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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모나 Nov 25. 2024

정말로 울고 싶지 않아

고장난 눈물샘

슬퍼서 눈물을 흘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난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는다.


예전부터 슬프지 않아도 열려버리는 눈물샘 때문에 여간 곤란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나 회사생활이 그랬다. 회사에서 누가 볼세라 다급하게 화장실에 숨어 눈물을 닦아내곤 했다. 한번 흐르기 시작한 걸 진정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멎은 것 같으면 아무 일도 없단 듯이 자리로 돌아갔다.


하루는 회사동료들이 나에게 눈물이 없다고 했다. 사람이 세다면서, 웬만해서는 진짜 안 울 것 같다고 했다. 화장실 칸 하나를 혼자 차지한 채 몇 번이고 휴지를 뜯어내서 닦았던 터라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곤 바로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모르는구나, 다행이다..'


우는 행위에 대해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아빠가 그랬다. 혼이 날 때마다 나는 눈물을 흘렸는데, 눈물을 보이기만 하면 아빠는 더욱 성을 냈다. 벌게진 얼굴로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왜 우냐? 안 그치냐?"

아빠는 눈물을 혐오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그치라고 한다고 그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제어할 수 없이 제멋대로 흐르는 건데, 이에 대해서 화를 내는 것이 너무 억울해서 숨이 넘어갈 듯 가쁘게 쉬어졌다. 나는 닦아도 닦아도 샘솟는 것을 열심히 양손으로 훔쳐내면서 겨우 말해야 했다.

"나도(히익) 울고(히익) 싶지(히익) 않다고(히익)."


아빠를 포함한 대개의 사람들이 '눈물'에 냉혹했다. 사고나 죽음과 같은 극단적인 슬픈 상황이 아니고서는 뭐 그런 거 가지고 질질 짜냐는 경멸의 눈빛을 보냈다. 피부에 바늘을 찌르면 피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마음을 찌르는 말로 눈물이 나는 건 병신이었다. 그럼에도, 눈에 빛을 비추면 동공이 작아지듯 나의 눈물은 하나의 반사작용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여덟 살에 처음으로 벌벌 떨리는 공포를 느끼고 체벌을 받았을 때부터였던 것 같다.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고장난 듯이 하염없이 쏟아져나왔다. 그 뒤로 질책하는 말을 듣거나 혹은 약간의 억울함을 느꼈을 때, 그도 아니면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이유로 고장난 샘이 말썽을 일으켰다.


이것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미치도록 곤란한 현상이었다. 슬픈 상황이 아니라 진지한 상황에서 반성의 기분을 느끼기만 해도 눈이 뜨거워지면서 물이 차오르고 그렁그렁하다가 한 방울씩 떨어지더니 계속 흘러내리는 것이다. 단순히 몇 마디 한 거 가지고 다 큰 어른이 울어버린다는 건 곤욕스러움 그 자체였다.


최근 고객에게 받은 요청이 있었다. 상사에게 전달을 하며 문제가 생기면 직접 연락을 하시겠지 싶어 가볍게 넘긴 일이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내가 생각했던 나올 수 있는 상황 중에서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진행된 게 없는데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고객은 잔뜩 화가 나서 격양된 목소리로 나를 계속해서 쏘아붙였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요, 진짜 어이가 없네, 뭐 이래, 짜증나게 하네 ..."

나는 조용히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자 곧바로 눈앞이 뿌얘지면서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미칠 것 같다. 나는 몸을 살짝 틀고 구조물에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해야 해.' 마음을 먹고 다시 고객을 바라봤을 땐, 이미 등을 보인채 멀어지고 있었다. 한동안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지긋지긋한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야 했다.



"너 지금 우냐?"

"뭘 잘했다고 울어?"

"운다고 해결이 되냐?"

"하, 내가 울고 싶다."

.

.

지독하게도 끝끝내 흘러내리는 눈물은 나를 수치스럽게 한다.

나도, 나도 울고 싶지 않다. 울고 싶지 않아.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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