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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고양이 May 13. 2024

전생에 나라를 구한 여자로 살고 싶다

오이지

이거 몇 개 들었어요?

계산대에 오이망을 올려놓는데 지나가던 주부가 물어본다.

"50개요"

우물대는 나 대신 남편이 답을 했다.

"너는 몰랐지?"

막연하게 100개 정도려니 했었는데 침묵하길 잘했다.


요맘때 어머님은 오이지를 담으셨다.  200개 정도 담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 50개 정도가 통에 담겨 우리 몫으로 전해졌다.

직접 가지러 가기도 하고 아파트 현관 앞에 두고 가시기도 했었다.

어머님 것은 많이 짰다.  그래서 얇게 썰어서는 물에 담가 두었다가  꼭 짜서 무치곤 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아시고는 맛난 것 다 빠져

뭔 맛이냐며 아쉬워하셨다.


지금은 남편이 담는다.  몇 번의 시도에서 물러지기도 하고 너무 짜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 후 여기저기 검색하고 시도를 거듭하더니 가장 최상의 방법을 찾아낸 것 같다.


우선 남편의 오이지는 짜지 않다.  물기만 쏙 빠져 쪼그래진다. 물기가 빠지고 잘 익으면 통 안의 짠물을 버리고 오이만 남겨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여름 내내 즐길 수 있다.


몇 개를 꺼내 얇게 썰어 삼베천주머니에 담아  꼭 짜준다.

마늘 파 고춧가루 깨소금 참기름으로 조물조물 버무리면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올 법한 짭조름한 밥도둑이 완성된다. 얇게 썰어 맹물에 우려 떠먹기도 한다. 어머님은 밥을 말아먹는 것을 좋아하셨지만 나는 꼬들하게 무치는 것이 더 좋다.


삼투압으로 물기가 빠진 오이는 꼬들꼬들 아싹 씹는 맛이 좋고 재미있다.

"어떻게 이렇게 안 짜고 맛 날 수가 있지?"

감탄할라치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내며 안 가르쳐 준단다.

애당초 먹는 것에만 진심인터라 사실 궁금하지 않다.

올해 오이지는 두 번 담갔다.  지난주 마트에서 행사상품으로 저렴하게 득템 한 것이 담고 보니 크기가 작은 것들이라 양도 작았다.  몇 번이면 거덜 날거라 대비가 필요했다.


"힘들지 않아?"

"까짓게 뭐 일 축에나 드나?"

주방에서 잠깐 부스럭 대더니 벌써 완성!!

좋은 크기라며 만족한다.

딸아이들은 아빠가 무쳐주는 오이지를 좋아한다.  물론 나도 잘 무친다.  그러나 남편이 해 주는 것이 더 맛나다.  뭐든 남이 해 주는 것이 맛나다.

그런데 남편은 자기가 한 것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다행이다.

요리 자부심 충만한 남편이 힘을 잃지 않도록 옆에서 맛나게 먹고 좋아해 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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