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코리쉬 피자> 영화 후기
<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부기나이트>의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신작으로 돌아왔다. 디지털 촬영이 보편화된 현재까지도 35mm 필름 촬영을 고집하는 촬영 방식, 서로 어긋나있거나 뒤틀려있는 인물 간의 관계를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묘사하는 독특한 세계관 등 그가 연출한 모든 영화를 다양한 이유에서 좋아한다. 그의 열렬한 팬이기에 <리코리쉬 피자> 또한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가지고 관람했고, 기대한만큼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그의 영화 중에서도 <펀치 드렁크 러브>, <팬텀 스레드> 그리고 <메그놀리아>를 특히 좋아하는데, 보통 그의 최고작으로 거론되는 <데어 윌 비 블러드>, <마스터> 같은 작품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덜' 강렬한 영화들을 좀 더 좋아하는 편이다.
<리코리쉬 피자>는 그가 전에 연출한 <부기 나이트>와 <펀치 드렁크 러브>를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였으며, 어떤 측면에서는 '폴 토마스 앤더슨'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따듯하고, 서정적이기까지한 영화였다. 물론 그가 만든 모든 영화가 그렇듯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며, 색다른 영화, 잘 만들어진 영화를 찾는 영화 팬으로서 만족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영화였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심리적으로 어딘가 결함이 있거나 뒤틀려있으며, 인물들 간의 관계 또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 특징이다. 젊은 남녀의 성장 혹은 풋풋한 멜로 영화로 볼 수 있는 <리코리쉬 피자>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물 간의 독특한 상황과 관계를 통해 매우 흥미롭고 신선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그의 영화에서는 항상 힘이나 권력을 가지고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있는 사람과 그 사람에게 어딘가 종속되어있는 사람이 등장하며 이 둘의 어긋난 권력구조 혹은 파워게임으로 발생하는 갈등, 역설이 영화를 끌고가는 강력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전작 <팬텀스레드>에서의 '레이놀즈'와 '알마'의 관계가 그러하듯 <리코리쉬 피자>의 '개리'와 '알라나' 역시 영화 내내 서로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려고 일종의 '밀당'을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답게 두 남녀의 권력구조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
이제 막 앳된 티를 겨우 벗은 15살 남자'개리'와 20대 중반에 들어선 백수 여성 '알라나' 모두 사회적으로 제 나이 또래에 맞지 않는 상황에 놓여져있다. '개리'는 이제 겨우 십 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꿈과 커리어에 확신이있으며 심지어는 본인 이름의 회사까지 있는 엄연한 사장인데, '알라나'는 20대 중반이지만 아직까지 하고 싶은 일을 찾지도 못했으며, 변변한 직장 없이 그저 '죽지못해' 중학생들의 졸업앨범 촬영 보조 알바를 뛰고있을 뿐이다. 즉 십 대 소년인 '개리'는 학생답지 않으며, 성인 '알라나'는 어른 답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 둘의 관계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요소로 작용한다.
"너랑 내가 데이트하면 내가 잡혀갈걸?!"
아역배우, 물침대 장사, 심지어는 핀볼 사업장까지 개업할 정도로 '개리'는 굉장한 사업 수완을 보여주는데, 그의 능력과는 별개로 어쨋든 그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를 어른으로 대우해 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가 사랑에 빠진 '알라나'가 남자로 봐주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에 소년이 아닌 '남자'임을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15살 짜리 학생이 노력해봤자 그저 세상의 눈엔 귀여운 소년일 뿐이며, 개리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진짜' 남자들 앞에서 한 없이 초라해질 뿐이다.
'알라나' 또한 '개리'와 비교했을 때 결코 좋은 처지는 아니다. 나이는 어엿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경제생활을 하고 있지 못하며, 꿈도 없고 집에서도 구박만 받고 사는 듯 하다. 계속 들이대는 '개리'가 싫지 않아서, 또 경제생활해야하는 상황에서 '알라나'는 개리의 피고용인이 되어 10대 학생과 사업 파트너, 혹은 직원으로서 일하게 된다. '알라나'는 결코 '개리'가 남자로서 좋아서 같이 일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을 필요로하는 '어른', 혹은 '남자'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개리'와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모든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아이러니, 모순 그리고 역설을 이용한 작품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 속 두 남녀의 역설적인 상황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한바탕의 로맨스는 개인적인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으며,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개리'와 '알라나' 둘 사이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나이 차이 때문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사실은 서로가 상대방에게 끌리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개리'는 첫 눈에 '알라나'에게 반해, 그 어린나이에 결혼을 언급할 정도로 그녀를 운명의 상대로 여기며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남자로서 대해주지 않자, 그녀를 직원, 사업파트너 혹은 운전기사로 대하며 그녀를 '사랑'이 아닌 '필요'로서 대한다.
'알라나' 또한 자신에게 당돌하게 들이대는 '개리'에게 분명 끌리는 것이 분명하지만, 자신을 여성으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필요'로 해주는 남자를 찾기 위해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외면한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있는 정치인, 명예를 갖춘 유명인사 등에게 자신을 여성으로서 어필하지만 그들은 '알라나'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봐주지 않거나, 누군가를 대체하는 대리인으로서 그녀를 대한다.
영화 말미에 둘이 크게 다투면서 서로에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가 되고 나서야,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감정을 진실로 마주할 수 있었으며, 더 이상 서로 만날 수 없는 평생선이 아닌, 서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게된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곧,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간 로맨스/멜로를 다룬 수 많은 작품들은 사랑이 수단이나 용도가 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목적이기 때문에 위대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이유로 상대방에게 감정의 대가를 요구하고, 동시에 사랑받기 위해 ‘필요’로서 주변을 맴돌곤 한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주변의 것들과 내면의 것들로 스스로의 감정을 마주하지 못하거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을 알게 해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며, ‘영화’그리고 ‘예술’은 이러한 사랑을 이루게 해주는 배경과 매개체로서 존재한다.
