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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수리마수미 Mar 07. 2023

종양

사타구니 안쪽에 콩알만 하게 만져지던 덩어리를 우습게 본 것이 잘못이었다. 아이는 집에서 키우는 늙은 강아지 봉선이와 막역한 사이도 아니었지만, 우리보다 자주 봉선이의 몸을 들여다보고 만져주었다. 그리고 그 콩알만 한 덩어리를 처음 발견했다.

아이는 얼른 병원을 가보자 재촉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봉선이의 몸에 잡히는 그 작은 덩어리를 며칠 지나면 없어질 뾰루지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놈이 계속 커진다. 어느 순간 아이의 주먹만 하게 자라있는 덩어리에 놀라 허겁지겁 동물 병원을 찾았다. 

악성종양이었다. 의사는 종양이 발견된 부위가 수술하기 힘든 곳이라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다 했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는 종양을 잘라내면 될 거 아니냐고 물었다. 의사는 종양을 제거하려다 나이 많은 봉선이가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봉선이의 고통을 달래줄 약봉지만 챙긴 체 집으로 돌아왔다.

멈출 줄 모르고 봉선이의 영양분을 쏙쏙 빨아먹고 커져가던 종양은 드디어 어른의 주먹보다 훨씬 커져버렸다. 대 소변 잘 가리기로 소문난 봉선이가 배변 실수를 하기 시작한다. 쓰레기통만 보면 뒤엎던 혈기는 싹 사라지고 하루 종일 이불에 파묻혀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다. 이름을 불러도 고갯짓도 않는 봉선이를 보며 혹시나 하고 철렁거리는 가슴을 붙잡고 봉선이를 흔든다. 그제야 귀찮다는 듯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치는 봉선이에게 단잠 깨워 미안하다 싹싹 빈다.

며칠 전 주문한 강아지 유모차가 도착했다. 봉선이를 태우고 오랜만에 바깥바람을 쐬어본다. 봉선이도 기분이 좋은지 움츠려있던 목을 쭈욱 빼고 봄바람을 맞는다. 며칠이 또 지났다. 종양이 커지다 못해 살을 찢어내고 있다. 진물로 범벅된 봉선이의 몸을 소독하고, 고소하게 삶아 놓은 닭 가슴살 결 대로 찢어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섞어 준다. 닭 가슴살 냄새를 맡은 봉선이는 다행히 식욕은 남아있는지 환장한 듯 한 그릇 뚝딱 비워낸다.

병원을 다시 찾았다. 의사는 조심스레 봉선이와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으라 전한다. 우리와 14년을 함께한 봉선이다. 그런 봉선이와 이별을 준비하라 한다. 아직 고기 냄새에 동그랗게 눈을 뜨는 식욕 넘치는 봉선이와 이별을 준비하라 한다. 자꾸만 마스크 속으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근 반백을 살아내고 있건만, 

사랑하는 어머니도 보내봤건만 

이별이란 글자는 전혀 친숙해 지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 이별을 맞을 마음의 준비를 또 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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