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번에 붙은 별명. 85년생의 학창 시절은 항상 변화의 끄트머리에서 기회를 자주 외부로부터 좌절당해왔던 기억이 있다. 6차 교육과정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고, 대입 수능도 우리 학번 이후로 변화하고, 임용고사도 우리 학번을 끝으로 변화했다. 지금은 오래되어 잊힌 기억이 되어가지만.
나는 어린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초등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비평준화 지역에서 1순위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고, 항상 상위 성적을 유지했고, 3학년 때는 모의고사에서 1,2등급을 받으며 내신도 전교 10등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던 나였다. 수능만 잘 본다면 어떤 직장이든 좋은 곳에 취업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재밌다. 내가 선택하고 싶지 않은 것을 선택해야 하는 때가 온다. 수능 성적표를 받아보고 나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학 목록을 살펴본다. 가 군과 다 군 대학에서는 내가 가고 싶은 대학이 아예 없었다. 가 군에서는 일단 되던 안 되던 상향지원을 해 버리고, 나 군에서 고민하기로 했다. 다 군은 아무 곳도 지원하지 않았다. 나 군에서 농대, 교대, 공대 3군데 중에서 결정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는 어느 곳에 썼어도 합격이었을 텐데 세 군데 중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이 드는 곳으로 결정하게 된다.
'교대'
비록 내가 열망했던 학교는 아니었지만 입학한 순간부터 아니 입시 면접을 보는 그 순간부터 만족감이 높았다. 일단 내신과 수능 성적에서 높은 편이었고, 면접을 아주 망치지만 않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주변이 좋았고, 발음도 정확했고, 다양한 특기도 있었다. 나를 이 학교에서 안 뽑아줄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상위 성적으로 '합격'
입학 장학금을 받는 신입생이 되었다. 주변에서 교대를 진학했다고 하면 '좋은 곳에 갔다'며 부러워하기도 하기도 했다. 성적 상위권에 우선 기회를 주는 기숙사에서도 살 수 있었다.
4년 간의 교대 생활은 아주 순탄했다. 입학 후 전공을 '과학교육'으로 정했다. 물리 2, 화학 2, 지구과학 2, 생물 2를 고등학교 때 모두 배웠으므로 과학 이론 수업도 나에게는 수월한 편이었다. 동기들은 대부분 인문계열이었으므로 동기들 사이에서 과학 지식이 가장 풍부한 학생이 되었다. 수업 때마다 우등생으로 교수님들의 눈에 띄었다.
예체능 과목도 성적이 두루 좋았다. 음악은 어릴 때 피아노를 6년 간 배웠던 경험이 있어 다들 어려워하는 반주실기도 무난히 통과했고, 미술은 어릴 때부터 재능이 좀 있어 어떠한 과제가 주어져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동 신경도 꽤나 좋아 농구, 축구, 수영, 배구 등등 배우는 족족 잘 익혔고, 재미있었다.심지어 바느질과 뜨개질도 잘했다.
남들 앞에서 발표도 잘하는 편이었고, 파워포인트나 워드프로그램도 잘 다루었다. 게다가 3학년 때는 부학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천체 관측 동아리의 회장 노릇도 했다. 과사 장학생 아르바이트도 장기간 했다. 실습 기간도 재미있었고, 손재주가 있어 다양한 종류의 교구도 척척 만들어 다른 친구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도 종종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