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목 May 12. 2024

내 방식의 야생화 시 감상

프롤로그

프롤로그

                   

  제 인생에서 야생화는 저의 관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2016년 9월 전까지는 말입니다. 2016년 9월에 새 직장을 얻고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심 시간이 되니 젊은 의사들은  자기들끼리 밖으로 식사하러 나갔습니다. 늙은이의 비애를 느낀 셈입니다. 혼자 병원에서 식사하고 남은 시간에 어디 갈 데가 없어 병원 밖의 논을 걸었습니다. 수확이 다 끝난 논은 휑하니 공허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눈길은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논두렁을 걷다 보니 주걱처럼 생긴 납작한 하얀 꽃잎 위에 보라색 뚜껑이 달린, 비행접시 같은 꽃이 있었습니다. 자연히 허리를 굽히고 쳐다보았습니다. 그때는 무슨 꽃인지도 몰랐습니다. 이 꽃이 제 인생에서 처음 만난 야생화였습니다. 나중에 ‘모야모‘라는 앱을 통해 그 꽃이 ’주름잎‘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산이나 들로 가거나 심지어 길을 걸을 때도 보도블럭에 풀이 있으면 눈여겨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아이폰으로 찍은 사진이 이제는 천 장이 넘습니다. 물론 중복된  사진들도 많습니다. 언젠가부터 저도 제가 찍은 사진을 가지고 ’야생화 시편‘이라는 시집 제목으로 시를 쓰리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습니다. 


  물론 2023년에 발간한 저의 시집 『실례했습니다』에 달맞이꽃, 냉이, 바람꽃, 소리쟁이, 엉겅퀴, 안개꽃, 개망초, 닭의장풀에 대해 시를 쓴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4월 초에 광대나물을 보다가 야생화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달아 봄맞이, 제비꽃, 개쑥부쟁이, 꽃마리, 애기똥풀, 주름잎, 괭이밥, 큰봄까치꽃, 이렇게 모두 현재 아홉 편을 썼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들은 야생화 시들을 어떻게 썼나 궁금해졌습니다. 예스24, 구글 등에 ’야생화 시편‘이라고 치고 찾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찾다 보니 김창진이라는 분을 알게 됐습니다. 약력을 보니 부산중고등학교 선배이고 저보다 16년 정도 연상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 친밀감이 갔습니다. 그는 서울대학 국문과를 나왔고 마지막에는 가톨릭대학 교수로 은퇴하였습니다. 2016년 8월에 작고(作故)했습니다. 


  그분의 ’들꽃 시집‘을 세 권 구입하여 어제 처음 펴보았습니다. 시집 『오늘은 자주조희풀 네가 날 물들게 한다』 의 ’책 머리‘의 마지막 문장, ’꽃은 산으로 가버렸고/내 그리움만 남은 것 같다‘라는 글을 보자 제 속으로 “이 양반, 시적 감성이 만만치 않네’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첫 작품 ‘산작약’을 비롯해 ‘덩굴닭의장풀’, ‘풍도 기행’, ‘변산바람꽃’, ‘산자고’를 읽다가 갑자기 욕심이 났습니다. 이분의 야생화 시들을 제 방식으로 감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은 감상하다가 보면 시쓰기에 대해 배우는 바가 많이 있습니다.


  시를 쓸 때나 감상할 때나 마찬가지입니다만 저나름의 원칙이 있습니다. 

  1 Three Essential Points of Things(사물의 본질 세 가지)

  2 Brainstorming(브레인스토밍)

  3 Immagination(Metaphor)(상상하기 내지 메타포 만들기)

  4 Analysis by metaphor and statement(시 행들에 대한 메타포와 진술로 분석하기)

  5 Rewrite title(제목을 다시 쓰기)


  모든 시들을 이런 공식으로 쓰는 건 아닙니다. 대개는 어떤 사물을 보고 감상이 일어나면(시적 영감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이런 식으로 쓰게 됩니다. 이런 공식에 의존하게 되는 것은 백일장처럼 주제(사물)가 주어졌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창진 교수가 야생화를 보자 거기서 사물의 본질을 찾는 포인트는 제가 보기에는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야생화의 색깔, 향기, 꽃 모양, 꽃 자체의 치환, 혹은 관념화입니다.


  첫째, 색깔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김창진 교수의 첫 번째 시 「산작약」을 보겠습니다. 산작약은 꽃이 짙은 분홍색입니다. 그는 이 색깔을 보면서 여자의 입술을 상상했습니다. 말하자면 산작약이라는 사물의 본질을 붉은 입술로 보고 상상하기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새댁의 입술의 발열/이파리의 머엉함//신열 끝의 오한/새댁의 입술/저 마름’이라는 시가 완성됩니다.


  둘째, 꽃 모양을 가지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한 예입니다. 「덩굴닭의장풀」의 꽃을 보면 학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김창진 교수는 이 꽃이라는 사물의 본질을 ‘종이학‘이라고 보고 상상하기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이학/천년의 꿈/그 비상(飛翔)/온 세상의 긴장이여‘라고 시를 지었습니다.


  셋째 치환을 한 경우를 보겠습니다. 「변산바람꽃」의 하얀 청초함을 보고 어쩌면 자신의 첫사랑이었을지도 모를 ’그녀‘로 치환을 했습니다. ’.. 환한 대낮 햇빛 속에서 그늘로/들어오고/더욱 눈부셨던 그녀의 살갗/아니아니 그녀 마음의 속살/그 화사함에 선머슴에 내가 들어오고/만났습네/아득한 그녀/변산바람꽃‘ 더 이상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외 향기라든지, 어떤 관념어로 상상하기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쓰기의 방식은 메타포만은 아닙니다. 풍자도 있고 서술도 있고 우화, 등등이 있습니다. 다만 저는 메타포를 중심으로 쓰는 것뿐입니다. 김창진 교수의 야생화 시편을 가지고 저나름으로 분석해 보고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2003년인가는 몇 년 동안 송재학 시인을 시집을 가지고 제 방식으로 분석하면서 뭔가 시에 대해 깨달으려고 노력한 적도 있습니다.


  시쓰기는 어쩌면 수학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른 과목은 어느 정도 노력에 비례해서 성적이 나오지만 수학은 노력에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수학적 머리가 동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시는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저는 오랜 세월을 지나고 나서 요즘 절실히 깨닫습니다. 선천적으로 시적 감성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늦게 깨달았지만 저의 경우는 어차피 저지른 일이었기에 이제는 주워 담을 수도 없습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사람들을 한때는 부러워도 한 적도 있습니다. 이제는 그저 못 쓰면 못 쓰는 대로 갖고 가려고 합니다. 세상 말로 마음을 비웠다고나 할까요. 속으로는 약간은 씁쓸하기는 합니다만. 



작가의 이전글 큰봄까치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