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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Mar 22. 2022

어쩌다 봉사단

어머니 자원봉사단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 활동이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데 어머니 봉사단만은 외부 활동을 원칙으로 했다.    

 

봉사에 특별히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봉사까지 하고 살기엔 내 삶이 너무 분주했고 오며 가며 선생님한테 눈도장이라도 받아서 아이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교내봉사라면 모를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아주지도 않는 선행을 베풀 정도의 그릇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원자가 없어 난감해하는데도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았으나

더 이상 눈을 피하기 어려워 결국 어머니 봉사단에 들어가게 되었다.      


활동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좋은 점이 있었다. 아이 감시하랴, 선생님들 눈치도 보랴, 뭔가 부담스럽고 신경 쓰이는 교내 봉사에 비해서 마음이 편했고 일의 종류도 다양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봉사를 선택해서 할 수 있었다.     


우리 구에서 중증장애인들에게 전동 휠체어를 기증하는 행사가 있을 예정이니 봉사할 사람은 신청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끔씩 지역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동원되어 자리를 채워주는 일도 했었다. 특별히 이번 기증식은 장애인과 보육원 아기들에게 호숫가 산책을 시켜주는 행사가 같이 진행될 예정이어서 우리 봉사단이 산책 봉사를 맡게 된 것이었다.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장애인과 아기들이 와 있었다. 나는 장애인 휠체어 산책 봉사를 맡게 되었다. 20대 청년이었다. 그 청년을 보는 순간 가슴이 탁 막혀버리는 것 같았다. 한창 푸르게 빛날 청춘이 어쩌다가 이렇게 맥없이 앉아 있을까?

내 눈빛에서 동요를 감지한 청년은 고개를 떨군다.

어떤 위로나 관심도 받고 싶지 않다는 듯이..  

  

호수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다. 급경사가 아니었는데도 휠체어의 바퀴는 사정없이 굴러 내려가려고만 했다. 놓쳐버리기라도 하면 자기 방어가 힘든 청년에게 큰 부상을 입힐 판이었다. 간신히 내려오긴 했지만 나중에 다시 올라갈 일이 큰 걱정이었다. 이때 청년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을 가려면 금방 내려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니 난감해하며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청년이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을 향해서 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휠체어를 타고 있던 그들은 장애인 역할을 하기 위해 동원된 군인들이었다. 힘겨웠을 오르막길은 면할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런지.    

 

구청장님이 도착했고 축사 낭독, 휠체어 전달 그리고 비디오 촬영까지 행사는 완벽하게 마무리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업혀 있던 아기들에게 친엄마들이 나타났다. 딱한 처지가 안쓰러워 먹을 것을 사주고 달래고 어르며 업고 다녔던 아기들이 사실은 유아원에서 잠시 빌려 온 아기들이었다. 업고 다니기엔 너무 크고 왠지 결핍이 느껴지는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아기들을 찾아가는 엄마들의  굳은 표정 속에서 성난 감정을 간신히 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왕자님, 공주님 역할을 한다 해도 귀한 아이를 내주기 힘들었을 판에 얼마나 어이없고 속상했을까.     


중년 이후에 자원봉사자의 길을 걸었던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이 ‘봉사가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진작 알았었더라면 영화배우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봉사에는 보람과 기쁨이라는 보상이 따라온다. 어쩌다 연출된 상황에 동원되어 방청객 알바에 가까운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지만 초보자인 나 역시도 봉사를 하면서는 ‘내가 좀 괜찮은 사람인가?’ 스스로 뿌듯해하곤 했었다.     


사람은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에 훨씬 심각하게 반응하며 더 오래도록 기억한다고 한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도움을 주었던 봉사가 더 많았었는데도 벌거벗은 임금님의 행차처럼 우스꽝스럽던 그날의 기억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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