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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ihnK Jun 19. 2024

나는 초등교사를 그만두었다

21. 내로남불의 전형-1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던 6학년 아이들을 담임했었다. '사건-처리-사건-처리'를 반복하다 보니 세월이 흘렀다. 그렇게 1년을 거의 보내고, 겨울방학식 날이었다. 그 해의 마지막 전 직원 근무일이어서 회식이 잡혔다. 아이들을 일찍 하교시키면 우리는 교실정리하고 회식 장소로 저녁을 먹으러 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쉬지 못한 것을 방학 동안 한꺼번에 쉴 것을 기대하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큰일 났네. 어떡하지?"


그날은 총 4교시 수업이었는데 2교시 후 쉬는 시간쯤 1반 담임 선생님께서 갑자기 모든 선생님들을 복도로 불러 모으셨다. 1반 반장인 남자아이가 갑자기 수업 중에 쪽지 한 장을 친구에게 남겨놓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네에?"


쪽지에는 '나를 찾지 마.'라고 적혀있었다.


"점퍼도 두고 가고, 물건도 하나도 안 챙겨가서 장난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뛰쳐나갔나 봐."


만화에 나오는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진짜가 아닐 거야. 복도에는 아이가 뛰어나가면서 버리고 간 실내화가 한 짝 씩 띄엄띄엄 널브러져 있었다.


말도 안 돼. 이것이 실화인가?




일단 부장님은 교감선생님께 상황을 보고한 후, 학부모와도 긴급하게 연락을 취했다. 그 아이는 남자아이였고, 어머니만 계신 한부모가정이었으며, 고등학생인 형이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직장에서 일을 하시다가 연락을 받고는 일찍 퇴근하여 아이가 잘 가는 동네를 돌아보겠노라 했다. 아이는 휴대폰도 학교에 두고 나간 터라 연락도 닿지 않았다. 12월 한겨울 날씨에 점퍼도 입지 않고 뛰쳐나가다니... 이 아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교실을 나간 걸까.


아무리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아이들이라지만 이렇게 수업 중에 갑자기 뛰쳐나가는 일이 정말 있나 싶었다. 특별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나는 한 해였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을 모두 하교시키면서 그 아이와 친한 친구들을 불러 조사를 해 보았다. 왜 뛰쳐나간 건지, 무슨 사건이 있었던 건지, 자주 가는 장소나 동네를 알고 있는지 등등.


자세한 것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어떤 아이가 그 아이를 어떤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했고, 아이는 흥분하며 아니라고 부인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사실 사건이라 봐야 큰일도 아니었고, 처벌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일인데 아이가 지레 겁을 먹은 듯했다. (사실은 그 아이가 범인이었고, 들킨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었다.)


교무부장 선생님과 학년부장 선생님은 차로 서로 다른 장소들로 동해 가면서 거리를 걷고 있지는 않은지, 어딘가에 앉아 떨고 있지는 않은지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시간은 어느새 흘러 회식을 시작하기로 한 시각이 되었다. 우리는 그때까지아이를 찾지 못했다.


어느덧 깜깜해졌고, 아이를 찾던 교사들도 배가 고팠다. 근처 맥도널드에 들어가 간단하게 햄버거를 하나씩 사 먹었다. 배는 고팠으나 입맛은 없었다. 아이는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저녁이 되었으니 집으로 갈 수도 있다,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토대로 다양하게 연락도 취해보고 알아보았으나 성과가 없다. 밤이 가까워질수록 이 초등 6학년 아이가 점점 더 걱정되기 시작다. 그때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아이가 집에 왔어요!"


휴... 안도의 한숨. 그리고 동시에 여기저기 찾아 헤맨 시간이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금방 돌아와서."




아이의 물건을 전부 챙겨서 아이의 집으로 찾아가서 전해주고는 아이와 학부모와 상의하고 그 집을 나왔다.


"저희 이제 뭐 하면 돼요?"

"글쎄. 회식을 가야 하나?"


교감 선생님과 통화하며 회식 장소로 이동했다. 교무부장과 우리 학년 전체가 없는데도 회식은 그대로 진행하다니 사실은 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그래도 우리의 상황을 알고 어떤 위로의 말이라도 해 주겠지.


그러나 우리가 식당에 발을 들이는 순간,


"아니, 회식 시작 시간이 언제인데 이제 들 들어와요? 우린 다 먹고 일어나려는 참인데."


식탁 위에는 싹싹 비워진 냄비와 그릇들만 보다.


"저희 애 하나가 가출을 해 가지고 찾으러 다니느라..."


교장 선생님은 이미 취해서 눈빛이 흐리다. 혀도 꼬였다.


"그랬다고요? 추운데 고생했구먼. 허허허"


웃을 일인가 싶었다.


누군가가 남아서 불어 터진 순대볶음을 긁어 담은 그릇을 들이밀었다.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드실래요?"


자기들은 맛있는 거 먹고 나는 남은 음식을 주다니.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니, 우리가 이 추운 겨울에 돌아다니다 왔는데 새로 시켜주셔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안 돼. 이미 계산도 다 했단 말이야. 쌤들 것도 다 주문했었는데 늦게 와서 못 먹은 거지. 누가 늦게 오래?"


둘러보니 몇몇은 이미 귀가했다. 이 정도면 회식을 취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우리 밥값은 돌려주든가.


교장 선생님은 그날의 일을 기억조차 못했다. 교장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무도 모를지도 모른다. 아이를 찾아다닌 우리들만 기억하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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