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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딜레탕트 Feb 12. 2022

<355> 그래서 왜 '355'가 되었는가

<355> 영화 후기

스타성을 갖춘 소위 티켓파워로 유명한 배우들을 영화 자체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기획 영화는 초기의 할리우드 영화시장에서부터 존재해왔다.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관계없이 출연하는 배우들의 화려한 면면들 그 자체로 주목을 받으며, 여타 영화에서 당당히 주연을 맡을 만한 배우들로 꾸려지는데, 이미 기획 단계에서부터 흥행을 전제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도 성공의 문법과 규칙 안에서 영화를 만들고 이를 아는 관객들도 큰 기대 없이 영화를 관람하는, 일종의 암묵적 상호 합의가 완료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2010년대 초반 <익스팬더블>,  <RED>  스타배우들이 집단으로 등장하는 액션영화가 유행이었다. 


이 합의에서 관객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서 영화가 지켜야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캐스팅한 ‘배우의 매력’,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 작품에서 만나기 어려운 배우들 간의 ‘조화 혹은 시너지’, 이 두 가지 정도만 충족해도 관객이 영화에 실망할 확률은 높지 않다. 


안타깝게도 영화 <355>는 이러한 스타 마케팅 영화라면 마땅히 지켜야할,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지키지 않은데다 그 외의 것들도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처참하게 망가진 영화였다. 




"아래 글에는 <355>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나더 라운드> 포스터 (출처:IMDB)


<배우들을 집어삼킨 처참한 각본>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는 것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인 만큼 등장하는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제시카 차스테인', '다이앤 크루거', '페넬로페 크루즈', '루피타 뇽' 그리고 '판빙빙'까지 굳이 영화팬이 아니더라도 이름 한번 쯤 들어봤거나, 본 적이 있는 쟁쟁한 배우들이 주연으로, '세바스찬 스탠'이 조연의 역할로 등장한다. 출중한 외모도 이들의 인기요소 중 하나지만, 무엇보다 수준 이상의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기에 당연히 좋은 연기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특히 이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제시카 차스테인'을 가장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그녀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다.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등장하는 관객이 이런 영화에서 기대하는 바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가장 최악이었던 점은 각본이었다. 배우들이 기본적인 연기조차 소화 하지 못할 정도로 각본이 엉망이었는데, 각 캐릭터들에게 관객 이 몰입하기 위한 인물의 특성과 감정묘사는 형편없는 대사들의 나열을 통해 설명하는 것으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다. 이 영화가 과연 2022년에 개봉한 영화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열한 수준의 대사들과 이야기 전개 덕분에 후반부의 몇몇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사실상 거의 연기하기를 포기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연기와 각본 모두 엉망이었다. 


이쯤되면 이 영화의 각본을 누가 썼는지 궁금해지는데, '엑스맨' 시리즈로 유명한 '사이먼 킨버그'가 이 영화의 감독이자 공동각본가로서 참여했는데,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화려한(?) 전적들을 보면 이 영화 각본의 실패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엑스맨 시리즈의 부활을 알린 <엑스맨:퍼스트클래스>, <엑스맨:데이즈오브퓨쳐패스트>를 제작한 만큼, 제작자로서 그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볼 수 있으나, 동시에 엑스맨 시리즈의 흑역사로 남은 <엑스맨:최후의 전쟁>과 본인이 겨우겨우 부활시켜놓은 시리즈의 문을 닫게 만든 <다크피닉스>의 각본을 쓴 장본인이기도 하다.


CIA, MI6, KGB 등 전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주연진은 각 기관들에 소속된 요원들로 등장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함께 움직여야 할 이유도 없으며, 그저 반복된 우연들로 이들이 모여 팀을 꾸리고 세상을 구하는 개연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스토리가 전개된다. 여기까지는 스파이 액션 영화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는 영화이니 어느 정도 이해하고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러나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개인적으로 가장 실망스러웠다. 


최고의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정예요원들이 기관의 명령은 기본적으로 무시하고 단독행동을 일삼고, 스파이라는 사람들이 시장 한복판에서 술 몇 잔 마시며 대화 몇마디 나누고나서 가족과 다름없는 수준의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평생을 약속한 연인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목숨을 걸고 이중첩자가 되질 않나...이 영화의 각본은 장르가 '스파이 영화'니까 눈 감아주고 넘어갈 만한 수준이 아니며, 하나하나 나열할 수 도 없을 정도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가 지루하고 조잡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먼 킨버그' 각본의 실패 사례 (출처:IMDB)


'사이먼 킨버그'의 실패작으로 나열한 몇몇 영화들의 공통점은 등장하는 인물, 캐릭터에 대한 관객의 몰입을 대사와 플롯이 방해한다는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서 동화책에나 나올 법한 유치한 대사와 대화, 전혀 신선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클리셰들로 범벅된 이야기의 전개 등 배우나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모조리 집어 삼킬정도로 그가 집필한 각본은 엉망이었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대부분의 영화들 속에서 많은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명장면들이 탄생했기에 '제작자'로서 그의 능력은 훌륭하다고 보지만, 연출과 각본에 대한 재능은 이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것 같다. 


