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송광사엘 다닌지가 꽤 오래됩니다. 갈 때마다 어떤 정갈함을 몸으로 느끼게 되어 자주는 아니지만 일 년에 두세 번은 찾은 것 같습니다. 매번 불일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지만 그저 거기는 법정 스님이 계셨다는 정도로만 알고 지나쳤습니다. 두어 달 전에 송광사엘 갔다 왔는데 이번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저도 모르게 불일암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불일암으로 시작하는 길이 예상보다 가파랐습니다. 세멘트 길인지 그 위에 적갈색의 페인트를 입힌 길을 걸어 올라가면서 여긴 흙길이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사길을 다 올라가자 적송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기운이 벌써 시작되나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세 갈래 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차도 같아서 오른쪽으로 돌아올라가자 그 길이 유명한 ‘무소유길’이었습니다. 편백나무 숲과 대나무숲의 오솔길을 올라가는 한적함 속에서 타원형의 목판에 법정 스님의 책에 나오는 글들을 새겨놓았습니다. 읽어보고 핸드폰에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산길에는 애기 나리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피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중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는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내려놓음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하고, 이해하고, 자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 중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넘치는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 피네」 중에서
나무로 만든 문을 들어서자 불일암의 모습이 들어왔습니다. 사실 속으로 조금 조마조마 했습니다. 혹시나 암자가 현대식으로 삐까번쩍하여 실망하면 어쩔까 했습니다. 역시 고태가 나면서도 품격을 느꼈습니다. 불일암 밑 오른쪽으로 보이는 집은 어쩌면 법정 스님의 기거했던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멀리서 보이는 그 기와집은 바랜 갈색의 나무 색깔이 한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했습니다. 위쪽을 바라보니 통나무를 길쭉하게 자른 장작을 풍족하게 쟁여놓았습니다. 불일암의 옆 기둥에 있는 법정 스님의 사진에는 햇빛에 비치어 건너편 산자락의 그림자가 덮여 있었습니다. 법정 스님의 미소가 햇빛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인터넷에도 자주 나오는 법정 스님이 손수 만들었다는 의자가 남루하지만 오롯이 놓여 있었습니다.
오면서 불일암(佛日庵)의 불일이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불일암(佛日庵)의 다실 벽에 걸린 족자의 한 구절에 ‘수류화개(水流花開)‘라는 서정적 표현이 있다고 했는데 불일암은 무언가 경직된 느낌이었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광명을 해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나와 있습니다. 산속의 한적함에 비해서 너무 기세가 센 암자의 이름이 아닌가 하는 느낌입니다.
암자는 문이 닫혀 있었고 나무 층계 위에 놓여진 손바닥만한 갈색의 나무판 위에 까만 글씨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문 열지 마시오‘ ’묵언‘ 그 나무판 앞에 회색의 고무신 한 켤레가 신발 속으로 불청객의 소란을 집어넣었습니다. 불일암 속에는 아마도 법정 스님의 맞상좌인 덕조(德祖) 스님이 좌선을 하고 있으리라고 상상을 했습니다. 『침묵으로 돌아가라』에서 다이닌 가타기리(大忍片桐) 선사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라고는 그저 앉는 것, 그저 침묵의 세계로, 존재의 광대함에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그저 앉는 것입니다. .. 이것이 좌선입니다.” 다시 말해 지관타좌(只管打坐)는 침묵 속에 들어가서 존재의 광대함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이닌 선사는 가르침이 얼마나 깊은지 천박한지에 대한 논의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하지 말고 몸으로 존재와 연결되라고 한 말 같습니다. 왜 절에서는 유독 묵언을 강조하는 걸까요. 말을 하면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묵언 중에 자신과 세상의 근본을 성찰할 수 있습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 책은 읽어본 지 오래되었습니다. 내용도 거의 잊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법정 스님이 지금처럼 유명인사는 아닌 걸로 기억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법정 스님의 이름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필 법자일까 하고 말입니다. 최근에 다이닌 가타기리의 책을 읽으면서 법이 ’불교의 진리’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하자면 ‘진리의 정수리‘에 있다는 바램으로 지은 이름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법정 스님의 얼굴을 보면 무언지 모르게 스님으로서 수행해 온 내공이 얼굴에서 비쳐져 나옵니다. 과장하면 엄격하고 서슬이 퍼런 느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웬지 다가가기는 그다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른 승려의 말로는 ’까칠하다‘, ’가야산 억새풀’이란 별명도 있는 모양인데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웠다고도 합니다.
