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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현진 Nov 22. 2021

몽환적 소설가의 인터뷰 방법

<언더그라운드>, 무라카미 하루키

 2012년 3월 <한겨레21>에서 쓴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의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기사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피해자들이 직접 이야기하는 듯한 방식으로 쓰인 글에 꽤나 몰입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기사가 실린 호의 표지 디자인도 아직 선명하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담아 쓴 기사가 담긴 <한겨레21> 제900호 표지 사진.

 사고가 난 2003년 2월에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지역도 달라 기억에 깊이 남거나 관심 있게 지켜본 사건도 아니었다. 그런데 9년이나 지나서 나온 그 사건에 대한 기사에 사로잡혔다. 아무 관련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다 예상치 못한 사고와 마주하고 바뀌어 버린 피해자들의 인생 이야기가 생생하게 와닿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기사는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논픽션 <언더그라운드>의 오마주한 것이었다. (기사를 쓴 선배가 이 기사는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독후감이었다고 한 걸 후에 들었다.) 2018년 처음 읽었는데,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 그가 쓴 논픽션이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고 논픽션이란 장르에 꽤나 몰입했던 때라 바로 사서 읽었다. 


■소설가의 인터뷰  


 이 책은 1995년 3월 20일, 도쿄의 지하철에서 벌어진 이른바 ‘사린가스 테러’ 사건을 다룬다.(https://youtu.be/QMWSGwtZslo) 당시 사이비 종교였던 옴진리교 신자 5명이 도쿄의 지하철에 맹독성의 생화학 무기인 사린가스를 살포했다. 14명이 죽고 수천 명이 다쳤다. 하루키는 이들 중 62명의 증언을 듣고 정리했다. 하루키는 증언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느낀 인상을 짧은 글로 소개한 뒤 1인칭 시점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루키는 비교적 자세히 이 사건을 취재하기로 한 과정을 남겼다. “어느 날 오후, 우연히 테이블 위에 놓인 잡지를 집어 들고 별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머리말에서 하루키는 우연히 읽은 독자의 편지를 소개했다. 지하철 사린 테러로 남편이 직장을 잃었다는 사연이었다. 출근하던 남편이 사건에 휘말렸고, 병원에 실려갔다 며칠 후 퇴원했다. 후유증으로 직장생활이 어려워졌고, 회사에선 처음엔 이해해주다 시간이 흘러 싫은 소리를 시작했다. 

 회사를 떠나게 된 남편의 사정을 푸념하는 글을 읽으며 하루키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 사건에 휘말렸던 이들의 개인적인 삶과 그런 이들을 제대로 이해해 주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주는 사회에 대해 알고 싶어 졌다는 게 하루키가 밝힌 이 책을 쓴 첫 번째 이유다. 

 사건이 벌어진 뒤 9개월이 지난 1996년 1월부터 같은 해 12월 말까지 인터뷰가 이뤄졌다.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운 건 섭외다. 인터뷰이를 설득해 자리에 앉히기까지가 가장 어렵다. 조사 담당자와  편집자가 하루키와 팀을 이뤘다. 공식 피해자의 명단이 있겠지만 민감한 개인정보라 얻기란 불가능했다. 사건 당시 신문 등에 일부 피해자의 실명이 발표됐는데, 이를 참조해 700개의 이름 리스트를 작성하고 신원을 확인해갔다. 연락이 닿은 건 140명. 실제 취재요청을 받아들인 건 60여 명뿐이었다. 

 한 사람과 만나 인터뷰하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길 때는 네 시간에 걸쳐 인터뷰를 했다고 하루키는 말했다. 인터뷰를 녹음한 ‘테이프’는 녹취록으로 만들어졌다. 녹취록만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뉘앙스를 파악하기 위해 녹음테이프를 다시 듣는다. 하루키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아무리 이야기를 세세하게 녹음한다 해도, 또는 몇 번이나 테이프를 반복해서 듣는다 해도 현장 분위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하면 대화의 핵심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그러면 증언 자체의 힘이 사라져 버린다. 그 때문에 듣는 동안은 되도록이면 상대방에게 의식을 집중하며 이야기 하나하나를 그대로 흡수하려는 사세를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1995년 3월20일 발생한 일본 도쿄의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 사건은 생화학무기를 사용한 최초의 테러사건으로 알려졌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하루키의 소설은 보통 일상적인 삶 속에서 벌어지는 몽환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미지의 영역, 알 수 없는 생명체, 잊힌 과거 등과 마주하면서 일종의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그런 작가가 실제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이를 토대로 글을 쓴다는 것도 의외인데, 증언하는 이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읽고 기록하는 방식이 꽤나 놀라운 것이었다. 

