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만 알면 나도 스토리 텔링 전문가』

'이야기란 하나의 사실을 감정이라는 포장으로 감싼 것이다'

by 현목

-이야기란 하나의 사실을 감정이라는 포장으로 감싼 것이다.

-모든 설득력 있는 이야기에는 열정, 다시 말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거나, 심지어 갈망하게 하는 에너지가 담겨있다.

-청중의 마음 속에 이야기를 새겨 넣는 것은 열정이다. 애초에 청중의 관심을 이야기로 끌어당기는 것도 열정이다.

-이야기를 기억에 각인시키는 것은 뇌의 변연계에서 촉발된 감정이다.

-이야기를 하고 싶도록 하는 것은 바로 가슴 속의 야망이다. 그것이 있어야만 청중을 귀 기울이게 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는 ‘왜’라는 질문이 들어있어야 한다.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걸까? 왜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어야 할까?


-이것은 제리 사인펠드의 말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읽는 것과 관에 들어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을 택할 것이다.” 대중 연설은 정말 겁나는 일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하는 데는 두 가지 직접적인 이점이 있다. 첫째,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기억하기 쉬울 뿐 아니라 순간적인 강조 효과가 있다. 이 쉬운 방법을 두고 왜 사서 고생하려드는가? 둘째, 미리 준비된 연설문이나 판매 문구를 나열하는 대신 사적인 것을 공유하며 청중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발표나 연설을 시작하고 처음 60초 내에 당신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나는 내 이야기를 상대의 세상과 폭넓게 연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상대방과 내가 함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 열쇠는 바로 청자와의 동질감을 찾아내는 데 있다.

-결국 이야기는 사실을 감정으로 포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재빨리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은 이야기와 함께 사실은 물론 감정적인 정보도 보낸다. 그것은 몸짓이나 표정, 억양의 리듬이나, 고조, 음조 등을 통해 전달된다.

-가능한 한 기업의 이야기를 간단한 구절이나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해라. 해병대는 그렇게 했다. “항상 충실하라”는 미 해병대의 표어는 해병 모두가 동의하고 지키는 문장이다. 해병 대원을 하나로 모으는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나이키도 그런 문구를 가지고 있다. “한번 해 보는 거야(Just do it!)"


-하지만 영화의 흥행을 좌우하는 것은 입소문이고 그 입소문은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달려있다.

-당신의 발표를 청중의 기억에 각인시키는 열쇠는 바로 감동이다. 만족이란 결국 감정적 문제이다.

-당신의 발표에 감정을 싣고 싶다면 진심을 담아야 한다. 감정을 만들어내려 하지 말라. 그래서는 효과가 없다. 자연스럽게 감정이 흐르도록 해야 한다. 인간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가장된 감정을 집어내는 데는 더 능하다.

-기억은 부정적 감정을 편애한다.

-인간은 다 거짓말을 한다. 특히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다음은 연습해 보라.

첫째, 당신의 연설문을 큰 소리로 열정을 담아 읽어보라.

둘째, 이번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농담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라. 가장 재미있는 대목에 이르면 실컷 웃으라.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질 때까지 웃는 것이다.

셋째, 이번에는 연인에게 이야기하듯 감상적이고 부드럽게, 마치 애무를 하듯 해본다.

넷째, 심각한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듯 해야 한다. 부대 앞에서 이야기하는 장군처럼 하면 된다.

다섯째, 이번에는 속삭여보자. 막 잠에 들려고 하는 아이에게 설명하듯이 꿈속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하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을 연습했다면 머리에서 깨끗이 지워버려라. 실제로 연설이나 발표를 할 때 그 감정을 재생시키려고 애쓰지 말라. 그저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듣는 이가 절대 느껴서는 안 되는 감정이 바로 지루함이다.

-이야기의 가장 섬세하고 깨지기 쉬운 요소는 바로 그 안에 담긴 감정이다. 그래서 감정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감정이 없는 사실은 건조하고 무기력할 뿐 아니라 오래 기억되지도 않는다. 이야기에는 그 자체의 생명력이 있다.

-우리는 다 소심하다.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용기를 내라. 앞으로 나가서 진실을 말하라. 해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처음 의도한 대로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면, 이야기 속에 반드시 감정을 집어넣어야 한다.(終)


*


이 책은 오래 전에 제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내용을 요약해 놓은 것입니다. 우연히 오늘 보면서 머리에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언젠가 교회에서 새벽에 대표기도를 했습니다. 안수집사―제가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지만―로서 일년에 한번 정도 차례가 되어서 하게 됩니다. 기왕에 하는 것 성의를 다해서 기도문을 약 3분 가량의 분량으로 썼습니다. 한 달 전쯤 작성하고 때때로 가필도 하고 보완을 했습니다. 내용은 은혜, 믿음, 순종, 고난에 대한 생각을 기도문 형식으로 옮긴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내용을 설교로, 혹은 교육으로 반복하여 신자를 훈련시키지 않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하는 저 나름의 염려(?)를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검도의 기본연습에 비유하여 말했습니다. 기본연습이란 초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8단이라도 기본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은근히 내용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아내에게 기도하기 전날 아내에게 기도문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내는 내용이 좋다고 긍정적으로 인정해 주자 내 마음도 흡족했습니다. 하지만 새벽에 기도를 하고 나니 그 내용을 들은 아내의 말은 별로 신통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말로는, 글로 볼 때는 그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막상 제가 앞에 나가서 마이크로 말하는 것을 들으니 전달이 본 것만큼 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속으로는 약간의 실망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잘 알지만 주일에는 저녁 예배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거의 일반적으로 했습니다만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저녁 예배를 하는 교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은 줄 압니다. 저녁 예배의 기도를 어떤 권사가 했습니다. 제가 별로 평가를 하지 않는 스테레오 타입의 기도문이었습니다. 국가를 위해, 교회를 위해, 설교할 목사를 위해, 병든 신자들을 위해 잘 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사실 그것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 저 자신은 진작부터 의심해 왔기에 그런 내용을 녹음기처럼 읊어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폄하하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기도를 하는 권사님의 기도를 들으면서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용은 별 것이 아닌데 마음에 뭔가 울려오면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장하면 소름이 돋는다고나 할까요.


아니 제가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고 기도를 한 것과 지금 저 권사님이 기도한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좀 야비한 말이지만 저 권사님보다 더 가방 끈이 길고 저 양반보다 책을 읽었으면 더 읽었을 것이고 두 개의 기도문을 원고지에 써서 비교해 보면 우열이 뻔히 드러날 것인데 제가 기도한 것은 아무런 감동도 없고 그토록 상투적이라고 비하하던 저 기도는 마음에 무언가 호소해 온다니 그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인가.


그 두 사람의 차이는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이야기에 ‘감정’을 싣느냐 여부에 달렸던 것입니다. 저는 그저 책을 읽듯이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술술 읽어 내려갔지만 그 권사님은 별 것도 아닌 내용―미안하지만―을 가지고 거기다가 자신의 감정을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할 때 그냥 밋밋이 말한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톤을 높이고 상기되어 호소를 했습니다. 이것이 그토록 두 사람의 기도에 차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어떤 기도자는 과하여 자신이 먼저 감동하여 울먹거리고 있으면 듣는 사람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역시 이야기에 ‘감정’을 어떻게 적절하고 노련하게 싣느냐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요체가 된다는 것은 자명한 것 같습니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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