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의 여주인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나와 여주인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동물 병원에서 태어나서 천지도 모르고 우리속을 왔다갔다 했지요. 그런 나와 여주인과 내가 눈이 딱 마주친 것입니다. 나야 세상천지도 모르니 그분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그때는 구분도 못했지요. 하지만 그분이 나의 등을 쓰다듬는데 내 어미 품처럼 아늑하였습니다. 어떤 따뜻한 온기가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고나 할까요. 아무튼 나중에 그것을 알았지만 그것은 사랑이었습니다.
나를 찜해 놓고 간다고 동물병원 주인에게 말하고는 그 다음날로 나를 바로 데리고 갔습니다. 아직 어미 젖도 뗀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살 집은 생각보다는 넓었습니다. 병이 나서 다리를 절며 앓고 있는 신디에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주인의 마음은 나에게로 돌아섰다는 걸 느꼈습니다만 나도 그걸 어떻게 내색이야 할 수 있겠습니까. 분위기가 분위기인데 조신하게 있어야지요.
신디는 어느 날 도저히 안 되겠는지 안락사를 시켰다고 들었습니다. 주인님은 차마 사랑하는 개를 어디 쓰레기로 버릴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그날 캄캄한 새벽에 주인 부부는 배낭 속에 죽은 신디를 종이로 싸서 메고 나갔습니다. 그때 손에는 삽 같은 것을 쥐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자 그들은 돌아왔는데 배낭은 비어 있었습니다. 근처 산에다가 묻어주었는데 이제는 눈을 고이 감고 잠이 들었을 것이라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걸 보았습니다. 내가 그다지 인정머리 없는 집으로 온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자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 집은 분업이 잘 되어 있었습니다. 평소에 밥을 주거나 오줌과 똥을 치우는 일은 남자 주인이 맡아서 하더군요. 대신에 여자 주인은 나를 병원에 데리고 가든가, 미용을 하든가, 일주일에 한번 목욕하는 일은 전담으로 하더군요. 두 사람은 잘 협업을 하기는 한데 가끔 남자 주인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이놈들의 종인가 하면서 그랬습니다. 하긴 남자 주인 쪽에서 보면 그런 불평도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속 좁게 우리도 듣고 있는데 그렇게까지 속내를 드러낼 것까지 있나 싶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남자 주인한테는 그다지 관심도 없습니다. 그저 구색으로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반갑게 대하기는 합니다만 말입니다. 우리 여자 주인의 품은 어떻게 그렇게 따뜻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품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꼭 껴안겨 영원한 시간이 흘렀으면 하지요. 여자 주인은 내가 사람의 얼굴을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정말 코는 명품인 것 같아요. 나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온갖 사람을 다 보지만 우리 여주인만한 사람 본 적이 없다니까요. 코라는 게 얼굴 한가운데 있어서 완전히 얼굴을 결정짓는 핵심 포인트라니까요. 코가 길어도 안 되고 짧으면 경망스럽스럽습니다. 콧등이 무작스럽게 높아도 안 되고 그렇다고 납작코는 더더구나 재미가 없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콧구멍이 서는 각도입니다. 그것이 너무 퍽 퍼지고 누워도 안 되고 너무 각을 세우고 서도 미감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글쎄 한 사십오도는 될까요. 그런데 여기서 빼놓고 갈 수 없는 것이 콧구멍 모양입니다. 그것이 동그래도 별 볼 일 없고 네모나거나 세모나도 안 됩니다. 제일 아름다운 것은 키드니 세입(kidney shape)입니다. 우리 여주인의 얼굴의 다른 부품도 빠지지는 않지만 내가 보기에는 코만은 정말 미스코리아에 나가도 경쟁력이 상당히 있으리라고 장담합니다.
내가 주인에게 아첨하는 소리 같지만 진심이 그렇습니다. 모르긴 해도 우리집 남자 주인이 그 코에 홀랑 반해서 결혼했다고 말한다고 해도 과히 틀렸다고는 못할 걸요, 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