언젠가 영화를 비롯한 예술을 왜 그렇게 좋아하냐고 누군가 물었을 때, “예술이란 것은 누군가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내 인생을 돌아보고 타인과 자신, 혹은 세상과 나의 관계를 고민하고 성찰 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 라고 답한 적이 있다. 다양한 예술의 분야 중에서도 영화는 이러한 경험을 가장 접근하기 쉽게, 그리고 복합적인 방법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영화'와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예술애호가’로서, 영화 속의 ‘사랑’과 그것을 표현하는 탁월한 연출은 더욱 각별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70, 80년대 LA 지역의 LP가게의 이름을 딴 영화의 제목처럼 영화는 두 청춘 남녀의 사랑만큼이나 감독의 추억 속에 있는 LA를 소환하는 것에도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영화 속에는 오일쇼크, 물침대, 핀볼, 데이빗 보위와 폴 맥카트니 등 1973년의 LA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것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배경이나 장치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긴 하지만, 큰 흐름에 관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 이러한 요소들을 섬세하게 넣어놓은 것은 LA 토박이로서, 특히 샌 페르난도 밸리 지역에 대한 감독의 각별한 사랑 표현이다.
"난 당신을 잊지 않을 거에요. 당신이 저를 잊지 않을 것 처럼요."라는 '개리'의 대사처럼, 감독은 단지 감정으로서의 '첫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빠졌을 때의 공기부터 분위기, 그리고 시대까지 모든 것을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사랑'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다만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이 딱 하나 있다면, 영화에서 일본인을 묘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상 유머의 소재로 몇몇 '일본인' 캐릭터들을 소비하는데, 다른 시대적 요소들과는 다르게 희화의 목적으로 사용된 것이 노골적이며, 이야기의 흐름상 꼭 필요했던 설정도 아니었기 때문에 같은 동양인으로서, 실망과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연출이었다.
1. '개리'를 연기한 배우는 2014년 사망한 '필립 시모어 호프먼'의 아들인 '쿠퍼 호프먼'이며, 이번이 그의 데뷔작이다.
2. 영화 속 '알라나'의 실제 이름 또한 '알라나'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그녀의 가족은 모두 실제로 가족이다.
3. 그리고 '알라나'를 포함하여 영화 속 등장하는 자매는 당연히 실제 자매이며, 'HAIM'이라는 밴드를 결성, 평단과 대중으로 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며 왕성한 음악활동 중에 있다. (그들의 음악 역시 당연하게도 굉장히 좋다!)
4. 영화 제목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감초피자'이며, 70, 80년대 LP를 판매하는 가게의 이름에서 따왔다. (감초가 검정색, 피자는 원판형. 까만색 레코드판 즉, LP = 감초피자) 그러나 영화 속에서 해당 가게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으며, 당연히(?) 피자 또한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5. 신인 배우를 캐스팅한 주연 캐릭터들과 달리 조연에는 무려 '숀 펜'과 '브래들리 쿠퍼', '톰 웨이츠' 등등 말 그대로 할리우드의 전설과 같은 배우들이 출연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배우는 정말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소수의 배우들을 제외하면, 좋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이는 영화를 연출하는 감독이 영화의 캐스팅부터 연출, 배급 등 영화 제작부터 유통까지 전반에 걸쳐 막강한 권력을 갖는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하는 취향에서 비롯된 생각이기도 하다.
영화의 성공이 유명배우의 출연 여부와 비례한 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영화의 완성도적 측면에서 배우 자체의 힘으로 그 영화가 좋은 영화가 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배우더라도 연출과 각본이 뒷받침 되주지 않는다면, 연기자로서의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반면, 연기 경험이 없는 연기자 혹은 연기력이 부족한 연기자라고 하더라도 제작단계에서의 전략적 캐스팅,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출자의 역량에 따라 연기의 한계는 충분히 극복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좋은 영화가 있어야 좋은 배우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리코리쉬 피자>는 이러한 생각을 더 확고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태도나 노력을 평가절하하고자 함은 결코 아니다.
그저 두 주연 배우 모두 연기자로서 첫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연기의 부족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으며, 이러한 연기력을 발휘 할 수 있도록 캐스팅하고 연출한 감독의 안목과 능력에 감탄했음을 표현하고자 개인적인 가치관을 핑계삼아 설명하고자 했음을 밝힌다.
서두에서 밝혔듯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중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낭만적이고 따듯하기까지 한 다소 어색한(?) 영화였지만, 그의 영화를 보고 단 한번도 실망한적이 없었으며, 이번 작품 또한 영화를 통해 많은 것들을 느끼고 경험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만족한 좋은 영화였다.
OTT 플랫폼이 일반화, 대중화 되고있는 시점에서 '영화관람'의 의미가 희석되고있지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아직까지 필름촬영을 고집하고 있는만큼, 영화관에서 관람한다면 영화의 '질감' 혹은 '감성'을 조금이나마 더욱 짙게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데어 윌 비 블러드>나 <마스터>와 같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답답하거나, 어려운 심상을 다루고 있지 않은 만큼, 평소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를 어렵게 느꼈던 관객이 있다면 이 기회에 '순한맛 PTA(폴 토마스 앤더슨)'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팬이라면 추천!
+ 단조로운 플롯, 청춘 드라마/로맨스 영화를 즐기지 않는다면 비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