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_숨고 숨겨야 했다
어릴 때는 소풍이 잦았던 것 같다.
김밥을 싸가야 했지만 우리 집에서 어린아이의 점심을 위해 김밥을 싸주는 어른은 없었다.
엄마는 소풍날마다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주셨다.
집 근처 아침 일찍 문을 여는 김밥집은 커다란 김밥을 파는 곳 한 군데였다.
어린아이의 입에는 부담스러운 크기였다.
커다란 김밥은 하얀색 스티로폼 곽과 검은색 비닐봉지에 담겼다.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노란색 단무지와 나무젓가락도 함께였다.
부담스러운 크기의 김밥에,
불쾌하게 부스럭거리는 스티로폼 곽에,
아무렇게 움직이는 새까만 비닐봉지에,
샛노랗게 질린 몇 조각의 단무지에,
제멋대로 뜯어지는 나무젓가락이었다.
아이들 가방에서는 형형색색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 새겨진 '아이'와 어울리는 도시락이 튀어나왔다.
뚜껑을 열면 도시락의 외관처럼 앙증맞은 과일들과 조그마한 김밥들이 가지런했다.
누구 것이 더 예쁜지, 맛있을지를 자랑하고 뽐냈다.
그저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사랑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러나, 나는 없었다.
알록달록한 세상에서 나만이 어둡고 창백한 비닐봉지와 스티로폼을 꺼낼 수 없었다.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새겨져있지 않은 죽어버린 나무 젓가락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래서, 가방 속에서 꺼내지 않았다.
누구도 커다란 김밥을 볼 수 없게 가방 속에 두었다.
지퍼 사이로 손을 넣어 김밥을 집었다.
가방에서 무언갈 찾는 척하면서 김밥을 먹었다.
오랫동안 씹어야 할 크기에도 불구하고
몇 번 씹지도 않고 삼켜댔다.
그마저도 하고 싶지 않았을 때는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한 척했다.
멀뚱히 앉아있는 내게 반 아이들이 김밥을 나눠주었다.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김밥은 너무 맛있어서 나는 슬펐다.
작은 김밥을 씹으며 슬픔을 삼켜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