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나도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집에 있으면 들리는 게 많습니다. 삐꾸가 냐옹 거리는 소리도 있습니다. 걔는 요즘 와서는 방으로 나오고 싶은지 베란다 문을 긁어대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주인 여자와 주인 남자가 대화하는 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귀를 막지 않는 한 내 귀로 밀려들어 옵니다. 그러니 낸들 그걸 막아낼 재주가 있는 게 아니지요.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나를 못살게 하는 것은 텔레비전 소리입니다. 무슨 상자에서 그림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 소리, 차 소리, 바람 소리…. 하여튼 온갖 소리가 나옵니다. 그림이 내게는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내게는 그저 다 히뿌옇게 보입니다.
주인 여자는 드라마광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시간만 나면 드라마를 보는 것더라구요. 남자 주인도 덩달아 보는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시간 시간 챙기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텔레비전을 하나를 켜고 같이 사이좋게 나란히 앉든지 누워서 보면 전기료도 덜 들고 보기에도 좋으련만 꼭 따로따로 보니까 내가 보기에도 이상하였습니다만 그렇다고 부부싸움한 것은 아닙니다.
요며칠 사이에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텔레비전마다 나오는 사람이 심각하게 말하였고 그것을 보는 주인님 부부도 말없이 지켜보고는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데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습니다. 내 귀에는 세월호니 뭐니 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까만 옷을 입고 영정 앞에서 하얀 국화꽃을 바치고는 우는 사람도 보였습니다. 개 주제에 어떻게 사람이 보는 것처럼 아느냐고요. 내가 언감생심 사람의 수준일 수는 없지요. 단지 나는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지 잘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텔레비전에 보니까 웬 커다란 배가 뒤집어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나의 지력으로는 그림들이 잘 연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남자 주인이 과묵하고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것 같지만 딱히 그런 것만 같지는 않습니다. 어떤 때는 흥분을 하고는 혼자서 뭐라뭐라 하면 여자 주인님은 대개는 맞장구를 치는 편입니다. 물론 서로 생각이 달라서 부부싸움 정도는 아니지만 언쟁을 높이는 걸 안 본 건 아니지만 대개는 서로 꿍짝이 맞대요. 그러니 부부인 줄 모르겠습니다만.
일요일날 남자 주인이 어딘가 갔다 오더니 얼굴이 벌개가지고 들어왔습니다. 나는 달리기라도 하고 오는가 했지만 그런 적은 거의 없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아닌가 다를까 몇 시간 뒤에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 주인이 남자 주인보고 뭐라뭐라 따발총으로 핀잔을 주대요. 그러니 남자 주인은 내가 보니 변명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 귀에는 당신이 뭐가 잘났다고 튀냐고 핀잔을 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남자 주인은 내가 뭐 못할 말을 했느냐고 대들었습니다.
나는 나의 집에 들어가 고개를 푹 쳐박고 무슨 말을 하는가 예의 주시했습니다. 그러나 잘 알아듣지는 못하겠더라구요. 단지 내게 들어오는 말은 슬픔과 분노를 그렇게 절제 없이 풀어대서는 안 된다는 말 같았습니다. 있는 감정을 다 쏟아놓는 게 다 옳은 것은 아니라고 하대요. 그러고 보니 우리 남자 주인은 일본을 좋아해서 일본과 한국을 잘 비교를 했습니다. 일본 가수는 고음에 올라가면 더 못 올라가게 절제를 하는데 한국 가수는 고음에 올라가서 마구 질러댄다고 합니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다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의 감성이 그렇게 다르다고 합니다.
당신이 평소에 그렇게 좋아하던 일본 사람 흉내도 왜 못내냐고 여자 주인이 핀잔을 준 겁니다. 슬픔과 분노에다가 불을 질러대는 것보다는 그것을 안으로 안고 가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말하니까 남자 주인도 동의를 하는 눈치였습니다. 나야 사람들 세상에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긴 하지만 하여튼 뭔가 절박하고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야 그러건 말건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주인님들이 신경을 쓰니 나도 자연히 신경이 쓰이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