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eongihnK
Feb 06.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13. 학부모 상담이라는 비극-1
"선생님은 애가 없어서 몰라요."
2010년, 나는 당시 26세였고, 미혼이었고, 6학년 담임이었다. 어떤 학생의 어머님과의 상담에서 들었던 말이다. 자신의 아들이 지속적으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담임인 내가 그 아이에게 무관심하다며 가해자인 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고 싶다는 취지로 나에게 상담을 신청했던 학부모가 한 말이었다.
학원강사로 10년도 넘게 일해서 아이들의 심리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소개했던 그 어머님은 직장 퇴근 후에 상담을 할 수밖에 없다며 밤 9시에 교실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단순히 상담 1건 만을 위해 그 시간까지 학교 건물에 혼자 남아 있자니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어 전화로 상담하자 권유도 해보았지만 무조건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초과근무신청을 구두로 먼저 하던 시절이었기에 갑자기 신청을 할 수가 없었고, 승인이 나지 않으면 당연히 초과근무 수당도 없었다. 상담 신청이 오후 늦게 들어왔기에 초과근무를 승인받을 시간이 부족했다. 당시 학교 근처에는 혼자 밥 먹을 곳도 없고, 편의점도 없는 곳이어서 그냥 굶고 교실에서 기다렸다. 다들 퇴근하고 해가 저문 뒤 너무도 조용하고, 컴컴한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하면서 학부모를 기다렸다. 학교 건물은 단열이 잘 안 되어 아주 추웠다. 히터는 중앙통제 시스템이어서 퇴근 시간 후에는 켜지지도 않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실까 조마조마한 차에 학부모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상담의 내용은 이러했다. '다른 반의 A라는 학생이 우리 아들만 보면 겁을 준다, 우리 반 몇몇 아이들이 급식소에서 자리에 앉으려 하면 전부 일어서서 나가버려서 혼자 밥을 먹는다, 말만 하면 비웃는다, 지나갈 때마다 일부러 와서 부딪히고 사과가 없다, 아이들이 따돌리는 것이 아니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겠냐는 것.'
나는 묵묵히 학부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가 관찰한 바를 설명드렸다. 그 학부모님의 아들을 B라고 하면, B가 어느 날 급식소 바닥에서 '아악' 소리를 지르며 식판을 업고 팔을 부여잡고 뒹구는 것을 목격한 날이 있었다. 왜 그러냐는 물음에 C라는 여학생을 지목하며 그 아이가 자기를 치고 가서 팔이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하지만 C는 좁은 급식소 복도에서 팔을 살짝 스치며 지나간 것이 전부였다. C는 억울해하며 "저는 느낌도 없었어요. 몰랐어요."라고 했고, 몰랐지만 친구가 아파하니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하니 곧바로 사과했다. B는 평소에 교실에서도 지나다니다가 친구와 어깨라도 스치면 팔을 부여잡고 '으악'하며 소리를 지르고, 바닥을 뒹굴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다.
B는 오히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기보다는 내 입장에서 충동적이고, 자기 고집이 강한 아이였다. 현장체험학습을 갔을 때 3시에 출구에서 모이기로 약속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2시 50분에 하는 어떤 체험을 하느라 20분 넘게 다른 학생들을 기다리게 만든 아이였고, 그런 상황에서도 죄송하다는 말은커녕 "제가 미리 예약한 건데요?"라는 말만 되풀이하던 아이였다.
B는 어느 날, 옆자리 앉은 짝꿍의 눈을 연필로 찌르는 행동도 했었고, 그것을 장난이라 칭했다.
나는 이러한 아이의 평소 행동 성향을 이야기하며, 증거가 확실하지 않으면 신고까지는 어려우니 A라는 친구와 함께 화해하는 자리를 마련해서 일단은 대화를 해보고, 그래도 해결이 되지 않으면 그때 신고하시면 어떠신지 제안했다. 그랬더니 돌아온 대답이 "선생님은 애가 없어서 몰라요."였다. "아이를 키워보셔야만 제 말 뜻을 이해하실 걸요."라는 것이다.
내가 도대체 이해하지 못했다는 부분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 아이가 작은 스침에도 과하게 반응하는데 그것은 아이가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표현일 수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굉장히 안타깝게 여겨 자세히 설명을 드렸는데 나를 가해자를 감싸고도는 인간으로 멋대로 취급했다. 그런 뜻이 아니라고 설명을 드릴수록 "제가 아이들 가르친 지 10년이 넘는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못하는 말을 학원에서는 잘하거든요. 선생님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라며 내 이야기를 듣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어머님 말씀대로라면 저는 결혼하고, 아이를 출산해서 아이를 다 길러야만 참 교사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럼 경력이 20년쯤은 되어야 저는 이런 상담을 할 자격을 갖춘다는 말씀이신가요?"
"아, 그런 뜻은 아닙니다."
자신이 뭔가를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면 상대방의 우위에 설 것이라는 생각에 그 학부모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을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내 줏대는 그런 말로는 흔들리지 않는다.
"어머님 말씀대로 제가 아이를 다 키워본 사람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저도 어린 시절이 있었던 사람이고 6학년 때는 불과 13년 전입니다. 어머님은 그 시절이 오래되어 생각이 안 나시겠지만 저는 아직 생생히 기억나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답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제가 어머님의 마음과 B의 마음도 알게 되었으니 학교에서도 보다 자세히 관찰하고, 상담도 해 보겠습니다."
학부모님은 결국 눈물만 계속 쏟다 귀가하셨다. A라는 학생은 다음 날 따로 상담을 해 보았는데 B랑은 대화도 안 해본 사이라고 했다. 현재도 다른 반이고, 같은 반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이름만 알지 친하지도 않다고 했다. 복도나 계단에서 쉬는 시간에 마주치는데 B가 A를 자꾸 째려봐서 '왜 째려보냐.'는 말을 한 적은 있다고 했다. B와도 따로 상담을 해 보았다. A라는 학생이 지나가면서 자꾸 쳐다보며 웃어서 하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폭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A학생이 B학생에게 사과를 하고 앞으로 서로 감정 상하게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게끔 했다.
6학년이었고, 거의 연말쯤이었다. 그 이후로 큰 사건은 없었으나 B학생은 여전히 겉돌며 지냈고, 오버액션을 크게 했다. 학부모님이 비협조적이어서 B학생의 과잉행동을 크게 개선시킬만한 교육은 따로 하지 못했다. 그 아이는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한 다음에도 계속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고, 결국 나중에는 다른 지역으로 전학을 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