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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Jul 26. 2022

피를 부르는 유리조각

3장 여름- 3

서늘하다 못해 얼어 죽을 것 같다. 이 통속을 나가고 싶으나 줄지어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문이 열린다. 내 앞에 서있던 놈이 나갔다. 드디어 주르륵 밀려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러길 몇 시간 중년의 여자가 땀이 범벅이 되어 나를 짚어든다. 계산대 앞에 나를 내려놓는다. 어른거리는 불빛이 내 몸을 훑는다. 버스정류장이다. 여자는 사정없이 내 목을 돌린 뒤 들이킨다. 여자가 기다리던 버스다. 내 머리 뚜껑을 잠그고 가방에 쑤셔 넣는다. 그렇게 한참을 덜컹거리며 여자의 가방에 숨죽여 있다. 여자의 집이다. 가방을 던진다. 푹신하다. 여자는 다시 나를 꺼낸다. 그리고 한 방울도 남기기 않겠다는 듯 탈탈 털어 마신다. 빈병이 된 나를 식탁 위에 올려둔다. 

밤이다. 여자는 집안을 치운다. 온갖 쓰레기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언제 시켜 먹었는지 모를 튀김닭들과 따여진 맥주캔, 자장면이 담겼던 플라스틱 그릇들, 일회용 나무젓가락. 찔끔찔끔 물이 담긴 생수병들, 여자는 한숨을 쉬더니 종량제 봉투에 모두 쓸어 담는다. 마지막 책상 위 놓인 소주 병들과 나를 보더니 종량제 봉투 구석에 밀어 넣는다. 내가 갈 곳이 아닌 듯 하나 여자는 자꾸만 나를 밀어 넣는다. 그리고 우리를 끈적이는 테이프로 포박한다. 

버려졌다. 전봇대다. 가끔씩 길고양이들이 바람처럼 쓰윽 왔다 쓰윽 간다. 별들이 더욱 진해진다. 한밤중이다. 종량제 봉투에 포박당한 나와 소주 병은 답답하다. 자장면 찌꺼기도 들어앉았다. 수박 껍질도 끼여있다. 이 모든 냄새들이 곤죽이 되어 종량제 봉투 안은 악취가 진동을 한다. 편의점 냉장고 안에서 얼어 죽는 게 나을뻔했나 싶다.

형광조끼를 입은 이들이 나를 들춰앉는다. 꽤나 무거운가 보다. 낑낑대는 소리가 심상치 않다. 종량제 터진 봉투 사이로 음식물 찌꺼기 국물이 형광조끼 입은 이들의 바짓단을 적신다. 그들은 아랑곳없이 주변의 쓰레기봉투를 분쇄기에 집어던진다. 내 차례다. 나도 곧 분쇄기로 던져진다. 하늘을 나른다. 들어간다.

우지끈!!! 파바박!!!

앗!! 으아악!!

붉은 피다.

형광조끼 입은 그의 눈썹 아래로 피가 흘러내린다. 나의 조각은 그의 눈썹 사이로 날아가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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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근무를 하고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에 걱정이 한가득이다. 누군가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버린 유리병이 청소차의 분쇄기에 들어가다 압력으로 병이 깨지며 유리조각이 동료의 눈으로 날아든 것이다. 천만다행이 눈썹 뼈 주변을 서너 바늘 꿰매는 일로 끝나긴 했지만 누군가가 선택한 순간의 편함으로 피를 부르는 일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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