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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념과 전념

행복해지려면 지나온 다리에 불을 놓아야 한다.

공중보건의사 3년의 마무리를 앞두고, 최근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심했다.

페이닥터냐, 바로 개원이냐, 세부 전공을 위한 펠로우(임상강사)냐를 앞에 두고,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인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는지, 세세하게 따지고 분석하고 있었다.

선택이라는 괴로움의 터널을 지나,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니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택의 폭이 넓은 것이 좋다고 생각해 왔다.

인생은 알 수 없고, 미래는 모르니, 불안했다.

그래서 플랜 B, C를 준비해서 미리 대비하고, 선택의 자유를 두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고, 실제로 선택의 가짓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최근에 드는 생각은,

성공도, 행복도 오히려 선택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멀어진다고 느껴졌다.


나라는 사람은 오직 1명이고, 시간은 흐르기만 할 뿐 되돌릴 수는 없다.

선택을 하게 되면 어차피 선택하지 않은 길은 영원히 미지의 길일뿐이다.

장점만 있고 단점만 있는 쉬운 선택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선택지들 앞에서 고민한다는 뜻은,

어떤 길을 선택해도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며,

그 플러스-마이너스의 정도가 비슷비슷하게 팽팽하거나,

또는 그 이득과 손해의 정도를 미리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두 눈 딱 감고, 단념하고, 어떤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순간,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야만 한다.

지나온 다리에 불을 놓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그 길에 전념해야 한다.


지나고 나서 좋지 않은 점이 있다고 해서

아 다른 걸 선택할걸... 은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다른 선택이 좋다는 보장도 없다.

그 다른 선택 안에서도 좋지 않은 점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니까 말이다.


단념과 전념.

선택한 후의 그 몰입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마침내 보람과 성과를 마주하게 된다.

다른 길에 미련두지 않고, 집중해서 내가 선택한 길에 파고들어야만,

마침내 내가 한 선택이 옳았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타인의 조언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

설령 그 사람이 내 동종 분야의 선배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본인이 선택한 길 외에는 다른 선택은 가본 적이 없고 가볼 수도 없기 때문에

본인의 선택과 다른 선택 사이의 장단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냥 그 선배도, 본인 길이 맞다고 믿고 그냥 가는 것뿐이다.

결국, 인생은 타인에게도 오직 1번뿐이고, 동시에 여러 삶을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단념과 전념.

어쩌면 진로뿐만 아니라, 앞으로 마주하는 수많은 선택들 앞에서, 되새겨야 할 말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최종적으로 배우자로 맞이할 것인가

서울에 살 것인가 지방에 살 것인가

개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A라는 지역의 B라는 건물과, C라는 지역의 D라는 건물 중 어디에 자리잡을 것인가

지금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이 타이밍에 살 것인가 아니면 전세로 들어갈 것인가

하다못해 새로운 자동차를 사면서 검은색으로 살 것인가 흰색으로 살 것인가.


고민의 시간은 충분히 주어지지 않고,

시간제한이 있는 문제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아, 한 가지 더. 이 주식을 살지 말지. ㅋㅋㅋ 그래. 투자도 선택이다. 인생의 모든 것은 선택이다.

그럴 때마다, 신중하게 고민하고 따져보더라도,

어느 순간 단념하고 결정하는 결단력.

그리고 결정한 그 순간부터 뒤돌아보지 않고 내가 한 선택을 믿고 집중해서 몰입하는 전념.


이 2가지 덕목을 기억하며,

선택의 가짓수를 줄이고,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ps.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피트 데이비스의 <전념>,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정지우의 <사랑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를 정리한 글입니다.

고민의 순간 길잡이가 되어주는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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