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배트맨>
투박하지만 기본에 충실한 배트맨
<더 배트맨> 영화 리뷰
배트맨이 또다시 새로운 리부트 영화로 돌아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다크 나이트 3부작 이후, DC/워너브라더스의 ‘저스티스 리그’ 프로젝트 속 ‘배트맨’은 한 명의 히어로로서가 아니라 ‘저스티스 리그’ 구성원 중 한 명의 역할을 담당하는데 그쳤기 때문에 오로지 ‘배트맨’에 대한 단독 영화로는 굉장히 오랜만에 돌아온 셈이다. 저스티스 리그의 ‘벤 에플렉’ 배트맨에 대해 여로모로 말이 많았었고, 배트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오랜 기간,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캐릭터인 만큼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던 영화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도 <더 배트맨>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근 영화계에 만연한 리부트, 리메이크 열풍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저스티스 리그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벤 에플렉’의 배트맨을 좀 더 보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히어로 영화의 구분을 떠나 상업영화로서 다크나이트 3부작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아우라가 있는 만큼, <더 배트맨>의 성공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개봉 첫 주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관람객들의 평이나 기사들의 분위기를 봐서는 예상했던 바와 같이 긍정적인 평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조금 더 많은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더 배트맨>은 관람 전의 우려와 부정적인 예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영화였으며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였다. 당장은 이전의 배트맨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조커> 나아가 마블(MCU)의 영화들과 비교되겠지만, 제작이 확정된 3부작이 모두 공개되고 난 이후에는 충분히 지금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아래 글에는 <더 배트맨>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더 배트맨> 포스터 (출처:IMDB)<누와르(Noir)에서 태어난 히어로>
우선 <더 배트맨>은 일반적인 히어로/액션 영화와 근본적으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장르영화로서 분류하자면 '조폭/마피아 영화', '탐정 영화'로 분류될 만한 영화이며, 크게는 <무간도>, <레옹>등으로 대표되는 정통/네오 '누와르(Noir)' 영화의 특징이 짙게 묻어나는 '범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이러한 장르적 특성은 연출을 통해 관객에게 아주 제대로 전달되는데, 영화 내내 낮 시간대의 장면이 거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축축하고 매캐한 누아르 장르의 분위기를 잘 연출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영화 속에서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빗 속에 직접 서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대부분의 장면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며, 비가 오는 장면도 자주 등장한다. (출처:IMDB)누아르 장르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가장 많은 관객들이 아쉽다고 느낄만한 부분은 액션의 비중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히어로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그 <다크나이트>조차 액션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있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이번 <더 배트맨>은 액션의 분량과 그 밀도만 따지고 보다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시리즈보다도 액션의 비중이 적은 수준이다. 개인적으로는 다크나이트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면 적당하고 좋은 액션을 보여줬다고 생각하지만, 기상천외한 첨단(High-Tech) 장비들로 적들을 화려하고 멋지게 때려눕히는 배트맨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매우 큰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도 아니기에 히어로/액션 영화로서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배트맨의 유일한 슈퍼파워(?)인 '재력'이라도 적극적으로 묘사되어야 하는데, 이번 영화에서 배트맨은 영화 후반부를 제외하면 평범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닐 정도로 배트맨치고는 검소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배트맨 첨단장비의 상징인 '배트카'조차 조금 특이한 레트로 머스탱의 형태일 뿐이다. (출처:IMDB)돌아와서 '누아르' 영화로서의 <더 배트맨>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배트맨 캐릭터 자체가 박쥐를 모티브로 하고 있거니와, 수트도 검은색, 심지어는 '다크나이트', '어둠의 수호자' 등의 별명까지도 '검은색'과 연관이 있을 만큼 '배트맨'은 누와르 장르와 가장 잘 어울리는 히어로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부분의 배트맨의 누와르적 특징보다 배트맨의 배경과 철학이 이 장르와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삼촌 '밴'의 죽음이 영웅으로서 각성의 촉매가 되었듯, '배트맨'의 탄생은 어릴 적 브루스 웨인의 눈앞에서 살해당한 부모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으며, 이번 영화에서 역시 부모의 죽음(특히 아버지의 죽음)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즉, 배트맨은 범죄의 도시 '고담' 속 범죄에서 태어난 영웅이며, 영화 초반 배트맨의 내레이션처럼 스스로 '복수'를 천명하는 히어로이므로 누아르 장르와의 결합은 필연적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내가 그림자 속에 숨어있다고 생각하지. 나는 곧 그림자다. 나는 '복수'다."
