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 10시반에서 12시반까지 영화 「패터슨」을 봤습니다. 난생 처음 노트북에서 영화를 1,500원 주고 봤습니다. 그것도 낮에 병원 직원의 도움을 받은 겁니다.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진은영 교수의 ‘시인의 사회적 위치와 기능이’란 강연을 네이버 열린 연단에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정말 더럽게 재미가 없습니다. 무슨 사건도, 긴장도 없고 그저 그랬습니다. 이른바 도입-전개-위기-절정-대단원의 구성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무명시인으로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뉴저지주의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의 얘기입니다. 그는 4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데 사랑하는 아내와 애완견 마빈과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배우치고는 너무 평범한 얼굴입니다. 아무런 특징이 없습니다. 패터슨은 말이 별로 없습니다. 버스 운전을 하면서 승객들의 얘기를 항상 귀담아 듣습니다. 그의 눈빛을 보면 언제나 무언가 생각하고 관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패터슨은 아침 6시경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버스 회사에 출근합니다. 버스 출발 전에 그의 비밀 노트에 시를 몇 줄 씁니다. 버스 운전하고 나서 점심 시간에는 폭포 앞 벤치에 앉아 싸가지고 온 점심 먹고 또 시를 몇 줄 적습니다. 퇴근하고 마빈과 산책을 하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잔을 합니다. 돌아와 자기 집 지하 골방 서재에서 시를 씁니다. 그의 시의 소재는 거의 다 일상이고 그의 시의 롤모델은 패터슨 시에서 살면서 시를 쓴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소아과 의사)입니다.
이 영화에서 엄청난 사건이 일어납니다. 패터슨이 무심코 소파 위에 비밀 노트를 얹어놓고 아내와 밖에 나가 저녁 먹고 영화 한편 보고 돌아오니 마빈이 그 비밀 노트를 물어뜯어 산산조각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여기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패터슨은 ‘조금은’ 실망하여 그가 잘 가던 폭포 앞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습니다. 그때 관광 온 일본 시인과 우연히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둘 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서로 마음이 통하게 됩니다. 그 일본 시인도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때문에 이 패터슨 시로 관광을 오게 된 겁니다. 일본 시인은 떠나면서 빈노트 하나를 패터슨에게 선물로 줍니다. 패터슨은 그 노트를 잡고 멀뚱히 있다가 ‘The Line(한 소절)’이란 시를 써 내려갑니다.
‘흘러 간 노래가 있다/할아버지가 흥얼거리시던 노래/이런 질문이 나온다,/“아니면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같은 노래에/같은 질문이 나온다/노새와 돼지로/단어만 바꾼/그런데 종종 내 머릿속에/맴도는 소절은 물고기 부분이다/딱 그 한 소절만/“차라리 물고기가 될래?”/마치 노래의 나머지는/노래 속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
패터슨은 월요일이 되어 또 아침 6시경이 일어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이 영화는 2016년 짐 자무쉬가 만들었는데 그는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장시 『패터슨』을 오마주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진은영 교수는 열린 연단 강연에서 여러 가지로 말하지만 제 생각에는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 같습니다. 하나는 모든 시인(예술가)이 탁월성, 결과물을 목표로 하여 시를 씁니다. 이것은 한나 아렌트는 인간 활동 중에서 ’작업(Work)‘이라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어떤 시인 (예술가)은 탁월성, 결과물이 아니라 시를 쓰는 것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위(Action)‘라 했습니다. 아렌트는 이 ’행위‘를 더 평가했습니다. 그렇다고 이런 ’행위‘만이 올바른 시 쓰기는 아닙니다. 프랑스 미학자 랑시에르는 이 둘은 서로 대립하고 긴장하는 관계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기충족적이고 탁월성과 결과물에 대해 해방된 자가 된다고 진은영 교수는 말합니다.
제가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또 재미있다고 느낀 것은 이 영화가 저와 같은 무명시인, 삼류시인에게 열등감을 없애주고 시인으로서의 존재의 근거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패터슨은 버스 운전사를 은퇴할 때까지 같은 일상을 반복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은퇴 후에는 폭포 앞에서, 지하 골방 서재에서 시를 쓰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잔을 먹었을 것입니다. 자비로 시집을 한두 권 출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서(追書): 패터슨이 영화 「패터슨」에서 쓴 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시를 보면 시적 기교가 빼어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진술 위주의 시이며 패터슨의 삶이 시이므로 그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난해하지도 않아 바로 그대로 마음에 와닿습니다.
