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눈물샘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는다.
예전부터 슬프지 않아도 열려버리는 눈물샘 때문에 여간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회사생활이 그랬다. 회사에서 누가 볼세라 다급하게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닦아내곤 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걸 진정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멎은 것 같으면 아무 일도 없단 듯이 자리로 돌아갔다.
하루는 회사동료들이 나에게 눈물이 없다고 했다. 사람이 세다면서, 웬만해서는 진짜 안 울 것 같다고 했다. 화장실 칸 하나를 혼자 차지한 채 몇 번이고 휴지를 뜯어내서 닦았던 터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곤 바로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르는구나, 다행이다..'
우는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아빠가 그랬다. 혼이 날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을 보이기만 하면 아빠는 더욱 성을 냈다. 벌게진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왜 우냐? 안 그치냐?"
아빠는 눈물을 혐오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그치라고 한다고 그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어할 수 없이 제멋대로 흐르는 건데, 이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숨이 넘어갈 듯 가쁘게 쉬어졌다. 나는 닦아도 닦아도 샘솟는 것을 열심히 양손으로 훔쳐내면서 겨우 말해야 했다.
"나도(히익) 울고(히익) 싶지(히익) 않다고(히익)."
아빠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이 '눈물'에 냉혹했다. 사고나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슬픈 상황이 아니고서는 뭐 그런 거 가지고 질질 짜냐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피부에 바늘을 찌르면 피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마음을 찌르는 말로 눈물이 나는 건 병신이었다. 그럼에도, 눈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작아지듯 나의 눈물은 하나의 반사작용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여덟 살에 처음으로 벌벌 떨리는 공포를 느끼고 체벌을 받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고장난 듯이 하염없이 쏟아져나왔다. 그 뒤로 질책하는 말을 듣거나 혹은 약간의 억울함을 느꼈을 때, 그도 아니면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고장난 샘이 말썽을 일으켰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미치도록 곤란한 현상이었다. 슬픈 상황이 아니라 진지한 상황에서 반성의 기분을 느끼기만 해도 눈이 뜨거워지면서 물이 차오르고 그렁그렁하다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다. 단순히 몇 마디 한 거 가지고 다 큰 어른이 울어버린다는 건 곤욕스러움 그 자체였다.
최근 고객에게 받은 요청이 있었다. 상사에게 전달을 하며 문제가 생기면 직접 연락을 하시겠지 싶어 가볍게 넘긴 일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내가 생각했던 나올 수 있는 상황 중에서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진행된 게 없는데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고객은 잔뜩 화가 나서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진짜 어이가 없네, 뭐 이래, 짜증나게 하네 ..."
나는 조용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자 곧바로 눈앞이 뿌얘지면서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미칠 것 같다. 나는 몸을 살짝 틀고 구조물에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해야 해.' 마음을 먹고 다시 고객을 바라봤을 땐, 이미 등을 보인채 멀어지고 있었다. 한동안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지긋지긋한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야 했다.
"너 지금 우냐?"
"뭘 잘했다고 울어?"
"운다고 해결이 되냐?"
"하, 내가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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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하게도 끝끝내 흘러내리는 눈물은 나를 수치스럽게 한다.
나도, 나도 울고 싶지 않다. 울고 싶지 않아.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