<오직 배트맨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
<다크나이트> 이후로 배트맨 영화에서 주인공인 배트맨보다 주목을 받는 것이 바로 악역, 빌런이다. 마블( MCU)을 필두로 히어로 영화의 대유행 속에서 빌런에 대한 중요성이 영화팬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배트맨의 빌런에 대한 평가 기준은 그중에서도 유독 높은 편에 속한다. 사람들이 빌런에 집착하는 이유는 사실 '조커'라는 빌런의 압도적인 존재감 때문인데, 단지 배트맨 시리즈를 떠나 거의 모든 히어로 영화의 빌런이 조커의 기준에 근접하느냐 근접하지 않느냐로 평가되는 상황 속에서 <더 배트맨>의 빌런 '리들러'는 분명 빌런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으며,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빌런이라고 생각한다.
<더 배트맨> 스틸 이미지 (출처:IMDB)'리들러(Riddler)'라는 이름 자체에서 알 수 있듯, 끊임없는 질문과 수수께끼로 배트맨을 괴롭히는 빌런인데, 배트맨의 각성과 성장이 가장 중요한 이번 영화에서 리들러가 던지는 질문은 배트맨이 '히어로'로서 존재의 이유와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여 끝내 배트맨이 사적인 '복수'의 히어로가 아닌 공적인 '헌신'의 히어로로 거듭나게 만든다.
리들러 외에도 '캣우먼'이나 '펭귄' 등 기타 익숙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그 존재감이 리들러에 비교해서 크지 않으며, 영화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조연'의 역할로 활용된다. 개인적으로는 적재적소에 활용되었다고 생각하며, 3부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 별 다른 실망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원작 코믹스의 팬들이나 캐릭터들 간의 캐미 등을 기대한 관객은 아쉬움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더 배트맨> 스틸 이미지 (출처:IMDB)다시 말해, 이번 <더 배트맨> 영화는 생각보다 많은 빌런 캐릭터가 등장하고, 빌런이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내면서도 그 존재 자체가 오롯이 '배트맨'을 위해 설계되어있으므로 그동안의 배트맨 영화 중에서 가장 '배트맨'이 주목받는, 배트맨만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조커'와 같은 어마어마한 존재감의 빌런이나, 다양하 빌런들이 합심하여 배트맨을 괴롭히는 장면들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라면, 이 또한 영화에 실망할만한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브루스 웨인이 어렸을 적 부모의 죽음을 목격한 장면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않고도 빌런과의 대립을 통해 영웅으로서의 배트맨의 탄생과 그 이유를 충분히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배트맨 비긴즈> 이후로 처음 '적법하게' 리부트 된 배트맨 영화라고 생각한다.
Q : 나는 잔인하고 시적이며, 눈이 멀었지만, 이것을 부정하면 당신은 당신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되지. 나는 무엇일까요?
A: 정의
<범죄자에서 영웅으로>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더 배트맨> 속 배트맨은 부모를 죽음으로 이끈 범죄 집단에 대한 사적인 복수와 고담시를 구원하고자 하는 공적인 대의, 크게 두 가지 동기로 활동한다.
영화 초반부의 배트맨은 처음 배트맨이 등장할 때의 내레이션처럼, 그 자체로 그림자이자 공포, 그리고 복수의 히어로로 활동한다. 그를 움직이는 것은 죽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적인 대의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보다 중요한 동기는 좋은 사업가이자, 좋은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범죄자에 대한 사적인 '복수'였다. 범죄로부터 고통받는 고담 시민들의 '복수'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유에서 폭력을 행하기에 희망이나 구원이 아닌 '공포'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영화 중반부 이후, '캣우먼'과 친해지게 되고, 리들러가 던지는 질문의 끝에 도달하게 되면서 자신의 사적인 복수가 결고 스스로와 고담을 구원할 수 없을 것임을 깨닫게 되고, 진정한 의미의 영웅이자 고담의 구원자로서 거듭나게 된다.
