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딜레탕트 Mar 03. 2022

<나이트메어 앨리>  타인의 악몽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나이트메어 앨리> 영화 리뷰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그만의 독특한 연출 방식 때문에 그의 영화에는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 크리쳐(괴물) 영화의 거장 등의 수식어가 따라온다. 그가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기괴한 형상의 독특한 생물 혹은 괴물이 등장하는데, 사실 괴물이 등장하는 소름 끼치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영화의 대부분은 동화를 연상케 하는 상상력 넘치는 따듯한 연출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음악들로 가득하다.


델 토로 감독은 기괴한 외모의 '괴물'을 인간적인 캐릭터로 묘사함으로써, 불쾌함, 불편함을 느끼도록 연출하고, 이를 통해 관객이 '차별'과 '혐오', 나아가 '인간성' 혹은 '인류애'에 대한 고민 하도록 유도한다.


이례적으로 이번 영화 <나이트메어 앨리>는 크리쳐라고 부를만한 '괴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여전히 델 토로 감독이 만들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하며, 그가 이전 영화에서 다뤘던 핵심적 주제의 연장선에 있는 영화였다.


전작인 <셰이프 오브 워터>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괴물’에 대한 영화였다면, <나이트메어 앨리>는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인간’에 대한 영화라고도 볼 수 있다.




"아래 글에는 <나이트메어 앨리>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이트메어 앨리> 포스터 (출처:IMDB)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

영화는 과거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자신이 만든 거짓의 '악몽' 속에서 자멸하는 한 남자의 파멸을 그린다.

 

영화에서 자세하게 묘사되지는 않지만, '스탠턴'에게 가족은 아마도 아버지 한 명뿐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을 불태우고 떠나며 영화는 시작된다. 집을 떠난 그는 한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 서커스 집단에 머물게 되고, 그곳에서 독심술, 심리술에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심리술사이자 사기꾼으로서 자리 잡게 된다.


인상적인 것은 사기꾼으로서의 성공은 '스탠턴' 입을 열면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말을 해야 사람을 속일  있는 일이기에 당연한 것이지만, 영화 초반 그는 이상하리만큼 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 그가 서커스 단체에 소속되기 전에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질문에   없는 표정을 지을 ,  한번 뻥긋하지 않는다. 서커스 단체에 서서히 자리 잡아가면서,  심리술사로서 일을 하고자 스승인 '피트'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으면서 점차 대사량이 많아지고, 그의 말수가 늘어날수록 사기꾼으로서 그의 재능은 점차 빛나기 시작한다.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스탠턴'이 사기꾼으로서 기술을 배우는 '서커스' 집단 역시 거짓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며칠을 굶어도 죽지 않으며, 닭을 산 채로 잡아먹는 '기인'은 사실 마약과 술에 찌든 '폐인'이며, '심리술'은 사전에 약속된 신호어들에 약간의 관찰력이 더해진 '기술'에 불과하다. 즉, 사실상 서커스라는 존재 자체가 사기와 속임수로 만들어진 거짓의 상징과도 같은 개념이기에, 거짓된 삶을 살아온 주인공이 이곳에서 사기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직업적으로 남을 속이는 '사기꾼'으로서 '스탠턴'의 삶은 당연히 거짓으로 가득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스탠턴'의 삶 또한 거짓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영화 후반 드러나는 그의 과거를 통해 알 수 있듯, '스탠턴'은 과거 자신이 저지른 '죄'를 마주하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속이며 살아가는 도망자이자 천부적인 사기꾼에 불과하다.


사기꾼으로서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였던 '스탠턴'의 삶은, 사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으며, 악몽과 같은 삶이었다.  스승 '피트'의 대사처럼 끝없는 오만과 위선의 끝에 구원과 회복은 없었다.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사람이 자기 자신의 거짓말을 믿고, 자신에게 힘이 있다고 믿기 시작하는 순간 눈을 감게 될 걸세. 왜냐하면 그는 모든 거짓을 진짜라고 믿을 테니 말이야. 그러면 사람들이 다쳐. 그리곤 거짓말하고 또 하게 되지.
그리고 거짓말의 끝에, 거기엔 신의 얼굴이 있다네. 널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는 신의 얼굴. 네가 어디로 돌아가든 상관없어, 신을 능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네 스탠."


<타인의 삶을 통해 반복되는 악몽의 순환>

영화가 더욱 흥미로운 것은 '스탠턴'뿐 아니라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인물이 각자의 불행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불행이 타인에게 전이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상징이자, 가장 '괴물'처럼 그려지는 '기인(Geek)'의 존재가 그렇다. 서커스 단장이자 기인 조련사인 '클램'의 대사처럼 사람들이 기인을 보기 위해 돈을 내는 이유는 기인이 신기하고 끔찍한 괴물이어서가 아니라, 기인을 보며 '우월감'에 젖기 위함이다. 이 '우월감'은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 간의 관계를 꿰뚫고 있는 단어이자, '불행' 혹은 '악몽'이 전염되기 시작했다는 증상과도 같은 감정이다.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이미지 (출처:IMDB)

처음 스탠턴은 기인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지만, 그가 사기꾼으로서 재능을 발하면서 그도 결국 기인을 보며 우월감에 젖는 모습이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심리술사로 이름을 알려가던 그의 앞에 '진짜' 심리학 박사 '릴리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 또한 마찬가지다. 릴리스 박사는 스탠턴의 공연이 사기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스탠턴은 그 시험을 보란 듯 이겨낸 뒤 많은 청중 앞에서 박사에게 망신을 줌으로써, '우월감'에 취한 모습을 보인다. (영화 마지막 이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역전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이후 등장하는 사기꾼 사냥꾼 '에즈라 그린들'과 스탠턴의 관계 또한 같은 맥락으로 '우월감'이 갈등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타인의 불행을 보며 쾌락의 요소로 여기며, 타인이 불행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보며 동정심을 느낄지언정, 그들을 구원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월감에 중독된 사이 타인의 불행과 악몽은 자신의 현실이 되고, 결국 불행은 영원한 악몽이 되어 반복된다.