 직업 기자가 하는 일은 대부분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으로 이뤄진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인터뷰를 하고 정리하는 게 직업인 셈이다. 그런 직업에 종사하면서, 이야기를 ‘지어내는’ 소설가의 논픽션을 읽으며 인터뷰에 임하는 자세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그가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기자도 인터뷰한 사람이 어떤 말을 했는지에 집중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A가 이런 말을 했고, B는 어떤 말을 했다는 식이다. 하지만 실제 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걸까. 기사에 써먹을 파편화된 '멘트'가 아니라면 말을 하는 '사람'과 그가 하는 '이야기'는 관심 밖에 있다.

 하루키의 인터뷰는 그 점이 달랐다. 그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사람을 이해하려고한 것이다. 그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가 겪은 사건은 어떤 것이고 그것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하루키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을 ‘피해자’나 ‘생존자’로 묘사하기보다 총체적인 삶을 산 어떤 한 인간으로 우리에게 소개한다. 어쩌면 소설가이기 때문에 기자와 달리 증언자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인지 모른다. 

 한마디 말을 듣고 잘 요리해 그럴듯해 보이는 기사를 만들고, 실컷 인터뷰를 해놓았으면서 ‘야마’(주제)에 맞지 않아 기사에 반영하지 않는 일도 많다. 처음부터 원하는 멘트를 해줄 사람을 찾아 전화를 건다. 이런 인터뷰에 익숙한 교수 등 전문가들은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물은 뒤 기사의 방향에 맞는 의도를 내비치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하는 식으로 시간을 절약한다. 

 충격적 사건을 겪은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자들은 인터뷰를 한 뒤 기사를 쓸 때 그 말이 증언자의 정확한 의도인지 다시 묻지 않는다. 인터뷰 기사를 먼저 보여주는 건 번거롭고 두려운 일이다. 고생해서 쓴 기사를 고쳐야 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뷰를 통해 인용한 문장이 길수록 그렇다. 화자에게 발언을 다시 확인하는 건 기자에겐 용기가 필요한 일이 돼 버렸다. 

 이런 습성이 언론과의 인터뷰에 나섰던 이들을 배반하곤 한다. 하루키도 이 책에서 미디어에 노출됐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루키는 인터뷰를 거절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매스컴을 신용할 수 없다’는 반응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특히 매스컴의 취재에 대한 반감이나 불신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라고 할 정도였다. 사건 당시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 있는 이들은 한결같이 “정말로 내가 말하려 한 것은 결국 잘려버렸고 발언시간도 짧아서 하다 만 것 같다”는 불만을 비쳤다. 

 이런 사정들 탓인지 집필을 마무리한 후 하루키는 증언자들에게 일일이 원고를 보내줬다. 실명으로 발표하길 원하지만 원치 않은 경우 가명을 사용하겠다는 것을 알리고 활자화되고 싶지 않은 증언이 있다면 어떻게 변경할지, 삭제해야 할지 등 의견을 달라고 했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에서 작가에겐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는 경우를 제외하면 지시를 따른다고 했다고 했다. 증언에 나선 이들이 다시 한번 ‘매스컴에 배신당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야기를 쓴다는 것


 <언더그라운드>는 처음과 끝이 한 편의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를 갖춘 책은 아니지만 인터뷰에 나선 피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이야기가 모자이크처럼 모여 커다란 내러티브를 만들어낸다.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출근을 하고,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위치에 지하철에 올라 출퇴근하는 사람들. ‘가벼운’ 부상을 입었지만 계속해서 지하철을 타기 힘들어하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입고 입원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이들. 저마다의 사연이 뒤섞이면서 ‘얼굴 없는 피해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사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논픽션 작가로서의 하루키는 살아있는 인간의 감정과 이야기를 어디까지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것 같다. 하루키는 녹취록을 토대로 증언자의 시점에서 쓴 400자 원고지 평균 20~30매 분량의 글을 정리했다. 그는 이 책의 후기 ‘지표 없는 악몽’에서 증언자들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사건 이후 기억과 언어를 잃어버린 중증 피해자와 인터뷰한 뒤에도 며칠 동안 심각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내가 골라내는 말은 이 사람들이 맛본 다양한 감정(공포, 절망, 슬픔, 분노, 무감각, 고독, 혼란, 희망……)을 어디까지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듣기만 해서는 인터뷰가 끝나지 않는다. 인터뷰는 결국 그것을 쓰는 것에서 완성된다.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일까. 왜 그런 이야기를 듣고 써야 할까. 하루키는 결국 반복을 막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놓는다. 거대한 사건과 압도적이 폭력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하루키는 이런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결국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봤다. 

 범죄나 사건·사고처럼 누군가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는 일도 없다. 앞선 질문에 내 나름 답은 이런 일이 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평범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벌어진 테러처럼 말이다. 그런 일을 겪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쓴다는 것은 그들이 나와 같은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을 때 그 효용이 최대치에 달한다. 나도 격을 수 있다.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 피해자들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것. 그러기 위해 이야기를 듣고 기록해야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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