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by 현목

『의사 할배가 들려주는 조금 다른 글쓰기』 책이 출간된 2023년 1월 10일은 저의 인생에 선을 뚜렷이 긋는 날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입시를 치르고 합격자 명단을 기다리는 입시생의 마음이 딱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새로 출판된 책이 저에게 도착하자 이제부터 친지들에게 제 책을 보내드리는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2004년 첫 시집 『모호한 중심』을 낼 때는 사실 정신이 없었고 더군다나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오직 ’내 책’을 가진다는 욕심밖에 없었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기획 출판을 한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고 그저 자비출판밖에 몰랐습니다. 시창작교실의 선생님이 코치해 주시는 대로 ‘시와 시학’ 출판사와 연결되어 원고를 보냈습니다. 어느 날 전화가 와서 서울로 올라오라고 해서 회현동인가 어딘가 찾아가니 책표지 안쪽의 활자 모양을 고르라고 해서 몇 가지를 보다가 결정하고 나왔습니다. 책이 나온다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다른 데는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책이 나오고 나서 자비출판이니 출판사에서 많은 책―지금은 몇 권이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을 저에게 보내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시협 주소를 보내 주고 그중에서 선택하여 책을 부치라고 했습니다. 이름 있는 시인들에게 무턱대고 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 뜨거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보낸 책들 중에서 의외로 회답이 온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성복 시인과 서정춘 시인었습니다. 따뜻한 말이 제게는 많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절대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내지 않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저도 아주 어쩌다가 모르는 사람에게서 시집이나 수필집이 오는 경우가 있지만 그 책을 읽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책은 자기가 돈 주고 산 책이 아니고서는 잘 보지 않습니다.


이번에 지인들에게 80여 권의 책을 보내고 나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역시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입니다. 새삼 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를 굳이 평하자면 ‘꽁생원’이나 ‘좁쌀영감’ 정도가 됩니다. 도량이 넓지 못하고 집에 틀어박혀 저밖에 모르는 타입이라고나 할까요.


책을 보내고 나서 상대방의 반응이 너댓쯤 되었습니다. 첫째는 책을 받고도 아무런 반응 없는 경우였습니다. 그렇게 기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책을 보내고는 이 분은 반드시 뭐라고 한마디쯤 할 것이라고 은근히 기다리는 경우입니다. 사실 이런 분에게 답이 없으면 조금은 신경이 쓰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S시인이었습니다. 제가 20년 넘게 그의 시집 열 권을 모두 분석하고 연구하였다는 사연을 적은 편지를 출간된 책에 끼워서 그에게 소포로 보냈습니다. 그 책에 그의 시가 네댓 편이 실리기도 하여 도리상 보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의 책에 나오는 사진을 보면 약간은 꺼려지기도 했습니다. 사진에서 무언가 지성적이면서, 우수에 차면서도, 시인 김수영을 닮은 듯하면서도 뭔가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느낌이 막연히 들었습니다. 약간은 저어(齟齬)하다는 생각을 들면서도 일을 저질른 셈입니다. 그에게서 아무런 답이 없자 실망이라기보다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셋째는 그저 형식적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저에게는 흥감할 뿐입니다. 넷째는 정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때는 저도 마음 속으로 기쁘고 저의 공간이 넓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번째가 있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칭찬의 말을 들었습니다. 약간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저 자신이 충만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속된 말로 ’살 맛‘ 났습니다.


사랑은 베푼다고 했습니다. 베풀고 보답을 바라면 베푼 사람이 옹졸해지고 자신이 피로해집니다. 책을 드린다고 했으면 그것으로 족하고 말아야 하는데 인격이 모자라니 자꾸 신경이 쓰였습니다. 세상 만사 ’지 하기 나름‘인데 자꾸 남 탓을 하고 있으면 자기만 꼬라지가 옹색해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강으로 흘러보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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