<거장의 영화 다운 완성도와 명품 배우들의 향연>

다소 무거운 주제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답게 아름다운 영상과 인상적인 연출 덕분에 지루함이나 답답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복고적인 감성이 곳곳에 묻어나는 공간과 의상 그리고 음악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가 환기되어 보는 내내 몰입해서 관람할 수 있었다.


다만, 1970년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만큼 이야기가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며, 시대상을 작품에 적절히 녹여낸 과거의 델 토로 영화들과는 다르게 영화에서 냉전시대가 크게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이미지 (출처:IMDB)


무엇보다 호화 캐스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화려한 출연진들의 명연기를 보는 재미가 확실한 영화였다. 주인공 스탠턴을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는 다시 한번 그가 지금보다 훨씬 더 고평가 받아야 하는 배우임을 증명해냈으며, 최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도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인 '윌리엄 데포', <유전>의 '토니 콜렛' 또한 각자의 역할 속에서 훌륭한 존재감을 뽐낸다.


스탠턴의 두 여인, '케이트 블란쳇'과 '루니 마라'는 영화 속 시대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와 함께 언제나 그랬듯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주며, 두 인물이 만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둘이 한 프레임에 잡힐 때마다 함께 등장했던 <캐롤>이 떠오르는 것 역시 흥미롭다.


"당신이 사람을 속이는 게 아니예요. 사람들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거지"


<기인이 되지 않으려면>

영화에는 괴이하게 생긴 괴물다운 괴물이 등장하지 않을 뿐, '기인(Geek)'이라는 인간이 괴물로서 등장하는 셈이다. 영화에 따르면 기인은 처음부터 기인이 아니며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이다. '진짜' 기인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임시'로 일하는, 그저 술과 마약에 찌든 중독자였으나 기인으로서의 삶에 서서히 적응하면서 본인 스스로가 기인의 삶을 받아들이면서 기인은 태어난다.


가히 충격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영화의 마지막 '스탠턴'은 처절한 몰락을 겪은 후, 폐인이 되어 서커스단으로 돌아간다. 사기꾼으로서의 재능을 어필하며, 일할 기회를 달라고 서커스 단장에게 애원하지만 단장은 이미 폐인이 된 그를 고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장은 돌아서는 '스탠턴'을 다시 붙잡고서, 할만한 일이 있다며 그에게 '기인' 역할을 권하고, '스탠턴'은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기인은 본인이 가장 잘하는 일이라고 말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속 기인은 "이건 내가 아니야. 이건 내가 아니야"라고 끊임없이 되뇐다. 이는 자신의 불행으로부터 처절히 도망치며 살아온 '스탠턴'의 삶과 결코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 '스탠턴'은 기인을 불쌍히 여겼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를 구원하지 않은 채, 기인의 불행을 관망하였으며 결국 그 불행은 자신의 불행이 되어 그토록 불쌍히 여기던 괴물이 되고야 말았다.


<나이트메어 앨리> 스틸 이미지 (출처:IMDB)


그렇다면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탠턴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몰리'처럼 산다면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몰리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타인의 불행에 손을 내미는 인물임과 동시에 서커스단에서 일하면서 유일하게 거짓되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다. 몰리는 전기의자에서 흐르는 전류를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전기 인간'의 역할로 등장하는데, 사실 그녀는 가짜 전류를 감당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고통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었다.


또한 몰리는 멈출 줄 모르고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애인 스탠턴에게 끊임없이 경종을 울리며, 돌아오라 경고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스탠턴이 사기꾼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스스로 자멸하는 마지막까지 곁에 머물며 그 삶의 동반자이자 구원자로서 함께한다.


오직 몰리만이 정직한 방법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가며, 타인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는 영화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도덕'이자 '양심'이자, 나아가 괴물이 되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맨 몸으로 전기를 견디던 몰리처럼, 삶의 구원을 위해서는 고통을 묵묵히 이겨내는 인내와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정하게 살아온 주인공이 실패하고 끝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며 관객은 '전락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영화 속 인물의 타락과 몰락을 즐겁게 관람하는 관객이 곧 타인의 불행을 보며 우월감에 젖는 영화 속 인물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영화가 더욱 소름 끼치게 느껴진다.


영화는 우리가 불행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아가 모두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손을 건넬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래야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 좋은 연기를 보고싶은 관객에게 추천!

+ 기예르모 델 토로 영화의 팬이라면 추천!

+ 밝은 분위기의 영화, 해피앤딩 영화를 보고싶다면 비추천!

매거진의 이전글 <리코리쉬 피자> 나이 값 못하게 만드는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