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그> 영화 리뷰
영화도 패턴과 유행이 있다 보니, 때로는 영화의 제목만 들어도 대강 어떤 느낌의 영화일지 예상될 때가 있다. 영화의 이야기나 주제까지는 어렵더라도 전체적인 분위기나 장르 정도는 대강 예상이 되는데, 영화 제목이 <피그>, ‘돼지’라니. 제목만 들어서는 도무지 어떤 장르, 주제의 영화일지 대략적인 느낌조차 오지 않는 영화였다.
영화의 메인 포스터를 보면 오묘하고 거친 인상이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데, 포스터의 절반 이상이 반쯤 어둠에 가려진 주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로 채워졌고, 영화 타이틀인 <피그>만 적혀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피사체는 보이지 않는다. 슬픔인지 고통인지 허무함인지 모르겠을 모호한 표정의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이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처럼 <피그>는 관람 전부터, 일반적인 영화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인상을 주는 영화였으며, 실제로 최근 몇 년간 봤던 영화들 중 손에 꼽힐만한 ‘의외성’의 영화이자 ‘신선한’ 영화였다.
특히 연출을 맡은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은 첫 장편 영화 연출작임에도 불구하고, 독특하고도 비범한 방식으로 첫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했으며, 그의 차기작을 매우 기대하게 된다.
<트러플 돼지를 잃어버린 남자>
‘자신이 키우던 트러플 돼지를 잃어버린 중년 혹은 노년의 남자가 돼지를 찾는 여정’ 정도의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은 매우 간결하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주인공 ‘롭’은 미국 북서부 지방 오리곤 주, 포틀랜드의 어느 숲 속에서 트러플을 캐는 일을 하는 것처럼 묘사된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최고급 향신료 중 하나인 트러플 버섯은 땅속에서 자라며 이를 캐기 위해 돼지를 이용하곤 하는데, 트러플 향이 돼지의 페로몬 향과 유사해 돼지들을 이용해 트러플을 찾는다고 한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ruffle_hog)
바로 이 트러플 돼지가 누군가에 의해 잡혀가면서 시작된다. 영화 초반 롭과 돼지의 관계는 주인과 반려동물의 관계로 묘사된다. 롭은 트러플 돼지를 ‘브랜디’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이 브랜디가 트러플을 찾도록 하는 일만큼이나 브랜디에게 ‘시골식 버섯 타르트’를 먹이는 일에도 진심이다. 돼지와 함께 트러플을 찾으러 숲을 누비는 것은 브랜디와 함께하는 산책이며, 트러플을 찾는 것보다 브랜디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에 더욱 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돼지 페로몬의 향과 비슷하다 보니, 힘들게 찾아낸 트러플 버섯을 돼지가 먹어치우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현재는 돼지보다 개를 이용해서 트러플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라는데, 영화에서 개가 아니라 돼지가 트러플 버섯을 찾는다는 설정은 주인공 ‘롭’이 트러플 버섯을 효율적으로 캐기 위해 돼지를 키우던 것이 아니라, 가족의 일원으로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돼지 자체가 주는 이미지 덕에 영화적으로 더욱 특이하고 극적인 느낌이 있기도 하고.)
어쨌든 이렇게 아끼던 돼지, 반려동물이 납치되었으니, 주인이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부분에서 영화가 주는 첫 번째 의외성을 느낄 수 있는데, 반려동물을 잃고 비장한 모습으로 머물던 오두막을 나서는 ‘롭’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존 윅’이나 ‘테이큰’과 같은 통쾌한 복수극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포틀랜드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롭’의 이름을 댈 때마다 그들은 두려움에 떨거나, 기겁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니, ‘설마 이 영화가 액션 스릴러 영화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롭’이 포틀랜드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사’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영화는 또 한 번 방향을 틀고, 다른 신선함을 준다. ‘요리사’라니, 영화 중반 즈음 롭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3개로 나뉜 영화의 챕터 제목이 왜 모두 ‘요리’의 이름이었는지 알게 된다. 롭이 과거 요리사였음이 밝혀진 이후, ‘요리’는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서, 영화 속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상처 그 자체이자, 그 상처들을 치유하는 치료제로 작용한다.
<버섯 타르트, 프랜치 토스트, 가리비 요리 그리고 새 한 마리와 와인 한 병>
영화는 크게 1) 시골식 버섯 타르트, 2) 엄마표 프랜치 토스트와 해체주의 가리비 요리 3) 새 한 마리와 와인 한 병 그리고 소금 바게트 이렇게 3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는데, 각 요리는 롭이 만나는 인물들, 캐릭터들 간의 관계와 과거를 담고 있다.
