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비닐 하나보다 못한 나라서
엄마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다. 집에만 있는다. 이를 대개 전업주부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가사에 전념하지 않는다. 청소를 하지 않는 것이 그렇다. 엄마는 대기업의 무선 청소기를 샀다. 구입한 지 2년이 되어서도 그 청소기를 엄마가 쓰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나만이 그 청소기를 사용했다. 그만큼 집의 청결에 무심했다.
양치질을 하는데 세면대 앞쪽, 거울 아랫부분이 치약, 로션, 각종 크림들이 놓여 있어서 어수선했다. 곰팡이가 바닥, 줄눈 부분, 세면대와 벽 사이, 화장품튜브 등 이곳저곳 피어 있었다.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깨끗이 치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워시, 클렌징폼, 바디로션, 곰팡이 제거제 등 다 쓴 통들이 여럿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재활용하기 위해서 한데 모아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일회용 위생백 투명 비닐봉지 한 개를 꺼내 가져와 그 안에 담았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곰팡이를 닦았다. 세면대 앞만 하려던 청소를 막상 시작하니 변기도 닦게 되었고 배수구 뚜껑도 열게 되었다. 배수구는 린스찌꺼기와 머리카락 등으로 흉측하게 더러웠다. 이곳저곳을 닦고, 닦고, 닦으며 물을 뿌렸다. 더러움이 벗겨지고 많은 찌꺼기가 씻겨 내려갔다.
청소를 하면서 엄마 생각을 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에 대한 불만이 가득 차올랐다. 그러다 청소를 하면 할수록 깨끗함이 눈에 들어찼다. 엄마가 욕실에 들어서서 느낄 기분을 상상했다. 쾌적하고 개운하지 않을까. 좋아하겠지.
시간을 확인하니 대청소를 하기엔 늦은 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까지만 하고 마무리했다. 온갖 찌꺼기와 머리카락 더미를 아랑곳하지 않고 만졌던 손을 깨끗이 씻었다. 달라진 욕실만큼이나 내가 개운해져서 욕실을 나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욕실 쪽에서 불쾌함이 잔뜩 묻어난 언성이 들려왔다. 나는 놀라서 욕실로 갔다. 엄마는 잔뜩 찡그리고 구긴 얼굴로 내가 문 앞에 놓은 플라스틱 통들을 담아둔 비닐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
"비닐 많은데 새걸 갖다 썼네 XX."
일회용 비닐 새것을 쓴것에 대한 불만. 그 사실을 알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고 지금 고작 비닐 하나 가지고 화를 내는 거냐고 소리를 질렀다. 너무 화가 나서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밀려오는 서러움에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그 비닐은 산 것도 아니고 은행에서 받아온 증정품이었던 것, 한 번 쓰이면 버려지는 일회용인 것, 고작 한 개였던 것, 그리고 엄마가 느낄 기분을 감히 상상했던 것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작은 비닐 하나에 내가 바랐던 모든 것들이 쓰레기가 되어 함께 버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