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 겨울철 난방은 연탄난로였다.
난로를 때기 시작하면 연탄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 당번의 중요한 임무가 된다.
가끔 유능한 당번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가만히 있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홀연히 손을 들어 “선생님, 연탄 갈아야 해요.”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은 수업을 중단하고
기다려 주신다.
천천히 움직이며 가능한 길게 시간을 끌어줄수록 당번의 유능함은 빛을 더한다.
단 몇 분이기는 해도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수업시간을 빼먹을 수 있었던 난로가 주는 소확행이었다.
난로가 등장하면 좋은 것이 또 하나 있다.
도시락을 데워 먹을 수 있는 것이다.
한 번은 친구들과 김치찌개를 끓여 먹자는 계획을 세웠다. 친구 중 한 명이 동그란 스테인리스 김치통을 가지고 왔고, 각자 싸온 김치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점심시간이 되어 책상을 이어 붙이고 김치찌개를 먹을 기대에 부풀어 뚜껑을 여는 순간,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뚜껑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김치쪼가리들이 폭죽 터지듯이 흩어지며 아이들의 얼굴에, 머리에, 옷에, 교실 천정까지 날아가 붙었다.
뚜껑에 고무 박킹이 둘려져 있는 스테인리스 통을 완전히 밀폐한 채로 난로 위에 올려놓았던 것이 문제였다. 열이 가해지니 기체의 부피가 확장되어 약간의 틈이 생기자 폭탄처럼 터져 버린 것이다.
교실은 순식간 아수라장이 되었고
뚜껑을 열었던 김치통 주인은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직행해야 했다.
다행히 누구도 다치지 않았지만 겨울이 끝나갈 무렵까지도 김치통 주인의 이마에는
김치쪼가리 형태의 갈색 훈장이 남아있었다.
명색이 이과반인데 온도가 상승하면 기체의 부피가 팽창한다는 법칙,
일명 샤를의 법칙은 교과서용이었을 뿐, 그것이 김치찌개 뚜껑을 날아가게 할 줄은 몰랐다.
이런 폭발은 집에서도 있었다.
쌍화탕을 뚜껑을 열지 않은 채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어서 돌렸다.
병이 폭발을 하면서 유리조각 난장판이 되었다.
전자레인지를 처음 사용했을 때여서 그랬다고 변명은 하고 싶다.
그래도 그렇지 또 이런 실수를 범하다니...
잊을 만하면 불쑥 나타나 소란을 피워대는 프랑스 남자, 샤를이 너 정말ㅠㅠ
어르신 회상 미술활동으로 난로가 있는 교실 풍경을 접어 보았다.
층층이 양은 도시락을 쌓고 쭈그러진 누런 주전자도 올려 그림에 온기를 더해 보았다.
난로가에 둘러서서 작당모의하던 소녀들의 발그레 달궈진 얼굴이 보이는 듯하다.
김치찌개 폭발사건으로 온통 난장판을 만들었던 그날의 추억이 떠올라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