각 요리들이 모두 슬픔을 안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이 영화, <피그>가 슬픔에 대한 영화이자, 각자에 대한 방식으로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가 더욱 인상적인 것은, 요리를 맛있게 먹거나, 요리를 보고 감동을 받아 치유되는 그런 클리셰적인 연출이 아닌 덤덤하지만 섬세한 연출로 그 과정을 그렸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그나마 가장 극적으로 묘사되는 ‘와인 한 병을 곁들인 새 한 마리’ 요리조차 요리의 과정이 제대로 묘사되지 않으며, 음식을 맛보는 시식의 순간에도 담백한 연출을 유지한다. 즉, 영화는 최고의 실력을 갖춘 요리사가 만든 음식의 ‘맛’이 아니라, 음식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더욱 중점을 두고 있는 영화였으며,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영화 전체에 고집스럽게 남아있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이자 영화가 주는 가장 큰 신선함은 이렇게 멋들어진 음식들로 장식된 영화의 여정이 비극적이고 허무하게 마무리된다는 것에 있다. 주인공 롭의 돼지, 브랜디는 납치되는 과정에서 이미 사망했으며, 롭은 끝내 사랑하던 돼지를 찾지 못한 채 결국 처음의 오두막으로 돌아오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한 남자의 비극에 대한 영화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롭이 상실한 존재는 돼지, 브랜디만이 아니며, 그의 여정에는 과거 사별한 것처럼 보이는 부인과 그녀와의 추억들이 함께한다. 브랜디를 찾는 영화의 여정은 그와 이미 이별한 부인과 공식적으로 작별하는 과정이었으며, 그가 20년간 떠나 있었던 ‘요리’에 대한 사랑과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렇기에 영화의 마지막 오두막 천장에서 세어 나오는 빛을 올려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에 잠기는 롭의 얼굴에는 결코 슬픔과 회한만이 자리하지 않고, 상실의 슬픔을 안고서 살아갈 수 있는 강한 생명력과 후련함이 함께하고 있다.
<롭의 영화이자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
많은 평단과 후기에서 이 영화에 좋은 평가를 보내는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주인공인 ‘롭’과 ‘니콜라스 케이지’가 사실상 일치되어 관객에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니콜라스 케이지는 깨끗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숲 속에서 돼지와 함께 살아가며, 흙속의 트러플을 캐는 인물인 만큼, 영화 초반 그는 당연히 온몸에 흙이 묻어있는 흙투성이로 등장하며, 돼지를 찾아 나선 이후의 롭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얼굴의 반에 피멍이 든 채, 피가 묻어 굳은 옷을 입은 채로 등장한다.
이처럼 과거의 화려했던 요리사가 아닌 더럽고 망가진 롭의 모습에서 ‘80, ’ 90년대 최고의 영화배우였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더 록>, <페이스 오프>와 같은 액션 영화부터 <아리조나 유괴사건>과 같은 예술영화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과거와 달리, 2000년대 이후 그 작품 수가 십 수 편에 이를 만큼,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다.
분명 출중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실패하는 영화를 겪으며, 니콜라스 케이지 스스로도 많은 고통과 회한을 가진 채 살아왔을 것이다. ‘롭’의 얼굴과 연기에서 전달되는 감정과 감동은 분명 예전 전성기 시절 그의 모습이었으며, 주름지고 그늘진 그의 얼굴에는 예전의 멋지고, 수려한 외모에서 볼 수 없었던 진득한 감정과 덩어리가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만나기를 기대하며, 이번 영화에서 너무나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피그>를 계기로 다시 한번 멋지게 날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인생 속 트러플을 찾아서>
위의 감상에서 '~것처럼 보인다.' 라던지, '~로 묘사된다.'와 같은 문장을 많이 쓴 이유는 아마도 영화에서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암시되는 이야기가 많아서일 것이다. <피그>는 중간중간 동행자이자 유일한 동료인 '아미르'의 이야기가 끼어들긴 하지만, 철저하게 주인공 '롭'의 시점을 따라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현재 롭의 상태뿐 아니라, 그의 과거 또한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롭이 포틀랜드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요리사였던 것은 맞지만, 그가 어떤 모습, 어떤 식당에서 요리를 했는지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내와 이별한 것처럼, 구체적으로는 사별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이 역시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주변 인물들이 롭에게 건네는 위로와 표정, 그리고 말로서 롭의 과거는 스케치되듯이 희미하게 그려질 뿐이다.
롭의 대사 톤 역시 느릿느릿한 데다, 롭의 진짜 정체부터 돼지의 행방 등 영화 내내 제공되는 정보의 양이 적다 보니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가 다소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정보의 공백, 빈칸들은 말로서 표현되지 못한 롭과 인물들의 슬픔, 회한으로 채워져 있으며, 나아가 관객이 영화를 보며 떠올리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들로 채워낼 수 있다. 이는 곧 영화를 보는 관객 한 명 한 명의 생각과 감정으로 영화가 완성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풍성하고 다양한 감상을 이끌어 낸다.
이러한 이유에서 빈칸이 많은 영화, 대사와 대사의 사이, 장면과 장면의 사이의 박자가 느린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영화와 쉽게 사랑에 빠지곤 한다. 영화를 보고 있는 순간에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로 머리가 조금은 복잡해지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 즈음 생각들이 갈무리되고 나면,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영화 속 세상과 소통을 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영화 속 주인공뿐 아니라 영화를 만든 제작진과 함께 호흡했다는 생각까지 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피그>가 그랬다. 여러 의미에서 종잡을 수 없던 영화였고, 보는 내내 즐거움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지만, 영화가 가지고 있는 빈칸들을 나만의 생각으로 채우고 정리함으로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트러플'과 같은 다양한 모습들만큼이나 고급스럽고 풍성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롭의 돼지가 납치된 것처럼 사랑하는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이 결코 흔하지는 않지만, 열정과 삶의 원동력이 푹푹 꺼지는 순간은 종종 찾아오곤 한다. 삶에 지친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한 힘은 어쩌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자하는 욕구가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이다.
마찬가지로 트러플을 찾기 위해서는 흙속을 파헤쳐야 하기에 반드시 옷이 더럽혀져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소중한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세상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옷에 더러운 흙이 묻어나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가야 하고, 또 그만큼 인생을 살만한 이유는 그 끝에 트러플처럼 온갖 향이 나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