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도 무시하는
나는 특별히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얼굴에 왜소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시기받을 정도로 잘하지도, 무시받을 정도로 못하지도 않았다. 이런 평범함은 존재감을 지워주고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다.
같이 노는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따돌림을 시키는 대장부 같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와 나는 꽤 가까운 사이였다. 나에겐 처음으로 장난치면서 말을 걸어주고 친해진 아이였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같이 노는 친구들이 생겼었고, 이 아이가 그 처음이었다.
내가 그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는지 매번 내가 아닌 다른 아이가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 차례가 온 것 같았다. 나를 거지라고 흠잡았다. 돈이 없는 것은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길거리에서 돈을 구걸해야 하는 그 정도의 가난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또래 아이들에게 무시당할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내가 몸소 느끼는 가난함의 오랜 생활보다도 그날 들은 말 한마디가 상처였다.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사고 싶은 거 못 사고, 따뜻한 물로 씻지 못하고,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로 인한 고통보다 '거지새끼'라는 한마디가 더 와닿았다. 일상으로 느끼기만 하던 걸 확실하게 정의내려준 한마디가 더욱.
쓸쓸한 하루들을 보냈다. 대장부 아이가 다시 나를 불러줄 때까지, 나보다 더 마음에 안드는 아이가 생길 때까지 혼자 지내야했다. 그러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아이를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아빠와 함께 있었다. 아빠를 쳐다보며 마음속에 품어져 있던 말을 꺼냈다.
"나보고 거지새끼라고 했어." 나는 울먹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나는 표면적으로는 그 아이를 원망하면서 이런 말을 듣는 처지에 놓이게 한 아빠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날을 난 지금도 후회한다.
빨갛게 달아오르던 아빠의 얼굴이 생각난다.
어른이 되어보니 그렇다. 무시당했던 설움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마음이 쓰릴뿐이다.
내가 잊지 못할 기억을 갖게 된 것처럼, 아빠도 갖게 되었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