법정 스님은 두산백과에서 정의하기를 ‘한국의 승려이자 수필 작가이다’라고 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속명이 박재철이고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서 1956년에 출가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함석헌, 장준하 등과 같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저로서는 듣느니 처음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럴만도 하다 싶습니다.
1975년에 시국 사건에 실망하여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송광사 불일암으로 왔다고 합니다. 이 암자는 원래 고려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지은 것으로 자정암이었던 것을 법정 스님이 새로 고쳐짓고 암자 이름을 바꿨습니다. 1976년에 그 유명한 『무소유』 책을 씁니다. 이때 나이가 고작 44세라는 것이 의외입니다. 제가 44세 때는 지금 생각하면 아는 것도 별로 없고 그저 밥 벌어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할 때인데 차이가 나도 너무 나네요.
유명세를 타서 사람들이 불일암에 너무 와서 17년간 있던 불일암을 작별하고 1992년에 강원도 산골에 가서 오두막에 거합니다. 법정 스님의 특징이랄까 뭔가 속세를 멀리하는가 싶지만 항상 세상과 교통하고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는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교화시키려는 순수한 마음일 수도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무언가 사람들의 관심에 들기를 좋아한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1997년에는 요정을 하던 김영화가 1000억원 대의 대원각을 법정 스님에게 기부를 하여 길상사를 창건하여 회주(會主)로 6년간인가 있다가 다시 강원도 오두막으로 가서 거합니다. 2007년에 폐암에 걸려 여러 차례 수술하고 항암치료 하다가 2010년 3월 삼성병원에서 길상사로 와서 입적했습니다. 향년 78세였습니다. 이때 밀린 치료비 6천2백만원을 삼성의 홍라희 여사가 대납했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승려로서 또 수필 작가로서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입니다.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그를 진정으로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를 그리워하는 글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소유』는 3백7십만부를 찍었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임종하면서 말의 빚을 지지 않겠다고 자신이 발간한 책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라고 유언했습니다. 이 말에 사람들은 많은 감동을 받습니다. 동안거 중에 속가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례식을 하지 마라. 내가 살던 강원도 오두막에 대나무로 된 평상이 있다. 그 위에 내 몸을 올리고 다비해라.” 이런 말을 아무리 승려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에게 존경심을 품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극소수이지만 비난의 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기차를 타도 특실, 비행기를 타도 특실, 호텔을 가도 특실이었다. 스님이 차를 몰고 다녔다.’ 어쨌든 차는 이 시대의 소유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무소유는 세상 식으로 말하면 욕심내지 말라는 것인데 욕심내지 않는 것이 필요의 유무가 기준이라면 그 필요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니 무소유의 정체를 진실로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인지도 의심이 들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진 관점에 따라서 시비가 있을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 작은 것을 보기보다는 법정 스님이 살아온 행적의 큰 그림에 비추어서 바라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법정 스님의 마지막 투병 생활이었습니다. 폐암으로 3년간 여러 차례 수술하고 항암치료하고, 그것도 대한민국의 최고의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누구에게나 당연하고 원하는 바입니다. 여기에 시비를 거는 것은 너무 무례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이러한 투병 생활이 결코 그의 품격에 손상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때 제가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2022년 2월에 돌아가신 이어령 교수입니다. 그분은 법정 스님과 비슷한 1933년 생이고 법정 스님보다 10년 늦게, 2017년에 췌장암에 걸려 두 차례 수술하고는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5년간 죽음을 집에서 맞이하다가 향년 89세로 올해 가신 것입니다.
목숨도 우리 인간의 소유라고 한다면 정말 자신이 생명을 무소유로 포기할 줄 아는 순간을 깨닫는 것이 가능할까요. 2003년 길상사 요사채에서 법정 스님은 소설가 최인호와 대담을 가졌는데 그것이 실려 있는 책이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대화입니다.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죽음을 받아들이면 사람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사물을 보는 눈도 훨씬 깊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워한다면 지금까지의 삶이 소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법정 스님의 말씀을 왜 감동으로 받아들일까요.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생각 때문일까요. 법정 스님이 하신 말씀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는 말들입니다. ‘마음의 평온이 제일 중요하다’ ‘삶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스스로 행복해지라’ ‘남과 비교하지 마라’ ‘본질적삶을 살라 간소하게’……. 어떻게 보면 이런 것들은 특별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법정 스님이 말씀하면 그게 다릅니까. 그것은 법정이라는 스님의 삶이 그 말을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법정 스님의 진정성을 믿고 싶어 합니다. 생명이란 인간에게 준 축복이니까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돌보아야 한다. 주신 생명의 집착을 내려놓는 평안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정신적 ‘멘토’였던 법정 스님은 과연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요.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라는 울림이 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