<더 배트맨> 스틸 이미지 (출처:IMDB)개인적으로 영화 초반의 어둡고 피폐한 '복수'와 '공포'의 상징으로서의 배트맨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실상 영화 초반의 배트맨은 '리들러'나 '펭귄' 등 다른 범죄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분명 경찰과의 적극적인 협조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개인적인 이유서 비롯된 위선이며, 경찰과 범죄자를 가리지 않고 선이 없는 무분별한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배트맨 역시 또 하나의 범죄자에 불과하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가 배트맨에게 "너는 그냥 나 같은 별종(freak)이야"라고 말했던 것처럼, 배트맨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속성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있지만, 이번 영화처럼 직접적으로 배트맨을 또 하나의 범죄자처럼 묘사한 영화는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색다른 설정으로 다가왔다.
배트맨이 진정한 의미의 '영웅'으로 각성하는 방법이나 그 순간에 대한 묘사가 다소 밋밋하고 극적이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연출은 그 어떤 배트맨 영화보다 섬세하고 흥미로웠다.
"우리가 받은 상처는 그 상처가 물리적으로 다 나은 이후에도 우리를 파괴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가 그
상처에서 살아남는다면, 그 상처는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지. 그 상처들은 우리에게 인내할 수 있는 힘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거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배트맨>
<더 배트맨>이 좋았던 이유를 정리하고 보니, 이 영화는 관객 개인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게 될 영화인 것 같다. 내면의 성찰, 그리고 자아의 성장과 변화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만족할만한 영화였지만, 일반적으로 히어로 영화에 기대하는 것들을 보고자 극장을 찾는 대다수의 관객에게는 지루하고 평범한 영화로 보일 영화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배트맨에 대한 여러 설정들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다. 고증이나 사실성에 대해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을 보여주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보다도 <더 배트맨>은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어진 배트맨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 <데어데블>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다수의 악당들을 때려잡는 장면들에서는 때리는 장면만큼이나 얻어맞는 장면들도 많이 등장하며, 그가 입고 있는 수트조차 어딘가 조악해서 수트라기보다는 갑옷에 가깝게 느껴질 만큼 투박하다. 심지어 카 체이싱 장면에서 겨우 몇 번 등장하는 '배트카'까지 일반적인 스포츠카의 형태를 띠고 있으니, 폭발 직전의 배트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탈출하거나 시가지를 자유롭게 활공하는 1인용 비행기를 타고 다는 배트맨에 익숙한 관객은 '이게 무슨 배트맨'이야 라는 생각까지 할지도 모른다.
<더 배트맨> 스틸 이미지 (출처:IMDB)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배트맨>을 높게 평가하고 싶은 이유는 배트맨 시리즈를 떠나, 그 어떤 히어로 영화에서도 본 적 없는 과감한 시도와 야망 같은 것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DC/워너브라더스가 <조커>의 성공을 통해 제대로 배운 것처럼 보이는데, 한 캐릭터의 근본부터 하나하나 다시 쌓아 올리고자 하는 절치부심이나 결심이 느껴지는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이유는 <혹성탈출>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리부트 한 '맷 리브스' 감독의 역량을 믿기 때문이다. 감독 '맷 리브스'의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시리즈가 가지고 있는 과거의 영광들과 비교되겠지만, 속편이 나올 때마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감독인 만큼 3부작이 모두 공개되고 나서는 이전의 영화들과는 분명 차별화된 신선하고 좋은 영화들이 나오리라 믿는다.
+ 이전과는 다른 색다른 배트맨을 보고 싶은 관객에게 추천!
+ DC 코믹스 속 '근본' 배트맨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추천!
+ 러닝타임이 긴 영화(180분)를 못 견디는 관객에게는 비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