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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이나게 Jun 27. 2022

인생, 그  쓸쓸함에 대하여

 

2년 전 이맘때 즈음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어르신 교실에 보조교사로 참석을 했었다. 코로나로 어르신 대상 모든 교육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우울감이 심한 어르신을 몇 명만을 선별해서 급하게 개설한 수업이었다.    


그 당시 나도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친정 오빠한테 신장을 기증한 이후에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던 것이다. 정상범위를 벗어난 신장 수치는 시간이 흘러도 회복되지 않았고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호흡곤란과 어지럼증, 두통, 근육통, 고혈압에 생전 처음 들어본 자가 면역질환도 생겼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대학병원, 동네 병원, 한의원을 돌아다녔고 정체불명 민간요법까지 섭렵하며 무분별한 약을 음용했던 탓에 간에도 문제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을 때니 참으로 우울했던 시간이었다.     

 

수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정서적 우울보다는 신체적 건강이 더 큰 문제인 듯 보였다. 근육병을 앓고 있는 분도 있었고 수술로 많이 쇠약해지신 분도 있었다. 그중에 건강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으나 무척 고통스러워하시는 어르신이 있었다.


그 어르신은 몇 달 전에 딸을 잃었다고 했다. 엄마를 잘 챙겨주던 딸이었는데 스스로 삶을 마감한 것이었다. 어르신은 극심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 충격으로 수 십여 년 살아온 익숙한 동네에서 길을 자주 잃어버렸다. 복지관을 오고 갈 때에도 길을 안내할 사람이 필요했다. 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도 후회스럽고 길을 잃어버려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미안하고 모든 것을 자책하며 괴로워하시는 모습은 마치 벼랑 끝에 서 있는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그래도 수업에는 무척 열심히 참여하셨다. 온통 시커멓게 색칠을 하고 죽어가는 새를 그려놓으며 참담함을 표현해 놓을지언정 결석은 물론 지각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꽃꽂이 시간에 꽃 이름을 외운 사람에게 여분의 꽃을 상품으로 준다고 하니 악착같이 그 많은 꽃 이름을 다 외워서 꽃바구니를 풍성하게 완성했다. 열심이기는 다른 어르신들도 마찬가지였다. 불편하고 힘들어 보여서 이제는 못 오시겠다 싶었는데 다음 시간에는 어김없이 교실문을 열고 들어오셔서 앉아만 있다가 갈지라도 수업에 빠지는 분도 거의 드물었다.  

    

수업은 약 6개월간 진행되었다. 비교적 긴 기간이었는데도 누락되는 분이 거의 없이 만족스럽게 수업이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최종 우울증 테스트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대부분의 어르신의 경우에서 변화가 없었을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더 심해진 분도 있었다.      

기대가 컸을 뿐, 우울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가난해서 우울한 사람이 가난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아픔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운동하고 노래하고 꽃꽂이 좀 했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출석을 하셨던 것은 서로의 모습을 보면서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위로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는 수용의 시간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랬다. 신장 공여가 이렇게 큰 타격일 줄을 몰랐다. 대체로 괜찮다는데 나에게만 유독 호된 날벼락이 떨어진 것 같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쩜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던 거 같다. 불치의 병에 걸린 어느 젊은 유투버가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렸나’를 오랫동안 원망하고 분노하다가 ‘이런 병에 안 걸릴 이유는 또 뭐가 있나’로 생각을 전환해 보았다고 한다. 나 역시도 몸과 마음에 수용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우연히 그 어르신이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은 아니었다. 옷 가게를 했던 분답게 멋지게 차려입으셨다. 여자 환자가 옷을 사러 다니면 이제 우울증이 치료된 것으로 본다는 어느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호되게 힘든 시간은 넘어선 듯 보여 반가웠다.     


인생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는 아무리 앞뒤를 끼워 맞춰 보려 하고, 운명이라는 말로 서사를 지어 내려해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을 때가 있다. 묘약도 특약 처방도 없고 어떤 액땜 부적도 안 통하는 속수무책 랜덤일 뿐, 누군가가 무심히 던진 돌에 맞은  연못에 사는  개구리에게 아무 잘못이 없는 것처럼, 잘못이 없어도 혹은 잘한 일이 너무 많아도 돌 맞고 쓰러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인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은 참으로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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