기 이전에는 불안이라는 개념 대신 모든 정신질환을 '멜랑콜리'라고 통칭해서 불렀고, 19세기에 정신의학이 본격적으로 발달하며 비로소 '불안'이라는 개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p.62) 


또한, 불안이라는 개념이 비교적 최근에 정의된 것에 더해 불안은 상처, 암, 당뇨 등 외적으로 보이거나 수치로 판단할 수 있는 질병과 달리 인간의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에 객관화할 수 없는 것 역시 불안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다. 정의되지 얼마 되지 않은 개념이기도 하고, 확실하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불안과 불안장애를 손쉽게 구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안장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하위 유형으로는 강박장애, 우울증, 공황장애 등이 있다. 의학적으로 정신장애는 "질병"의 일종으로서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하나로, 모든 사람이 겪는 정신적 고통이다. 즉, 불안장애는 실질적인 질병에 관련한 개념에 가깝다면, 불안은 인간의 감정에 대한 개념에 속하므로 불안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이 둘의 차이를 우선적으로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눌까?


이성과 감성, 낮과 밤, 승자와 패자 등 인간은 특정 현상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선과 악, 정상과 비정상 등의 모호한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은 이분법적인 구분을 시도하려 한다. 도대체 인간은 왜 그렇게 둘로 나누지 못해 안달인 걸까?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들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려는 이유는 다름 아닌 "정상에 속했다는 안도감"을 느끼기 위함이다. 정상의 그룹에 속한 이들은 비정상 그룹의 사람들과의 차이를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선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한다. 비정상적인 그룹을 보며 "난 상대적으로 괜찮구나"라고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쉬우면서도 확실한 생존본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리로부터 얻는 안정감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어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한시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해서 상대집단, 혹은 하위집단을 만들어 내야 하고 지속적으로 그들을 구분하며 자신의 우위를 확인해야 한다. 자신이 불안하지 않기 위해 상대를 불안에 빠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상대적 불안해소법은 결국 스스로를 갉아먹는 일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상대적 우위를 느끼는 것보다 적을 만들어내지 않고 스스로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고 지속 가능하게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이 아닐까? 인간의 비교에 대한 욕심은 끝없는 바벨탑과 같으니까.



대한민국에서 불안이라는 감정은


불안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이러한 불안을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되려 더 큰 불안을 느낄 수 있고, 그 정도가 심각해질 경우 불안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 불안은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방어기제이기 때문에 불분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경계심은 인간의 생존에 큰 도움이 되지만, 이러한 정도가 심할 경우 오히려 더 큰 스트레스가 발생해 일상을 망가뜨린다. 특히, 사회적인 시선이 엄격하고, 타인관의 경쟁이 심한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자주 발견된다.


"자신도 모르게 세속에 물들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어갈 때 불안은 경종을 울린다." p.78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생각해 보자. 태어났을 때부터 주어진 스케줄표를 따라야 했던 우리는 수동적인 삶에 익숙해지고, '남들'이라는 대상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 일률적인 환경을 받아들여야 했다. 타인의 욕망이 마치 정답인 것 마냥 자신의 욕망을 억제했고, 타인의 욕망을 따르며 본래성을 형성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 책의 저자는 "나의 고유한 실존이 대상화되거나 물화될 때, 우리는 위기 징후로서 불안을 느낀다"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의 본질을 잃을 때 인간의 불안이 시작된다고 말한다.(p.78)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하며 가시적으로 결과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회에서, '비정상'으로 규정된 사람을 배척하는 사회에서, 대한민국 사람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란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과연 불안을 한 개인만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정상'이라는 범위에서 스스로 벗어난 개인이 막대한 불안감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까? 불안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엔 대한민국이라는 환경이 개인에게 쥐어준 무게가 너무 크다.



불안은 병이 아니다. 하지만, 쉽게 감당할 수 있는 현상도 아니다. 인간은 불안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동시에 이를 건강하게 해소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숫자로 표현되지도 않는 감정이라는 존재를 쉽게 알아차리고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불안을 느껴야 한다. 앞으로 더 크게 다가올지도 모르는 불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차근차근 불안과 친해져야 한다. 불안을 회피하지 말고 자신이 만들어낸 불안의 형태를 바라보자. 어색해도 괜찮다. 힘들어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불안은 절대로 병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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