<기본조차 갖춰지지 않은 수준 낮은 액션>


그렇다고 이 영화의 액션이 다른 장르영화들과 비교해서 훌륭한 수준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액션신들은 '시가지에서의 추격신'과 '실내에서 벌어지는 맨몸, 총기 액션' 이렇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두 액션신 모두 실망스러웠다. 뛰어가는 배우들을 촬영하는 모든 추격 장면에서 멀미가 날 정도로 초점이 맞지 않아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고, 맨몸액션에서 주인공들이 제압하는 악당들은 아무런 방어동작 없이 친절하게 주먹과 발차기를 맞아준다. 이는 액션영화라면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연출과 편집조차 지키지 않은 부분으로, 영화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액션이라는 것은 격투나 총격신 등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촬영을 시작할 때,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치는 이유는 액션이 카메라와 피사체의 상호작용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반드시 행위(Act)와 반응(React)이 있어야 비로소 '액션'이 완성된다. 이 영화 속에서 액션은 사실상 허공에 대고 대사를 뱉으며, 벽에다 대고 총을 쏘는 것이 연속되는 것에 불과하다. 말하는 '화자'만 있을 뿐, '청자'는 없으며, 총을 쏘는 사람만 있을 뿐 맞는 사람은 화면에 잡히지 않는다.


짜고치는 프로레슬링에 사람들이 열광했던 이유는 누가 이길지 질지 예상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때리는 사람과 맞는 사람의 상호작용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빗발치는 긴박한 상황이라도 어차피 주인공들은 총알에 맞지 않거나 바로 앞에서 총에 맞아도 총알은 급소를 피해가며, 악당은 결국 제압당할 것을 관객은 이미 알고있다.


<355> 스틸 이미지 (출처:IMDB)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총에 맞고, '어떻게' 악당을 제압하는지를 보기 위해 관객은 사실상 '프로레슬링'과 다름없는 '007시리즈'부터 '본 시리즈', '킹스맨 시리즈' 그리고 '존 윅' 등의 수 많은 액션 영화에 열광한다. 과정도 결과도 모두 관객의 예상범위 내의 것들만 나열하여 보여주는 것에 그친다면 그 자체로 액션 영화는 이미 실패한 것과 다름없다. 


<영화를 더욱 실망스럽게 만드는 것들>


1. 중국 자본의 영향력

영화 속 '판빙빙'의 역할은 그녀가 연기하는 '린미셩'이라는 캐릭터자체가 영화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고나서 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이 더욱 커졌다. CIA 등 어떤 정보기관의 명칭도 아닌 그저 '중국요원'이라는 타이틀로 소개되는 첫 등장이나, 영화 속 모든 의문과 위험요소들을 몇 분만에 해결해버리는 '만능해결사'의 역할 등은 마치 중국이 세계 평화의 수호자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된다. 


'판빙빙'이라는 배우가 다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배우인가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이 영화에 꼭 필요한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해결사의 역할로 등장한 것은 영화 오프닝 타이틀에서 볼 수 있는 중국 투자사와 관계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355> 스틸 이미지 (출처 : IMDB)

결국은 '돈'이 되는 영화, '잘 팔리는' 영화를 만들어야하는 상업 영화시장, 할리우드 시장에서 돈이 가장 많이 몰리는 중국 시장의 투자를 받고, 가장 큰 잠재적 관객들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의 입맛에 맞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제작 환경이 영화에 나쁜 영향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다른 그 어떤 예술분야보다 더욱 '정치화', '무기화'되기 좋은만큼 특정 국가에 대한 목적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영화에 대해서는 관객이 위기감을 느끼고, 평가해야하지 않을까.


2. PC(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 유행의 그림자

영화는 다양한 인종을 캐스팅하여 '다양성'을 갖추고자 하였으며,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첫 여성스파이 코드네임을 따서 '355' 영화의 제목지어 '여성주의'를 표방한다.  


<355> 스틸 이미지 (출처 :Teaser Trailer)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정치적 올바름(PC)에 편승할 뿐, 이에 대한 그 어떤 깊은 고민이나 이해 없이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 특정 사건에 '중국 차(茶)'로 만들어진 독약을 사용한 것은 캐묵은 '오리엔탈리즘'이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어. 여자가 남자를 돕는건 그만둬야 할 때야." 라던지, "우리는 잘못한게 없어. 언제나처럼 그저 '나쁜 남자'를 만났을 뿐이야."와 같은 일반화되고 왜곡된 대사들은 영화의 가치를 더욱 떨어트리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제목 '355'의 여성 스파이가 어떤 '스파이'활동을 했는지는 전혀 설명되지 않은채,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팀의 이름이 355가 되었으니, 어쩌면 '왜' 시대가 바뀌어야 했는지, '어떻게' 바뀌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애초에 이러한 내용에 대한 깊이가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당연히 갖추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장점조차 없었기에 단점이 더욱 부각되는 실망스러운 영화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 극장 관람을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

+ 배우들의 팬이라면 더욱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

+ 후속작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 같은데 부디 제작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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