(처음 제목도 없이 버스 운전석에 앉아서 쓴다)
우리 집에는 성냥이 많다
언제나 손 닿는 곳에 둔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제품은 오하이오 블루 팁,
전에는 다이아몬드 제품을 좋아했지만
(배차 요원이 와서 버스는 떠난다. 운전하면서 머릿속에서, 폭포 앞에서 쓴다)
우리 집에는 성냥이 많다
언제나 손 닿는 곳에 둔다
요즘 우리가 좋아하는 제품은 오하이오 블루 팁,
전에는 다이아몬드 제품을 좋아했지만
그건 우리가 오하이오 블루 팁 성냥을
발견하기 전이었다
훌륭하게 꾸민, 견고한
작은 상자들로
짙고 옅은 푸른색과
흰색 로고는
확성기 모양으로 쓰여 있어,
마치 세상에 더 크게
외치려는 것 같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
4cm의 매끈한
소나무 막대는
머리에 거친 포도색 모자를 쓰고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오래도록 불꽃으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줄지 몰라요
난생 처음,
(걸어서 집으로 돌아와서 하룻밤 자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서 걸어서 출근하면서, 운전석에 앉아서 쓴다)
”여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냥이 있어요
차분하고도 격렬하게
오래도록 불꽃으로 타오를 준비를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담배에
불을 붙여줄지 몰라요
난생처음이자,
다시 없는 불꽃을
이 모든 걸 당신께 드립니다“
그 불꽃은 당신이 내게 주었던 것
난 담배가 되고 당신은 성냥 되어
혹은 나 성냥 되고 당신은 담배 되어
키스로 낮게 타올라 천국을 향해 타오르리라
(지하 서재에서 쓴다)
어린 아이 때는
세 개의 차원을 배운다
높이와 넓이, 깊이
그것은 신발 상자와 같다
좀 더 자라면
네 번째 차원이 있다고 듣는다
시간
흐음
이런 말들도 한다
5차원, 6차원, 7차원이 있다고...(아내가 와서 중지한다)
(폭포 앞에서---버스 운전석에서 쓴다)
어린 아이 때는
세 개의 차원을 배운다
높이와 넓이, 깊이
그것은 신발 상자와 같다
좀 더 자라면
네 번째 차원이 있다고 듣는다
시간
흐음
이런 말들도 한다
5차원, 6차원, 7차원이 있다고...
난 일을 마치면
바에서 맥주를 마신다
잔을 내려다 보면
기분이 좋다
(버스 운전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 돌아오면서 쓴다)
난 집 안에 있다
바깥 날씨가 좋다, 포근하니
차가운 눈 위의 햇살
봄의 첫날
혹은 겨울의 마지막
나의 다리는 계단을 뛰어올라
문밖을 달린다,
나의 상반신은
여기서 시를 쓰고 있다
(폭포 앞에서 쓴다)
내가 당신보다 일찍 깼을 때, 당신이
날 향해 누워,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늘어뜨린 머리칼을 보면
나는 용기를 내
당신을 들여다 봐
벅찬 사랑과 두려운 마음으로
행여나
당신이 눈을 떠
화들짝 놀랄까 봐
하지만 놀란 마음이 진정되면
알게 되겠지
내 가슴과 머리가
얼마나
당신으로 터질 것 같은지
터질 듯한 말들은
내 안에 갇혀 있어
마치 바깥 세상을 보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는
태어나지 않은 아이처럼
이제 벽에 난 창으로
옅은 빛이
투명하게 젖은 새벽빛이
들어 와
난 구두끈을 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커피를 내려
(출발 전 버스 운전석에서 쓴다)
나는 지나간다
수많은 분자가
옆으로 비켜나
나를 위해 길을 터주면
길옆으로
더 많은 분자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와이퍼 날이
끼익 대기 시작한다
나는 멈춰 선다
(버스가 출발하고 머릿속에서 시를 쓴다)
나는 지나간다
수많은 분자가
옆으로 비켜나
나를 위해 길을 터주면
길옆으로
더 많은 분자가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와이퍼 날이
끼익 대기 시작한다
나는 멈춰 선다
모퉁이에는
노란 비옷을 입은 한 소년이
엄마 손을 잡고 있다
(폭포 앞에서---지하 서재에서 쓴다)
귀여운 내 사랑
난 이따금
다른 여자들을 떠올리곤 해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혹여라도
당신이 날 떠난다면
난 심장을 뜯어내어서는
다시 되돌려 놓지 않겠어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없을 거야
참 쑥스럽군
(폭포 앞에서 쓴다)
흘러 간 노래가 있다
할아버지가 흥얼거리시던 노래
이런 질문이 나온다,
“아니면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
같은 노래에
같은 질문이 나온다
노새와 돼지로
단어만 바꾼
그런데 종종 내 머릿속에
맴도는 소절은 물고기 부분이다
딱 그 한 소절만
“차라리 물고기가 될래?”
마치 노래의 나머지는
노래 속에 없어도 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