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잔한 간식 하나에도 앉아! 기다려! 후에야먹어! 비로소 제것이 되었었다.생전 처음 겪는 순식간의 횡재에 놈은 당황했다.
집에서라면 씹지도 않고 꿀떡삼킬 텐데... 웬일인지내려놓고 나를 올려다본다.
"허.. 요놈 봐라"
비숑프레제 견주인 듯한 어르신은 간식을 참아 내는 작은 강아지가 신기하신 모양이다.
교육을 잘 시켰다는 뿌듯함에 어깨가절로 올라간다. 이런 놈인 줄 몰라봤다. 똑같은 시간에 주는 간식임에도 깨작대는 냥이몫을 늘 탐낸다. 제 것은 씹지도 않고 삼키거나 여기저기 숨겨놓고 다른 밥그릇을 훝던 녀석이다. 그런데 통째로 굴러들어 온 간식 앞에서 참을인(忍)이라니... 놀랍구나 놀라와!
콩이(어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간 뒤 빈이와의 아침산책이 시작되었다. 속보로 땀나도록 걷던 곳인데 이제는 빈이와 얼쩡대다온다.
집에서 입구까지 300미터...구름다리 지나면 본격적인 산책로가 시작된다. 그 시작점에는 벤치가 있다.오른쪽 경의선 철로를 끼고 탄현동에서 시작하면 일산동을 거쳐 죽 이어지는 둘레길이다.봄이 되면 벚꽃으로 흐드러진다.
빈이와의 동행은 녀석의템포에 따라 걷거나 서거나 뛴다. 리드줄을 내 생각대로 당기면 꿈쩍을 안 하는 녀석이라 하고 싶은 데로 가자는 데로 가 준다.
첫날, 비숑할아버지의 간식을 거부할 만큼 교육 잘된? 빈이를 거느린 산책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멀리 벤치가 보이고 비숑이와 할아버지가 보였다.아마도 그 시간엔 늘 그 곳에 계시는 모양이다. 전 날의 일도 있던 터라 못 본 척 옆길로 셀 생각이었다. 그러나 빈이놈의 돌발행동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비숑이가 눈에 들어옴과 동시에벤치를 향해나를 끌어대고 있었다.얼결에 따라붙었다. 할아버지 무릎아래서 간절한 꼬리를 주체 못 하고 흔들어댄다. 간식 주떼요!!! 온몸이 좌우로 마구마구 흔들린다.
"요놈 봐라. 할부지가 까까줄까? 옛다!"
안 주셔도 돼요.어제와 같은 거절의 뜻을 비춰본다. 역시 들은 척도안 한다.입에 물린 육포는 갈기갈기 찢겨져 꿀떡꿀떡 급하게 넘어간다.아그작 쩝쩝대는 소리가 허공을 가른다. 노인도 나도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볼 뿐 말이 없다. 각자 다른 생각으로... 남편이나 줄법한 큰 덩어리를 해치우고는혹시나갸웃하며 다시올려다본다.
"또 달라고? 허허..."
냅따 안아 올렸다. 요놈의 염치는 항상 부재중이다. "감사합니다." 서둘러 벗어 나는데 녀석의 고개가 자석에라도 이끌리듯벤치 쪽으로 꺾여진다. 시키야!!! 아무나 주는 걸 막 먹어대면 어떡해! 쓸모없는 나무램이 허허롭다.내일부터는 간식을 챙겨 와야겠다.
그다음 날,노인은 빈이를 보자마자힙색 안을 또 뒤적뒤적한다. 빈이 뿐 아니다.산책길 만나는 강쥐들은 노인에게 무료급식 당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안 주셔도 돼요. 저도 간식 챙겨 왔거든요." 또묵살당한다.
"여기 여기... 맛난 거..." 오늘은 기다란 북어포가 입에 물려진다.
하... 싫다는데 굳이...
노인을 향한 불쾌감은 아침나절의 상쾌감을 반쪽내고 있었다. 내 말은 씹히고 북어포는 빈이이빨에 씹히고 있다. 만나지 않아야겠다
비숑할아버지는 큰마을 후문에서 시작하고 중간설치된 운동기구에서 비숑이를 묶어 두고 운동을 한다. 그리고 다시 걸어 끝지점(벤치)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리고 돌아간다. 비슷한 시간대라면반드시 마주친다. 그러나 나도 그 시간에 산책을 해야만 한다.다른 곳을 선택하려면 횡단보도를 여러번 건너야 한다.
노인과는 완전 반대방향이다. 우리의 시작점이 벤치라면 노인은 반환점이 된다. 잘만 계획하면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다.
산책로는 세 가지 갈래길이고 올 때도 같다. 세 가지 길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은 삼분의 일, 올 때도 삼분의 일 도합 구분의 일의 확률로 만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멀리 할아버지실루엣이 보이면 일단 다른길로 세자.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상관없어 보인다.사람속만 복잡하다.
결국, 뻔한 산책길에서 비슷한 시간에는 마주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말았다. 서둘러서 돌아오다 만나고, 천천히 진입하다가도 마주친다. 어르신은 느릿느릿, 비숑이도 땅에 코를 박고 천천히...나만 속도를 늘렸다 줄였다 종종거렸음에도 이상하게 만나졌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혼자 지랄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 시간대 만남은 비숑이 뿐 아니었다. 달봉이도 가지도 만났다. 초코엄마랑도 인사를 했다. 혼자 서둘러 걷던 만보가 아니라 빈이와 함께하는 세상은느림보로여유롭게 흘러간다.
"이름이 뭐예요?" "흰둥이... 하야니까 흰둥이..."
다른 견주들이 흰둥아 하더니 진짜 이름이 흰둥이였구나. 혼자 피식 웃는데...
"온몸을 밀었어요. " 얼굴 빼고 싹 다 밀어 떨고있는 흰둥이가짠하다. 친절하고 나긋하며 젊잖은 어투다. 웃는 모습도 다정하다. 이런 분이 내 말은 왜 그렇게 통째로 씹어버리셨을까?
어찌 보면 나는 그 길 안에서 견주로는 신입이다. 매일의 산책길에서 만나서 다져지는 인연 속에 어색하게 합류해서는갑이니 을이니 했나보다. 부질없이...
"안 주셔도 돼요." 옆길에서들리는 소리다.
앗!
서둘러 그 곳을 벗어나본다. 빈이 눈에 뜨이면 안된다. 눈치채기전에...은밀하게 리드줄을 당겼다.
여전히 마주칠 때마다 열리는 힙색이 불편하다. 그러나 흘러가는 데로 가끔 피하고 돌아가고 또 만나지면 그런가 보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